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발전 정바카라이 오랫동안 다뤄온 자원은 대개 정해져 있다. 산업단지를 유치할 부지, 관광객을 부를 자연경관, 특산물과 축제, 최근에는 청년 창업과 로컬 브랜드까지. 그런데 이 목록에서 유독 빠져 있는 자원이 있다. 건축이다. 도시의 거리와 건물 하나하나가 그 도시의 첫인상이자 매일의 생활환경이라는 사실은 누구나 인정하면서도, 건축을 지역 성장의 정식 전략으로 삼는 지방도시는 드물다. 건물은 대개 개별 민원이나 개별 사업의 결과물로 취급될 뿐, 도시 전체의 경쟁력을 만드는 자원으로 다뤄지지 않는다.
그런데 건축을 정면으로 내걸고 지역 성장을 추구해 온 도시가 있다. 경상북도 영주다. 영주시는 2009년 전국 최초로 공공건축가 제도를 도입했고, 이듬해 디자인관리단(현 도시건축관리단)을 꾸려 공공건축과 경관을 통합적으로 관리하기 시작했다. 이후 15년간 관련 사업으로 900억 원의 국비를 확보해 조제보건진료소, 풍기읍행정복지센터, 노인복지관, 실내수영장, 장애인종합복지관 등 다수의 공공건축물을 선보였다. 이들 건축물이 각종 건축상을 받으면서 매년 1,500명 넘는 방문객이 공공건축을 보기 위해 영주를 찾았다. 다른 지방도시가 산업단지나 관광자원을 내세울 때, 영주는 건축 자체를 도시의 정체성으로 만들어 온 것이다.
이 실험이 특히 의미 있는 것은 영주가 처한 조건 때문이다. 영주생활권은 다른 지역생활권과 조금 다른 이중적 구조를 갖는다. 행정구역 안에서는 시내동지구가 풍기와 순흥을 아우르는 중심이지만, 행정구역 밖으로는 철도와 도로로 연결된 봉화까지 영주의 영향권이 뻗어 있다. 하나의 기초단체 안에 형성된 내부 생활권과 그 경계를 넘어서는 외부 영향권이 겹쳐 있는 셈이다. 이 가운데 우선적인 과제는 영주시 내부의 중심성과 통합성을 높이는 일이다. 시내동지구의 견인력을 강화하고 풍기와 순흥의 고유한 자원을 연결해야 그 힘을 다시 봉화까지 확장할 수 있다.
오늘의 영주시는 하나의 기초단체지만 역사적으로는 영천·풍기·순흥이라는 세 고을이 합쳐진 도시다. 지금은 옛 영천군 일대의 시내동지구에 영주시청과 영주역, 중앙로·명동거리, 경북전문대학교 등 주요 기능이 집중돼 있고, 풍기와 순흥은 각각 뚜렷한 지역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다. 풍기 사람들이 지금도 자신을 ‘영주’보다 ‘경북 풍기’로 소개하곤 하는 데서도 옛 고을의 경계가 사람들의 인식 속에 남아 있음을 알 수 있다.
흥미로운 것은 과거 세 고을의 위상이 지금과 달랐다는 점이다. 순흥은 조선시대 도호부였고, 풍기 역시 조선 후기 양반 문화가 발달한 고을이었다. 1543년 한국 최초의 서원인 소수서원을 세운 주세붕도 당시 풍기군수였다. 부석사와 소수서원 등 오늘날 영주를 대표하는 역사문화 자산도 이 지역에 집중돼 있다. 반면 지금 영주의 중심인 옛 영천군은 상대적으로 평범한 고을이었다.
1914년 부군면 통폐합으로 영천군·풍기군·순흥군이 합쳐져 영주군이 출범했다. 군청은 옛 영천군 지역인 영주면에 자리 잡았다. 행정 중심은 영주면으로 정해졌지만, 이것만으로 영주면이 풍기와 순흥을 넘어 생활권 전체를 견인하는 중심지로 성장할 것까지 예측하기는 어려웠다. 근대에 들어 세 지역의 위계를 완전히 바꿔놓은 새로운 힘이 등장했다. 철도였다.
중앙선은 1941년 영주에 들어왔고, 이듬해 전 구간이 개통되면서 영주는 철도도시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지금의 영주중앙시장 인근에 옛 영주역이 들어섰고, 철도 종사자들의 관사촌인 ‘관사골’을 중심으로 새로운 시가지가 형성됐다. 당시 철도관사와 근대한옥 등이 남은 이 일대는 지금 ‘영주 근대역사문화거리’로 보존돼 있다.
영주의 철도 중심성을 경북 북부로 확장한 것은 영암선이었다. 1955년 영주와 철암을 잇는 영암선이 전 구간 개통되면서 봉화·춘양을 거쳐 태백산맥으로 이어지는 철도축이 만들어졌다. 영암선은 1963년 다른 노선들과 통합돼 현재의 영동선이 됐다.
여기에 1966년 경북선이 점촌·예천·영주를 잇는 노선으로 재개통되면서 영주는 중앙선·영동선·경북선이 만나는 철도 결절점이 됐다. 철도망은 시내동지구를 영주시 내부의 중심으로 만들었을 뿐 아니라 봉화 등 주변 지역이 영주를 이용하게 만드는 외부 중심성도 키웠다.
1967년 휴천동에 새 영주역이 들어서고 주변에 철도기관과 세무서, 영주전문학교(현 경북전문대학교) 등이 자리 잡으면서 새로운 시가지도 형성됐다. 조선시대에는 상대적으로 평범했던 옛 영천군 땅이 철도라는 근대 인프라를 통해 순흥·풍기를 제치고 영주시 내부의 중심이 되고, 동시에 경북 북부의 철도 중심지로 성장한 것이다.
1982년 국토종합개발계획에서 영주가 지방도시생활권의 중심도시로 지정된 것은 이 같은 중심성이 이미 확고해졌음을 보여준다. 철도가 만든 교통의 중심에 행정·교육·상업 기능이 차례로 쌓이면서 오늘날 영주의 중심 구조가 완성됐다.
철도가 만든 시내동지구의 중심성은 오늘날에도 여러 도시 기능을 통해 유지되고 있다. 교통·행정·교육·산업·상업·생활문화라는 6대 앵커를 기준으로 보면, 영주의 강점과 약점이 비교적 선명하게 드러난다. 특히 교통과 산업, 상업 기능은 여전히 시내동지구의 중심성을 뒷받침하는 반면, 일부 기능은 다른 지역에 분산되거나 인근 도시의 영향권에 놓여 있다.
교통은 지금도 영주의 가장 강한 앵커다. 중앙선·영동선·경북선이 영주에서 만나고, 특히 영동선은 봉화를 영주의 영향권과 연결하는 중요한 축으로 작동한다. 2021년부터는 중앙선 KTX-이음이 영주역과 풍기역에 정차하면서 수도권 접근성도 크게 높아졌다. 중앙선 복선전철화에 이어 중부권 동서횡단철도가 추진되고 있어, 영주의 철도 중심성은 앞으로도 생활권 전체의 중요한 기반이 될 가능성이 크다.
행정에서는 영주시청이 시내동지구, 나아가 생활권 전체의 중심을 잡고 있지만, 사법 앵커는 뚜렷하게 약하다. 영주에는 독자적인 법원 지원이 없다. 대구지방법원 안동지원 산하의 영주시법원—1949년 대구지방법원 영주순회심판소로 출발해 1995년 시법원으로 개편된—이 소액사건·조정·협의이혼 등 제한된 업무만 처리하고, 재판관할 자체는 안동지원이 안동시·영주시·봉화군을 묶어 갖고 있다. 상주지원이 상주·문경·군위를 관할하는 것과 비교하면, 영주는 사법 기능에서 오히려 안동에 종속된 위치에 있다.
교육에서는 시내동지구의 경북전문대학교와 풍기의 동양대학교가 주요 앵커다. 특히 동양대는 철도대학과 베어링특성화학과를 두고 있어 철도도시이자 베어링 산업 거점인 영주와 연결되는 자원이다. 다만 캠퍼스가 풍기에 있어 시내동지구의 산업·상권과 연결하는 것이 과제로 남는다. 상주의 경북대, 안동의 국립경국대와 달리 영주의 대학이 모두 사립이라는 점도 지역 앵커로서의 한계다.
산업에서는 적서동 일대에 조성 중인 영주 첨단베어링 국가산업단지가 새로운 전환점이다. 경북 북부 최초의 국가산단으로, 베어링아트와 하이테크베어링시험평가센터, 동양대 베어링특성화학과가 만드는 산·학·연 기반 위에 조성되고 있다. SK스페셜티와 노벨리스코리아 등 기존 기업도 있어, 베어링 국가산단이 완성되면 산업은 영주의 중심성을 강화하는 중요한 앵커가 될 수 있다.
상업에서는 시내동지구 도심에 8개 전통시장이 모여 있어 "도시 전체가 시장인 것 같다"는 인상을 준다. 그 중심에 있는 영주중앙시장은 2014~2017년 도시재생사업으로 빈 점포에 청년 공예가가 입점하고 문화 행사와 공연이 이어지며 한때 전국적인 성공 사례로 꼽혔다.
다운타운으로는 가흥동 신도시 건설과 공공기관 이전에도 불구하고 활력을 유지해 온 중앙로 일대 '명동거리'가 있다. 대학로에서 이어지는 학사골목도 새로운 상권으로 떠오르고 있다. 경북전문대학교 앞이라는 입지 덕에 2016년부터 청년 거리 조성 사업이 시작됐고, SK머터리얼즈의 청년 커뮤니티 공간 STAXX(임팩트스퀘어 운영)가 들어섰으며, 옛 연초제조창 건물은 2021년 영주문화관광재단의 복합문화공간 아트스퀘어148로 탈바꿈했다.
생활과 문화 영역에서는 시내동지구와 풍기·순흥의 자원이 가장 뚜렷하게 나뉜다. 세계유산 두 곳—676년 의상이 창건한 부석사(2018년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 등재, 국보 5건·보물 9건)와 소수서원(2019년 '한국의 서원' 등재)—은 모두 순흥 생활권에 있다. 시내동지구의 문화 자산은 대신 근대역사문화거리와, 2009년부터 축적된 공공건축—조제보건진료소(2012년 한국건축문화대상 국무총리상), 풍기읍행정복지센터, 노인복지관, 영주실내수영장, 장애인종합복지관 등—으로 채워진다.
식문화도 시내동지구가 두텁게 쌓아 온 자산이다. 문어골목이라 불릴 만큼 유명한 영주문어, 영주한우와 영주고추, 산내들와인·샤토소백 같은 지역 와이너리, 중앙분식의 쫄면과 우리복어식당의 콩나물무침, 정도너츠의 생강도너츠까지, 외진 입지 덕에 오히려 고유하게 남은 식문화가 두텁게 쌓여 있다. 문화·역사 자산은 순흥에, 산업·고등교육 자산은 풍기에, 나머지 앵커는 시내동지구에 몰려 있는 이 비대칭이 바로 5장에서 다룰 역할분담론의 출발점이다.
인구는 다른 지역생활권 중심도시들과 마찬가지로 내리막이다. 1970년대 중반 18만 명에 육박했던 영주시 인구는 2024년 10만 명 선이 무너졌고, 2025년 말에는 9만 7천 명 수준까지 줄었다. 학령인구 감소는 더 빠르다. 초등학생 수는 2024년 3,963명에서 2026년 3,330명으로 2년 사이 600명 넘게 줄었다.
인구 감소와 학령인구 급감이라는 공통의 위기 위에, 영주시가 추진해 온 건축도시와 도시재생 전략도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영주는 2009년 전국 최초로 공공건축가 제도를 도입해 개별 건축물에서는 전국이 벤치마킹할 만한 성과를 냈다. 그러나 그 성과가 복지관·수영장·보건진료소 같은 단지형 공공건축물에 집중되면서 주변 가로와 상권으로 충분히 확산되지는 못했다.
정작 도심 상권을 되살리려던 도시재생 사업은 다른 결과를 낳았다. 2014~2017년 영주중앙시장은 빈 점포에 청년 공예가를 유치하고 문화행사를 열며 전국적인 성공 사례로 꼽혔지만, 지원이 끝난 뒤 상당수 점포가 문을 닫으며 활력을 잃었다. 개별 건축물과 단발성 도시재생 사업만으로 동네의 지속가능한 활력을 만들기는 어렵다는 것을 보여준다.
더 근본적인 도전은 시내동지구의 견인력이 풍기·순흥까지 충분히 뻗지 못하고 있다는 데 있다. 풍기의 공방들은 인삼·인견 산업이 만든 고유한 산업 생태계를 품고 있지만, 공장과 매장이 흩어져 있어 유럽이나 일본의 공방 도시와 달리 농공단지 같은 인상을 준다. 소백산을 배경으로 뛰어난 자연환경을 갖췄지만 그에 어울리는 건축환경은 아직 따라오지 못하고 있다.
순흥면의 소수서원-선비촌-선비세상-읍내리 벨트도 마찬가지다. 남북 2km에 걸친 역사문화지구는 이미 하나의 로컬 콘텐츠 타운이라 할 만한 밀도를 갖췄지만, 전체를 아우르는 통합된 이름이 없고 지구를 관통하는 소백로의 보행환경도 좋지 않다. 로컬 브랜드로 인식될 만한 상업시설도 드물다. 풍기와 순흥이 좋은 자원을 갖고도 시내동지구와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시내동지구의 중심성이 약해진 것은 아니다. 가흥동 신도시 개발로 공공기관과 인구가 이동했음에도 중앙로 일대 명동거리는 여전히 활력을 유지하고 있다. 산업과 대학, 철도와 상업 기능이 집중된 시내동지구는 풍기와 순흥을 견인할 경제적 기반을 갖고 있다. 문제는 이 힘을 시내동지구 안에 머물게 하지 않고 풍기와 순흥의 고유한 자원과 어떻게 연결하느냐다.
2026년 7월 취임한 황병직 시장도 인구감소 대응을 주요 과제로 내걸었다. 주목할 점은 단순한 전입 유도보다 청년과 가족이 머물 수 있는 일자리와 생활인프라 등 정주여건 개선에 무게를 두고 있다는 것이다. 인구를 얼마나 끌어오느냐보다 사람들이 계속 살고 싶은 도시를 만드는 일이 중요해진 것이다.
영주시가 시내동지구 중심으로 다음 단계에서 추구해야 할 것은 단지형 건축물이 아니라 동네와 통합된 건축이다. 지금까지 영주의 공공건축이 개별 건축물의 품질을 높이는 데 성공했다면, 앞으로는 그 성과를 거리와 상권, 동네 전체로 확장해야 한다. 영주역의 남선센터, 학사골목의 STAXX와 아트스퀘어148처럼 도시 거점과 골목, 문화공간이 연결되는 방식이 하나의 모델이 될 수 있다.
동국대 도시설계연구실이 제안한 대학로 철도타운과 구성로 로컬콘텐츠타운도 같은 방향이다. 철도시설과 시장, 기존 건축과 지역 콘텐츠를 연결해 개별 건물이 아니라 동네 전체를 하나의 목적지로 만들자는 구상이다. 남산선비마을 역시 공공이 만든 공간을 주민과 청년이 숙박·음식·카페 같은 로컬 비즈니스로 운영하면서 건축이 동네의 활력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를 확장하는 방법이 ‘건축마을’이다. 거점 지역을 대상으로 가로별 마스터플랜을 만들고 그 원칙에 맞춰 건물을 짓거나 고치는 주민과 사업자를 지원해, 좋은 건축이 하나의 점으로 끝나지 않고 거리와 동네로 이어지게 하는 방식이다. 영주가 공공건축에서 축적한 경험을 이제 민간 건축과 골목까지 넓힐 필요가 있다.
그다음은 이 경험을 풍기와 순흥으로 연결하는 것이다. 시내동지구가 철도·행정·상업·산업의 중심을 맡고, 풍기는 인삼·인견 공방산업과 동양대를 기반으로 한 산업·고등교육 거점, 순흥은 부석사·소수서원을 중심으로 한 역사문화 거점으로 역할을 나눌 수 있다. 세 지역이 같은 기능을 갖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강점을 살리면서 하나의 생활권으로 연결되는 구조다.
풍기에서는 공방과 매장, 로컬 브랜드가 하나의 거리 경험으로 이어지도록 건축과 공간 디자인을 지원할 필요가 있다. 순흥에서는 소수서원-선비촌-선비세상-읍내리 벨트를 걷기 좋은 동선과 상업 콘텐츠로 연결해 하나의 로컬 콘텐츠 타운으로 만드는 것이 과제다. 결국 두 지역 모두 새로운 대형 시설보다 이미 가진 산업과 문화자원을 좋은 건축과 거리로 묶는 일이 중요하다.
이 과정에서 청년과 로컬 크리에이터는 별도의 지원 대상이 아니라 동네를 만드는 주체가 되어야 한다. 학사골목과 남산선비마을에서 시작된 변화가 풍기와 순흥으로 이어질 때 영주의 세 지역도 하나의 네트워크로 작동할 수 있다.
1914년 영천·풍기·순흥을 하나의 행정구역으로 묶은 것이 첫 번째 영주의 통합이었다면, 이제 필요한 것은 두 번째 통합이다. 철도와 산업의 시내동, 공방과 대학의 풍기, 세계유산의 순흥을 건축과 거리, 로컬 비즈니스로 연결하는 일이다. 전국 최초로 공공건축가 제도를 도입한 영주의 다음 실험은 좋은 건물을 짓는 데서 좋은 동네를 만드는 데로 이동해야 한다. 건축도시 영주의 진짜 완성은 그때 시작될 것이다.
참고자료
동국대 도시설계연구실, 「영주 로컬 콘텐츠 타운 구상」, 『지속 가능한 영주 구상』 프로젝트 자료. 2024년 1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