거창은 경상남도에서 가장 외진 도시 가운데 하나다. 부산과 창원에서는 멀고 진주도 가깝지 않다. 동쪽으로 합천, 서쪽으로 함양, 북쪽으로 전북 무주와 경북 김천을 만난다. 가야산·덕유산·지리산 3대 국립공원 사이에 자리할 만큼 높은 산들이 에워싼 내륙의 작은 도시다.
그런데 거창을 직접 걸어보면 ‘오지’라는 말과 잘 맞지 않는다. 도심에는 학생들이 많고 학교와 학원이 모여 있다. 법원과 검찰, 병원과 시장이 있고 대학도 두 곳이나 있다. 공공기관의 지역 지사도 곳곳에 보인다. 지역신문과 시민단체도 활발하다. 군 단위 도시인데 거리를 걷다 보면 제법 큰 도시의 한 동네를 걷는 느낌도 든다.
더 흥미로운 것은 이런 도시성이 최근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삼국시대부터 여러 세력이 만나는 접경지였고 조선시대에는 아홉 개의 길이 다른 고장으로 뻗어나갔다. 산은 거창을 외부와 떨어뜨려 놓았지만, 산 사이의 길은 오히려 사람과 물자를 거창으로 모이게 했다. 거창의 역설은 여기에서 시작한다. 산은 거창의 독립성을 키웠지만, 산 사이의 길은 거창을 중심도시로 만들었다.
거창의 중심성은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거창은 신라와 백제, 가야가 맞닿는 접경지였다. 세 세력이 이 지역을 차지하기 위해 경쟁했고, 거열산성을 비롯해 수많은 산성이 남아 있는 것도 이런 전략적 위치와 관련이 있다. 접경은 변방을 의미하지만 동시에 연결을 의미한다. 서로 다른 정치권역이 만난다는 것은 그 사이를 오가는 길도 이곳으로 모인다는 뜻이다.
조선시대에도 이 성격은 이어졌다. 거창은 오랫동안 현이었지만 후기에는 도호부로 승격됐다. 1760년 『거창부여지승람』에 기록된 거창은 22개 방과 99개 리를 갖추고 인구가 2만 명을 넘었다. 서울까지 735리 8일, 대구 감영까지 180리 2일, 진주 병영까지 160리 1.5일이 걸렸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무엇보다 흥미로운 것은 길이다. 거창에서 다른 고장으로 뻗어나가는 길이 아홉 개나 있었다. 역과 원, 봉수대도 갖췄다. 산으로 둘러싸였지만 산에 갇힌 도시가 아니라 산길을 통해 주변 지역을 연결하는 교통의 결절점이었다.
당시 사람들이 거창을 어떻게 보았는지를 보여주는 기록도 흥미롭다. 『거창부여지승람』은 거창의 풍속을 “굳세고 사나움을 숭상하며 삼농사에 힘쓴다”라고 기록했다. 18세기의 표현을 오늘날 주민의 성격으로 그대로 옮길 수는 없지만, 적어도 당시부터 거창이 강한 기질을 가진 고장으로 인식됐음을 보여준다.
근대에도 이 중심성을 유지했다. 1909년 거창구재판소가 설치됐고 오늘날에도 창원지방법원 거창지원과 창원지방검찰청 거창지청이 자리한다. 1982년 제2차 국토종합개발계획은 전국을 28개 지역생활권으로 나누면서 거창·함양·합천·산청을 하나의 농촌도시생활권으로 묶고 거창을 중심지로 설정했다. 삼국시대의 접경지, 조선시대의 아홉 길, 근대의 사법 중심지, 현대 국토계획의 생활권 중심지가 한 방향을 가리킨다. 거창의 중심성은 어느 날 행정적으로 지정된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 축적된 것이다.
이 역사적 중심성은 지금도 도시 곳곳에 남아 있다. 중견도시의 여섯 개 앵커를 적용하면 그 이유가 보인다.
첫째는 행정이다. 거창지원과 거창지청은 거창·함양·합천 세 군을 관할한다. 시내를 걷다 보면 이런 광역 행정 기능이 사법기관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한국전력공사 거창지사, 한국농어촌공사 거창함양지사, 한국전기안전공사 경남북부지사, KT 거창지사 등 공공기관과 공공서비스 기관의 지역 거점이 곳곳에 자리한다. 농어촌공사는 거창과 함양을 함께 담당하고, 전기안전공사는 경남북부지사라는 이름으로 거창에 자리한다. 군청 소재지라는 차원을 넘어 주변 지역에 사법·농업·전력·안전·통신 서비스를 공급하는 공공서비스 거점인 것이다.
둘째는 교육이다. 거창에서 가장 인상적인 앵커다. 거창읍을 걸으면서 놀란 것은 학교가 많은 것보다 학교들이 단지를 이루고 있다는 점이었다. 죽전마을에는 샛별초등학교, 거창고등학교, 거창여자중학교, 샛별중학교가 죽전4길을 따라 거의 한 곳에 모여 있고, 바로 인근 죽전1길에는 거창여자고등학교가 있다. 초등학교부터 중·고등학교까지 다섯 학교가 하나의 교육 클러스터를 이룬다.
상동에도 또 하나의 학교 클러스터가 있다. 상동택지지구를 중심으로 아림초등학교, 혜성여자중학교, 대성일고등학교가 자리하고, 인접 지역까지 이어가면 거창대성중학교와 거창대성고등학교가 연결된다. 학교 주변에는 아파트와 공원, 학원, 카페와 음식점이 들어서 있다. 교육시설과 주거·상업시설이 결합된 하나의 교육생활권이다. 읍 규모의 소도시에서 이 정도의 학교들이 두 개의 뚜렷한 클러스터를 이루는 경우가 또 있는지 궁금해진다.
거창고를 중심으로 한 사학의 전통도 특징이다. 2026년 거창군의 고등학생은 2,166명이고 이 가운데 사립고 학생이 1,544명으로 약 71%를 차지한다. 거창고와 거창대성고, 거창여고 등은 농어촌 자율학교 제도를 활용해 오랫동안 지역 밖에서도 학생을 받아왔다. 작은 산간도시가 학생을 대도시로 내보내기만 한 것이 아니라 교육을 통해 외부 학생을 거창으로 끌어들여온 것이다.
이 점은 지역발전의 관점에서도 중요하다. 외지 학생이 들어오면 교사와 학부모가 연결되고 기숙사와 학원, 음식점과 카페 같은 생활경제가 뒤따른다. 무엇보다 인구가 감소하는 산간도시가 교육을 통해 청소년 인구를 외부에서 끌어들였다는 의미가 크다. 죽전과 상동의 학교 클러스터를 보면 거창이 '교육 주도 지역발전'을 해왔다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
고등교육도 이 구조를 강화한다. 경남도립거창대학은 1996년 전국 최초의 도립대학으로 출발했고 현재는 국립창원대학교 거창캠퍼스로 이어지고 있다. 여기에 한국승강기대학교까지 있다. 인구 6만 명이 채 되지 않는 군에 고등교육기관이 두 곳 존재한다.
거창의 교육도시 성격은 학교 담장 밖으로 다시 확장된다. 거창도서관과 거창수학체험센터가 있고, 거창하천환경교육센터에서는 하천과 생태를 교육한다. 거창사과테마파크체험센터에서는 지역의 대표 농산물인 사과를 체험과 교육의 자원으로 활용하고, 거창군종합슬롯복지관에서는 평생교육과 문화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학교교육, 수학교육, 환경교육, 농업체험, 평생교육이 각각의 공간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거창은 학교가 많은 도시를 넘어 도시 전체가 하나의 학습 생태계처럼 작동하는 곳이다.
셋째는 생활이다. 그 중심에는 거창적십자병원이 있다. 1960년 문을 연 이 병원은 현재도 거창·함양·합천을 포괄하는 지역 의료체계의 거점 역할을 한다. 군 전체에는 병원과 의원, 치과와 한의원 등 50곳이 넘는 의료기관과 20곳이 넘는 약국이 있다. 거창읍을 걸으면 의원과 약국이 유난히 자주 눈에 들어오는 이유다. 거창적십자병원을 300 병상 규모로 이전·확장하는 계획도 추진되고 있다. 사법과 마찬가지로 의료에서도 거창은 자기 군만을 위한 도시가 아니다.
넷째는 상업이다. 거창시장은 오랫동안 서북 경남의 농산물과 생활물자가 모이는 시장이었다. 그러나 오늘날의 상업 중심성은 전통시장에만 머물지 않는다. 상동 일대에 가면 학교와 공원, 아파트, 학원, 카페와 음식점이 어우러진 새로운 주거·상업지역이 나타난다. 원도심과는 다른 현대적인 생활상권이다. 하나로마트와 대백마트 같은 규모 있는 생활유통시설도 있다. 전통시장과 새로운 생활상권이 함께 존재하면서 군 규모에 비해 높은 상업 밀도를 만든다.
다섯째는 산업이다. 전통적으로 사과와 화강석이 중요했다. 거창은 국내 3대 화강석 산지로 꼽힐 만큼 석재 채굴과 가공산업이 발달했고, 사과 역시 거창을 대표하는 농업 브랜드로 성장했다. 최근 가장 독특한 산업은 승강기다. 거창에는 원래 승강기 산업 기반이 없었다. 지역의 기능대학이 폐교 위기에 놓이자 거창은 오히려 승강기를 새로운 산업으로 선택했다. 이후 한국승강기대학교와 거창승강기고, 관련 기업, 한국승강기안전공단의 연구·교육시설을 모으면서 산·학·연·관 생태계를 만들어냈다. 기존 산업을 키운 것이 아니라 지역이 필요한 산업을 선택하고 생태계를 직접 조성했다는 점에서 거창의 성격을 잘 보여준다.
여섯째는 교통이다. 철도는 없지만 광주대구고속도로가 거창을 동서로 연결한다. 북쪽으로는 국도 37호선을 통해 무주·금산 방향으로 이어진다. 과거 아홉 개의 산길이 주변 고장을 연결했다면 오늘날에는 고속도로와 국도가 그 역할을 이어받고 있다.
이 여섯 기능이 좁은 거창읍에 집적돼 있다는 것도 중요하다. 2026년 6월 거창군 인구 5만 8,846명 가운데 거창읍에 3만 9,646명, 약 67%가 산다. 군청과 시장, 학교, 병원, 법원과 검찰, 공공기관, 도서관과 상업시설이 가까운 거리에 모여 있다. 직접 걸어보면 주요 시설 대부분을 10~20분 안에 연결할 수 있다. 거창읍은 전형적인 콤팩트시티다. 중심성이 지도 위의 개념이 아니라 거리의 밀도로 나타난다.
이쯤에서 다시 『거창부여지승람』의 기록으로 돌아가게 된다. “굳세고 사나움을 숭상하며 삼농사에 힘쓴다”는 18세기의 표현을 오늘날 거창 사람들의 성격으로 그대로 옮길 수는 없다. 하지만 삼국시대 접경지에서 시작해 산간의 독립적인 생활권을 유지해 온 역사와 오늘날의 지역슬롯를 나란히 놓으면 하나의 질문은 가능하다. 지리적 고립이 오랜 시간 거창 특유의 독립적인 지역문화를 강화한 것은 아닐까.
그 흔적은 시민슬롯에서 먼저 보인다. 거창 YMCA는 1984년 창립돼 시민운동과 슬롯교육을 해왔고, 이후 환경단체와 농민단체, 시민단체들이 활발하게 활동했다. 귀농·귀촌 공동체와 생활협동조합 활동도 이어졌다. 작은 군 단위 지역에서 이처럼 다양한 시민조직이 오랫동안 활동해 왔다는 것은 거창의 또 다른 힘이다.
지역언론도 강하다. 거창신문, 서경신문, 거창신보 등 여러 지역신문이 활동해 왔고, 그중에서도 거창한들신문은 거창의 독립적인 시민문화를 상징하는 사례다. 주민들이 자본과 권력으로부터 독립된 지역언론을 만들겠다며 2015년 거창언론협동조합을 설립해 창간한 신문이다. 조합원들이 출자하고 시민기자로도 참여하는 방식으로 운영돼 왔으며, 창간 10주년인 2025년에는 조합원이 300여 명에 이르렀다. 인구 6만 명에도 미치지 않는 군에서 여러 지역신문이 경쟁하고, 주민들이 직접 협동조합을 만들어 신문까지 운영한다.
교육과 산업도 같은 맥락에서 읽을 수 있다. 사립학교가 강하고 독자적인 교육철학을 가진 학교들이 외지 학생을 끌어들였다. 승강기 산업도 지역에 없던 산업을 스스로 선택해 생태계를 만들었다. 시민슬롯, 언론, 교육, 산업은 서로 다른 분야처럼 보이지만 공통점이 있다. 자기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려는 힘이다.
거창은 이런 힘을 도시전략으로 묶으려는 시도도 일찍 시작했다. 2010년대 초에는 ‘매력 있는 창조 거창’을 내걸고 창조도시 마스터플랜을 추진했다. 교육·건강·경관·환경을 지역 자원으로 활용하려 했고, 창조거리와 ‘문학도시 거창’ 같은 사업도 추진했다. 창조거리는 이후 문화거리로 이름을 바꿨다. 흥미롭게도 2026년 다시 취임한 이홍기 군수도 ‘함께 여는 새로운 창조 거창’을 내걸었다.
하지만 바로 여기에서 거창의 또 다른 역설이 시작된다. 강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지만 그 정체성을 새로운 산업과 문화로 전환하는 힘은 아직 충분하지 않다.
창조도시를 표방하고 시설과 거리를 만드는 것만으로 창조적인 생태계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문화거리는 물리적 환경을 정비했지만 민간 상점과 콘텐츠가 충분히 따라왔는지는 따져볼 필요가 있다. 교육·체험시설이 많은 것도 강점이지만 공공 프로그램이 민간의 새로운 교육사업과 콘텐츠, 창업으로 얼마나 연결되는지도 중요하다.
사과산업에서 이 문제가 잘 보인다. 거창은 사과의 생산기술과 유통에 상당한 역량을 투자해 왔다. 사과테마파크체험센터에도 전시·교육·체험 기능이 있다. 하지만 사과를 잘 생산하는 것과 ‘거창 사과 문화’를 만드는 것은 다른 일이다. 음료와 디저트, 발효식품, 음식, 디자인, 공간으로 연결해 사과를 하나의 라이프스타일 산업으로 확장할 여지가 크다. 화강석도 마찬가지다. 한때 거창의 대표 산업이었던 석재산업은 건설경기와 산업환경 변화에 직면해 있다. 이제 돌을 캐고 가공하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건축과 공간, 디자인, 공예로 연결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교육은 반대로 거창이 이미 가능성을 보여준 분야다. 외지 학생을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다는 것은 거창이 반드시 폐쇄적인 도시만은 아니라는 뜻이기도 하다. 학생을 끌어들인 도시라면 인재와 크리에이터, 기업도 끌어들일 수 있어야 한다. 교육에서 보여준 개방성을 산업과 문화로 확장하는 것이 다음 과제다.
독립성 역시 양날의 칼이다. 내부 결속력이 강하면 외부 충격에 잘 버티지만 외부 사람과 기업에는 진입하기 어려운 슬롯가 될 수도 있다. 지역 네트워크가 강할수록 그 네트워크 밖의 새로운 사람과 아이디어를 받아들이는 개방성이 중요해진다. 거창이 지켜야 할 것은 폐쇄성이 아니라 독립성이다.
더 큰 도전은 생활권의 변화다. 오늘날 거창에서는 대구권의 영향이 빠르게 커지고 있다. 광주대구고속도로를 이용하면 거창 IC에서 대구까지 약 한 시간이다. 접근성이 좋아진 것은 분명한 이점이다. 그러나 연결이 반드시 중심성을 강화하는 것은 아니다. 쇼핑과 의료, 문화와 인재가 대구로 빠져나간다면 교통 개선은 오히려 거창을 대구의 주변도시로 만들 수 있다.
그렇다면 답은 다시 길에서 찾아야 한다. 거창의 문제는 자원이 부족하다는 데 있지 않다. 강한 내부 자원을 외부의 사람·시장·아이디어와 얼마나 연결할 수 있느냐가 문제다. 중요한 질문은 연결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연결할 것인가다.
광주대구고속도로는 이미 동서축을 만들었다. 앞으로 달빛철도가 광주에서 담양·순창·남원·장수·함양·거창·합천·고령을 거쳐 대구까지 연결되면 이 축은 더 강해진다. 주목할 것은 거창군이 2026년 계획에서 달빛철도와 함께 진천–영동–거창–합천을 연결하는 남북 고속도로축을 추진하고 있다는 점이다. 하나는 광주와 대구를 잇는 동서축이고, 다른 하나는 충북에서 거창을 거쳐 경남 내륙으로 내려가는 남북축이다. 여기에 기존 국도 37호선을 통한 무주·금산·대전 방향의 연결망까지 더해진다.
두 축이 실현되면 거창의 지리적 의미도 달라진다. 대구와 가까워지는 데 그치지 않고 동쪽으로 대구, 서쪽으로 광주, 북동쪽으로 충북, 북서쪽으로 대전권을 연결하는 도시가 된다. 대구 생활권의 끝이 아니라 동서축과 남북축이 교차하는 내륙의 결절점이 되는 것이다. 과거의 거창권을 그대로 복원할 필요는 없다. 함양·합천·산청을 다시 배후지로 묶겠다는 발상보다 필요한 것은 배후지형 중심성에서 네트워크 중심성으로의 전환이다.
교통만 연결해서도 안 된다. 승강기 산업에는 외부 기업과 인재를, 사과와 화강석에는 크리에이터와 디자이너를 연결해야 한다. 교육도시의 장점을 활용해 외지 학생과 교사를 계속 끌어들이고, 풍부한 공공 교육·체험 인프라는 민간의 교육 콘텐츠와 창업으로 이어져야 한다. 시민슬롯 역시 귀농·귀촌인과 청년, 새로운 주민이 쉽게 참여할 수 있는 열린 공동체로 진화해야 한다. 독립성과 개방성을 결합하는 것이 거창의 다음 단계다.
조선시대 거창에는 다른 고장으로 향하는 아홉 개의 길이 있었다. 산으로 둘러싸여 있었지만 그 길을 통해 거창은 주변과 연결됐고 중심이 됐다. 21세기의 거창에도 새로운 아홉 개의 길이 필요하다. 과거의 길이 산을 넘어 거창을 중심으로 만들었다면, 앞으로의 길은 거창의 독립성을 더 넓은 세계와 연결해야 한다. 그것이 대구의 주변부가 되지 않고 다시 중심이 되는 길이며, 거창이 풀어야 할 역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