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 Design
Claude. Ai와 Claude MonetClaude. AI & Claude MonetClaude. AI & Claude Monet
오늘도 바카라상에 앉아 디자인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Chrome Browser에는 어느새 대여섯 개의 AI 창이 열려 있다. 회사에서 사용하는 Cisco Circuit AI Agent를 비롯해 ChatGPT, Claude, Gemini, 그리고 디자인과 리서치에 활용하는 여러 AI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디자이너의 바카라상 위에는 스케치북과 색연필, 디자인 서적이 놓여 있었다. 지금 내 바카라상 위에는 그 자리를 AI가 함께하고 있다.
이제 AI는 나에게 단순한 도구가 아니다. 매일 함께 일하는 동료에 가깝다. 흥미로운 것은 AI마다 역할이 다르다는 점이다. ChatGPT, Claude, Gemini와 같은 범용 AI는 마치 세상의 모든 지식을 가진 브레인스토밍 파트너와 같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함께 고민하고, 글을 다듬고, 디자인 방향을 토론하며,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관점을 제안해 준다.
반면 회사에서 사용하는 Cisco Circuit의 My Agent는 조금 다른 존재다. 만약 ChatGPT와 Claude가 세상 전체를 아는 전문가라면, My Agent는 우리 회사를 가장 잘 아는 동료다. 회사 내부 시스템과 프로젝트, 문서와 업무 프로세스를 이해하고, 내가 사용하는 다양한 사내 툴을 연결해 실무를 함께 수행한다. 회의 내용을 정리하고, 프로젝트 자료를 찾아주고, 업무 흐름을 연결하는 일까지…. 마치 같은 팀에서 오래 일한 동료처럼 내 업무를 든든하게 뒷받침해 준다. 2년 전 팀이 크게 개편되면서 많은 동료들이 회사를 떠났다.
그 이후 AI는 내 업무의 거의 모든 과정에 자연스럽게 들어오기 시작했다. 미팅 노트를 정리하고, 디자인 리서치를 하고, 레이아웃 아이디어를 발전시키고, 프레젠테이션의 논리를 다듬고, 팀의 OKR과 KPI를 이해하고, 심지어 Performance Review를 준비하는 과정까지. 예전에는 여러 명의 동료들과 함께 나누어하던 일들을 이제는 AI와 협업하며 해결한다.
어떤 날은 내가 질문하고, AI가 답한다. 그러면 나는 다시 질문한다.
"다른 방향으로 생각해 볼까?"
"사용자의 입장에서 다시 바라보면?"
"더 단순하게 만들 수는 없을까?"
"완전히 새로운 접근이라면?"
AI는 다시 답을 가져온다. 그리고 나는 또 질문한다. 좋은 디자인은 처음부터 정답을 찾는 과정이 아니라, 좋은 질문을 계속 만들어 가는 과정이라는 사실을 AI와 일하면서 더욱 실감하게 되었다.
얼마 전 아침, 커피를 마시다가 문득 재미있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매일 사용하는 AI의 이름은 Claude. 그리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화가의 이름도 Claude Monet였다. 우연히 같은 이름.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둘 사이에는 묘한 공통점이 있었다. 모네는 이렇게 말했다.
"To paint the sea really well, you need to look at it every hour of every day in the same place… This is why I keep painting the same motifs over and over again."
"바다를 정말 잘 그리려면 매일 같은 장소에서 바다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래야 그 바다를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는 같은 대상을 반복해서 그립니다."
모네는 같은 바다를 수없이 그렸다. 하지만 그는 같은 그림을 반복한 것이 아니었다. 시간이 바뀌고, 빛이 바뀌고, 계절이 바뀌고, 그리고 무엇보다 그 자신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나는 이 말이 디자이너의 일과 참 닮았다고 생각한다.
우리도 같은 문제를 반복해서 바라본다. 다시 보고, 다시 생각하고, 다시 만들고, 다시 질문한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이제 그 과정에 AI가 함께하고 있다는 것이다. 누군가는 말한다.
"AI가 결국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을 것이다." 그럴 수도 있다.
어떤 직업은 사라질 것이고, 어떤 일은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 하지만 디자이너인 나의 관점은 조금 다르다. 나는 AI를 경쟁자가 아니라 매일 함께 일하는 동료로 생각한다. 내가 몇 시간 동안 고민할 문제를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보게 해 주고, 놓쳤던 가능성을 발견하게 도와준다. 물론 AI는 점점 더 많은 일을 대신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오히려 더 많이 생각해야 한다. AI보다 더 빨리 만드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AI가 할 수 없는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AI보다 더 많은 아이디어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아이디어 가운데 사람에게 가장 의미 있는 답을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것이 앞으로 디자이너의 경쟁력이라고 믿는다.
모네는 같은 바다를 반복해서 바라보며 더 깊이 이해했다. 나는 같은 디자인 문제를 AI와 반복해서 대화하며 더 나은 답을 찾아간다. 결국 중요한 것은 붓도 아니고, AI도 아니다. 무엇을 보고, 무엇을 질문하며, 무엇을 만들어 낼 것인가. 그것이 언제나 디자이너의 역할이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 역할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오늘도 나는 바카라상 앞에 앉는다. 커피는 아직 따뜻하고, MacBook 화면에는 풀리지 않은 디자인 문제가 하나 남아 있다. 나는 다시 Claude를 연다. 그리고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Okay, Claude. Let's try one more time."
아마 내일도, 그다음 날도 나는 같은 질문을 할 것이다. 모네가 같은 바다를 바라보며 새로운 빛을 발견했듯이, 나 역시 같은 디자인 문제를 AI와 함께 바라보며 어제는 보이지 않았던 답을 찾아갈 것이다. 결국 AI 시대에도 변하지 않는 것은 하나다.
좋은 디자이너는 좋은 답을 아는 사람이 아니라, 좋은 질문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