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의 자존감

춘천의 자존감


이번 여정은 춘천에서 시작한다. 23개 지역생활권을 돌아보는 이 답사의 첫 도시로 춘천을 고른 데는 이유가 있다. 서울에서 가장 가깝게 만나는 비수도권 지역생활권이자, 강원 영서 북부—화천, 양구, 인제, 홍천, 그리고 경기도 가평 일부까지—가 오랫동안 기대어 온 중심이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 우리 세대에게 춘천은 한국에서 정체성이 가장 분명한 도시 가운데 하나였다. 그 정체성을 한 단어로 표현한다면 ‘낭만’이었다.


춘천과 낭만의 관계는 지금도 이어진다. 춘천은 법정 문화도시의 비전에서 ‘낭만이웃’을 내걸고 있고, 관광에서도 호수와 청춘, 낭만의 이미지를 계속 불러낸다. ITX-청춘이라는 열차 이름마저 이 도시가 오랫동안 축적해 온 청춘과 여행의 이미지를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춘천역에 내려 명동까지 걸어가 보니 조금 다른 질문이 생겼다. 춘천을 낭만의 도시로 만들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그 낭만을 만들어냈던 도시의 실체는 지금도 남아 있을까.


그 답을 찾으려면 지금의 춘천에서 한 세대 전의 춘천으로 돌아가야 한다.



1970년대, 낭만도시의 전성시대

춘천의 낭만은 관광 슬로건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도시 자체가 그런 감정을 만들어냈다. 청량리에서 완행열차를 타면 두 시간 남짓, 차창 밖으로 북한강이 흐르고 강촌과 대성리를 지나 마침내 호수 도시에 닿았다. 경춘선은 '아무 계획도 없이 무작정' 일상을 벗어나는 열차였고, 강촌역은 전국 대학생 엠티의 성지가 되어 밤이면 기타 소리와 캠프파이어가 끊이지 않았다. <춘천 가는 기차>라는 노래 한 곡이 세대를 건너 여전히 흥얼거려지는 데는 이유가 있다. 춘천은 낭만이라는 단어가 사치가 아니었던 도시, 도착하는 순간 일상에서 놓여나는 도시였다.


그 낭만의 유전자는 뜻밖에도 2000년대에 다시 한번 폭발했다. 2002년 방영된 <겨울연가>가 춘천고등학교와 명동로터리, 남이섬을 배경으로 삼으면서, 이번엔 일본과 동남아 관광객들이 완행열차 대신 관광버스를 타고 몰려왔다. 하루 평균 800명, 촬영지 열두 곳에 안내판이 세워지고 배용준의 얼굴이 도시 곳곳을 뒤덮던 시절이었다. 세대는 바뀌었지만 도시가 팔던 감정은 같았다. 춘천은 반세기 가까이 '낭만'이라는 하나의 정서로 사람을 끌어당길 줄 아는 도시였다.


하지만 낭만이라는 평판은 풍경만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그 밑바탕에는 꽤 단단한 도시의 실체가 있었다. 도청소재지의 품격, 강원대·춘천교대·한림대가 만들어낸 젊은 활기, 소양강과 의암호가 빚어낸 호반의 풍경, 그리고 절제된 건축이 어우러진 도시 경관이 있었다. 원도심을 중심으로 옥천동의 부촌, 육림고개의 상점가, 소양로 기와집골의 골목이 촘촘히 살아 있었고, 개성 있는 건축가들이 도시 곳곳에 자신의 흔적을 남겼다. 무엇보다 행정과 상업, 교육과 문화가 원도심에 밀도 있게 모여 있어 도시의 중심이 어디인지 쉽게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춘천은 단순히 놀러 가고 싶은 도시를 넘어 살고 싶은 도시로 기억됐다. 한국의 많은 지방도시가 서울을 따라잡는 것을 발전이라고 생각하던 시절에도 춘천에는 굳이 서울을 닮지 않아도 될 것 같은 여유가 있었다. 호수와 산이 있고, 대학과 문화가 있고, 걸어서 갈 수 있는 도심이 있었다. 대도시는 아니지만 도시생활에 필요한 것을 갖추면서도 대도시에는 없는 풍경과 생활방식을 가진 곳이었다.


나는 바로 여기에서 춘천 특유의 자존감이 생겼다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들이 찾아오고 싶어 하고, 한 번쯤 살아보고 싶어 하는 도시라는 평판은 그곳에 사는 사람들에게도 자기 도시에 대한 자신감을 준다. 춘천의 자존감은 규모가 크거나 산업이 강해서 생긴 자부심과는 조금 달랐다. ‘우리 도시는 살 만한 곳이다’라는 생활의 자신감에 가까웠다. 낭만은 외부 사람들이 춘천에 붙여준 이미지였지만, 그것이 오랫동안 축적되면서 춘천 사람들의 자존감이 되었다.


흥미로운 것은 이 낭만과 자존감의 기반이 결코 저절로 주어진 게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조선시대 500년, 강원감영은 원주에 있었고 춘천은 도호부 정도의 고을이었다. 춘천이 전면에 등장한 것은 19세기 말, '춘천보장론'과 친위대를 키우려던 고종의 판단이 겹치면서였다. 1888년 유수부로 승격했고, 1896년 강원도 관찰부가 600여 년 만에 원주에서 춘천으로 옮겨 왔다. 1931년에는 철도가 없다는 이유로 도청을 철원에 빼앗길 뻔했으나, 지역 유지들의 대응—실은 총독부와 일본 자본까지 얽힌 복잡한 셈법 속에서—으로 넘기며 얻은 것이 경춘선이었다.


이렇게 얻어낸 행정과 철도라는 두 개의 뼈대 위에, 북한강 수운을 오가던 뗏목과 물자가 오래도록 다져온 상업의 살이 붙었다. 그리고 그 위에 교육과 문화, 아름다운 도시경관이 쌓이면서 춘천은 다른 지역 사람들이 찾아오고 싶고 살고 싶어 하는 도시가 되었다. 낭만이라는 평판과 춘천의 자존감은 그렇게 함께 만들어졌다.



춘천생활권과 그 중심

춘천은 혼자 존재한 적이 없다. 춘천을 중심으로 화천, 양구, 인제, 홍천, 그리고 경기도 가평 일부까지 이어지는 영서 북부의 생활권이 오랫동안 형성되어 있었다. 오늘날에는 교통망과 도시 간 경쟁으로 그 경계가 상당히 흐려졌지만, 교육과 의료, 행정과 상업의 흐름을 따라가면 춘천을 향하던 전통적인 생활권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그 중심성은 무엇보다 명료한 결절점에서 나왔다. 경춘선의 종점이자 화천·양구로 가는 시외버스가 모두 모이는 춘천역, 도 전체의 행정을 관장하는 강원도청이 우선 그렇다. 교육도 마찬가지였다. 영서는 물론 영동과 38선 이북의 인재까지 끌어모았던 춘천고등학교—원주와 강릉에 재원춘천고, 재강춘천고 동창회가 따로 있을 정도였다—에 더해, 강원대학교와 한림대학교가 도 전체의 젊은 인구를 끌어모으는 대학 도시를 만들었다.


초등교원 양성은 아예 독점적이었다. 강릉교대가 폐지된 이후 춘천교육대학교는 강원도 유일의 교육대학이 되었고, 지금도 도내 초등학교 교사의 90퍼센트 이상이 이 학교 출신이다. 강원도 어느 초등학교를 가더라도 결국 춘천을 거쳐 온 교사를 만나게 되는 셈이니, 교육이라는 앵커만큼은 춘천이 생활권 전체를 사실상 독점해 온 분야였다.


의료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도립 춘천의료원을 이어받아 개원한 강원대학교병원은 강원 지역암센터와 권역심뇌혈관질환센터를 갖춘 춘천 최대의 공공병원이 되었고, 한림대학교춘천성심병원의 권역응급의료센터는 아예 관할 구역을 '춘천권역—춘천시, 양구군, 인제군, 홍천군, 화천군, 가평군'으로 명시하고 있다. 이는 앞서 말한 전통적인 춘천생활권과 상당 부분 겹친다. 화천이나 양구, 인제에서 응급 상황이 생기면 향할 곳은 정해져 있었다.


산업의 얼굴도 시대에 따라 바뀌었다. 후평공단의 제조업이 저물어갈 무렵, 춘천은 콘텐츠산업으로 방향을 틀었다. 애니메이션박물관과 강원정보문화산업진흥원, 강원콘텐츠코리아랩 등이 자리 잡으며 콘텐츠산업을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키웠고, 2013년에는 네이버의 첫 자체 데이터센터 '각'이 동면에 들어섰다. 팔만대장경을 보관한 해인사 장경각에서 이름을 딴 이 건물은 춘천 산업의 얼굴이 제조업에서 디지털산업으로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었다.


문화의 결절점은 축제였다. 매년 5월 마지막 주, 봄과 물의 도시 춘천에서 열리는 춘천마임축제는 물과 불, 몸짓과 움직임으로 도시와 예술, 시민을 잇는 자리였다. 축제 하나가 도시의 정체성을 대변할 수 있다면, 마임축제는 오랫동안 춘천이 그런 도시임을 증명해 온 무대였다.


상업과 생활의 중심은 명동이었다. 강원도청과 춘천시청이 나란히 자리한 명동은 춘천시의 중심 업무·상업지구이자 강원도의 정치·슬롯적 심장부였다. M백화점 같은 백화점이 자리하고, 옥천동과 교동, 육림고개로 이어지는 골목마다 닭갈비와 막국수 냄새가 배어 있었다. 화천이나 양구, 인제 주민이 병원에 가고 장을 보고 외식을 하려면 자연스럽게 명동으로 향하던 시절이 있었다. 생활권의 중심이 어디인지, 누구에게 물어도 같은 답이 나오던 시절이었다.



흔들리는 중심

지금은 그 답이 흔들린다. 가장 상징적인 균열은 도청이다. 근화동 캠프페이지 부지로 옮길 예정이었던 강원도청 신청사는 결국 동내면 고은리, 원도심에서 한참 떨어진 외곽 신도시로 확정됐다. 도청이 다운타운을 벗어나면서 춘천역-도청-명동으로 이어지던 축 자체가 무너지기 시작했고, 춘천역 주변은 20년 가까이 방치된 공터로 남아 있다.


배후지의 발길도 예전 같지 않다. 철원은 이미 절반 이상이 경기 북부 생활권으로 넘어갔고, 인제 북부는 미시령터널을 통해 속초로 나가는 경우가 늘고 있다. 홍천 역시 원주와 수도권으로 향하는 연결성이 강해졌다. 전통적인 춘천생활권의 경계가 여러 방향에서 느슨해지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강릉과 원주가 인구와 산업, 관광에서 춘천을 앞서가며 도 전체의 위상 지도를 다시 그리고 있다. 도청소재지라는 상징 하나로 버티기엔 이제 힘이 부친다.


교육의 흡입력도 예외가 아니다. 도 전체에서 학생을 끌어모으던 춘천고의 위상은 고교 평준화 이후 지역 단위로 축소됐다. 한림대 역시 학령인구 감소와 수도권 집중이라는 지방대학 공통의 어려움에서 자유롭지 않다. 과거 교육을 통해 강원도 전역의 젊은 인구를 끌어들이던 춘천의 힘도 예전 같지는 않다.


그리고 정작 중심이어야 할 원도심 자체가 비어 간다. 옥천동의 서툰서점 같은 앵커 상점이 문을 닫았고, 육림고개는 2019년 로컬 크리에이터들이 채웠던 활기에 비해 오히려 후퇴했다. 명동을 비롯한 원도심 상권 역시 과거처럼 춘천생활권 전체의 소비를 빨아들이는 압도적인 중심이라고 말하기 어려워졌다.


메가시티, 초광역권, 5극3특 같은 최근의 정바카라 담론도 이 흐름에 답을 주지는 못한다. 5극3특은 기존 산업을 초광역 단위로 고도화하는 사업일 뿐, 하나의 도시가 왜 중심을 잃어가는가라는 질문과는 다른 층위에 있다. 강원특별자치도 출범으로 도민들은 들떠 있지만, 정작 필요한 건 돈과 권한의 확대가 아니라 지역발전 방법론 자체의 전환일지 모른다.



다시, 춘천역에서 명동까지

춘천 생활권의 복원은 중심지 춘천의 복원에서, 춘천의 복원은 도심의 복원에서 시작해야 한다. 생활권이란 결국 사람들이 무언가를 구하러 향하는 방향이고, 그 방향의 끝에는 언제나 구체적인 장소가 있다. 그 장소가 명료하지 않으면 생활권이라는 말 자체가 허공에 뜬다.


춘천이 오랫동안 영서 북부의 중심일 수 있었던 것도 화천이나 양구, 인제 주민이 "춘천에 간다"라고 말할 때 떠올릴 수 있는 구체적인 장소—역, 도청, 병원, 명동—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장소들은 도청소재지 춘천시 전체에 흩어져 있는 게 아니라, 도심이라는 한 뼘 남짓한 공간에 몰려 있었다. 그러니 중심지가 흔들린다는 것은 결국 도심이 흔들린다는 뜻이고, 중심지를 다시 세운다는 것은 결국 그 도심을 다시 세운다는 뜻이다.


앞서 짚은 약화 요인들을 다시 세워보면, 춘천시가 손댈 수 있는 영역과 손댈 수 없는 영역이 갈린다. 철원이 경기 북부로, 인제 북부가 속초로 흩어져 나가는 것은 지리와 교통망이 만든 구조적 흐름이라 춘천시 혼자 되돌릴 수 없다. 강릉과 원주가 인구와 산업에서 앞서가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런 것들은 춘천이 아무리 애써도 바꿀 수 없는 조건이다.


그렇다면 춘천생활권을 되살리는 일은 흩어진 배후지를 억지로 다시 끌어모으는 데서 시작할 수 없다. 사람들이 다시 춘천을 향할 이유를 만드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그 이유가 가장 밀도 높게 모여 있어야 할 곳이 춘천역에서 캠프페이지를 지나 명동으로 이어지는 도심이다. 생활권은 경계를 그어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중심을 강화함으로써 만들어진다.


그 승부처는 춘천역-캠프페이지-춘천명동으로 이어지는 다운타운 축이다. 세 지점은 별개의 공간이 아니라 하나의 연속된 축이었다. 춘천역은 교통의 관문이었고, 캠프페이지는 행정이 원도심에 다시 뿌리내릴 수 있었던 마지막 기회였으며, 명동은 상업과 생활이 실제로 벌어지는 현장이다. 도청이 외곽으로 빠져나가며 이 축의 연쇄가 끊어지려 하고 있다는 사실을, 지역발전 논의는 아직 충분히 직시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가장 먼저 다시 생각해 볼 것은 도청 이전이다. 애초 캠프페이지 이전안이 있었던 만큼, 고은리 신청사 계획이 되돌릴 수 없는 단계에 이르기 전까지는 도심 중심성이라는 관점에서 한 번 더 검토할 필요가 있다. 도청 이전 여부와 별개로 춘천역 주변의 오랜 공백을 메우고, 역에서 캠프페이지를 거쳐 명동까지 사람의 발길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공간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 캠프페이지 역시 독립된 대규모 개발부지라기보다 원도심의 배후 공원과 주거·문화·창작 기능을 담아 명동과 역을 이어주는 공간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새것을 만드는 것만이 답은 아니다. 육림고개의 로컬 크리에이터들, 옥천동으로 돌아온 마실바카라방, 오랫동안 자리를 지킨 아우어테이스트 같은 존재들이 있다. 육림극장을 복합문화공간으로 되살리자는 제안, 브라운 5번가를 마을형 스테이로 바꾸자는 제안도 새 건물을 짓기보다 있던 골목과 건물을 고쳐 쓰자는 방향이라는 점에서 반갑다. 도심의 자존감은 거대한 랜드마크보다 이런 장소들이 하나씩 다시 채워질 때 돌아올 가능성이 크다.


춘천의 자존감은 사람들이 찾아오고 싶고, 살고 싶어 하는 도시라는 평판에서 시작됐다. 그 평판을 다시 얻으려면 먼저 도시의 중심을 되살려야 한다. 배후지를 붙잡는 일은 춘천 혼자의 몫이 아니지만, 도심을 다시 세우는 일만큼은 온전히 춘천의 몫이다. 지역은 백지가 아니다. 한때 작동했던 중심과 사람들이 오가던 길, 도시가 축적해 온 장소가 이미 남아 있다. 춘천에 필요한 것은 새로운 중심을 발명하는 일이 아니라 그 중심을 다시 작동시키는 일이다.


춘천은 한 번 그것을 해냈던 도시다.



화,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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