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일을 자주 착각하는 온라인 게임인을 위한 변명
"우리는 노예제도 폐지를 원하지만
사실 노예들이 근대의 노동자보다 더 안정되고 행복하게 살았다는 사실,
노예 노동은 노동자의 노동에 비하면 얼마 안 되는 노동이라는 사실을 누구나 인정해야 할 것이다.
- 니체,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아침에 출근하기 위해 버스에 오를 때까지만 해도 나는 오늘이 목요일인 줄로만 알았다. 안타까운 것은 함께 출근하는 아내도 나와 헤어지지 전까지 철석같이 오늘이 금요일이라고 믿고 있었다 점이다. 사무실로 향하는 버스에서 라이브 방송을 듣고 있다가 진행자 중 한 명이 오늘은 "아직 금요일이 아니라 목요일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순간 기분이 싸해지면서 마음이 철렁 내려앉는 느낌이 잠겼다. '이럴 수가! 오늘이 목요일이라니?' 급하게 카톡으로 아내에게 이 냉엄한 진실을 알렸다. 그리고 잠시 후에 아내의 전화가 왔다. 핸드폰 너머의 목소리에는 거의 울음에 가까운 터질듯한 감정의 격한 떨림이 고스란히 묻어있었다.
"정말 오늘 금요일 아냐? 목요일이야?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온라인 게임인들은 왜 자주 요일을 착각할까
그렇다. 요일과 관련해서 온라인 게임인들이 자주 빠지게 되고, 그럴 경우 몹시 당혹스러운 시간 감각과 관련한 착시 현상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바로 오늘 우리처럼 아직 금요일이 되지 않았음에도 목요일을 금요일로 착각하는 경우이고, 다른 하나는 이미 일요일 오후가 되었음에도 일요일 오후를 토요일 오후로 착각하는 시간 감각이다. 분명 이런 현실 부정과 시간 감각의 왜곡 현상은 나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많은 온라인 게임인들에게도 공통적인 현상이라 짐작해 본다. 그리고 그 왜곡은 유독 요일과 관련해서 자주 발생한다. 왜 이런 시간과 관련한 감각적 착시 현상이 온라인 게임인들에게 자주 일어날까?
시간의 단위 즉, 하루는 24시간, 1년은 365일, 1달은 30일 등의 단위는 자의적으로 설정한 것이 아니라 대체로 자연의 흐름이나 계절의 주기와 연관되어 있다. 하루 24시간은 지구의 자전을 기준으로, 한 달 30일은 보통 달이 차고(15일) 기우는(15일) 주기를 기준으로, 일 년 365일은 지구의 공전을 기준으로 한다. 그렇게 해서 1년을 30일씩 12개월로 쪼갠 것이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달력이다. 1월부터 12월의 이름에는 시간까지도 통제하고 장악하고자 했던 권력자의 욕망이 숨어있다. 그래서 7월(July)에는 로마 황제 율리우스 시저의 이름이, 8월(August)에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이름이 남아있다. 우리가 지금 사용하는 태양력은 로마의 역법을 기준으로 한 율리우스 달력과 이를 개선한 그레고리안 달력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이다. 1월을 나타내는 January는 두 개의 얼굴 모습을 한 로마의 신 '야누스'에게서 기인했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1월은 지난 과거와 새로운 미래의 모습을 동시에 지니고 있고, 지나간 겨울과 다가올 봄을 동시에 품고 있는 시간이기에.
일주일은 자의적으로 설정된 시간 단위
그런데 유독 일주일 단위만은 이런 자연의 흐름이나 법칙에 근거하지 않는 자의적인 구분이다. 1주일을 왜 7일로 정했을까? 그리고 그 요일의 이름은 어떻게 정해졌을까? 동양의 경우 일주일의 이름이 월, 화, 수, 목, 금, 토, 일의 음양오행을 나타내지만 실제 요일은 이 명칭과 아무 상관이 없다. 영어식 일주일 표기는 더더욱 자의적이다. Monday, Tuesday... 등등의 요일 이름은 인간의 신체리듬이나 자연의 흐름, 지구나 태양, 달의 움직임과 변화와는 무관한 임의적인 기표일 뿐이다. 수요일을 의미하는 독일어의 Mittwoch는 심지어 그냥 '일주일의 중간'이란 뜻이다. 프랑스 혁명기에는 잠시 혁명력을 제정하면서 1주일을 지금처럼 7일 단위가 아니라 10일로 정한 적도 있다. 로베스피에르, 당통, 마라 등 급진 좌파 쟈코뱅 혁명세력이 자의적으로 일주일의 단위와 명칭을 정할 수 있었던 것이다.
온라인 게임인의 요일 감각이 자주 혼란에 빠지는 이유는 분명 이런 자의적인 일주일의 구분과 연관이 있다. 하루는 낮과 밤의 리듬, 1년은 봄 여름 가을 겨울의 계절에 순환에 따라 정확하게 혹은 어렴풋이 인간의 몸이 이를 감지하지만 시간 단위 중에서 유독 일주일만 인간의 생체 리듬과도 자연의 흐름과도 관련이 없다. 그래서 오늘이 목요일인지 금요일인지 자주 헷갈리고, 주말이 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일요일 오후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 것이다.
존재와 시간은 어떻게 연관되어 있나
그러나 온라인 게임인이 자주 빠지는 요일 감각의 혼동은 사실 더 근본적인 곳에 원인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것은 바로 노동에 대한 본능적 거부감이다. 쉽게 말해 온라인 게임인은 같은 조건이라면 일하기는 것보다 노는 것 혹은 쉬는 것을 더 선호한다. 그러므로 목요일만 되어도 벌써 온라인 게임인의 몸은 휴식을 갈망하는 것이고 그 소망을 담은 감각은 목요일을 금요일로 착각하도록 작동한다. 마찬가지로 어느덧 일요일 오후가 되어 내일이면 출근해야 하는 온라인 게임인의 어두운 마음은 오늘이 일요일이 아니라 토요일 오후임을 소망하게 하는 것이다. 존재와 시간은 이렇게 연관되어 있다. 어쩌면 인간에게 시간은 이런 식으로만 규정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쉽게 말해, 현대슬롯의 온라인 게임인에게 노동은 여전히 힘들고 어렵고 바람직하지 않은 것으로 지각되고 그 거부감이 이런 시간 감각의 오류를 통해 나타나는 것이다. 이런 말을 하면, '온라인 게임에 다니는 것을 다행으로 알고, 일하는 게 얼마나 좋은 일이냐, 인간은 열심히 일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분들의 심기는 매우 불편하실지도 모른다. 그러나 노동이 그리도 좋은 것이라면 왜 우리 슬롯는 노동을 권장하고 장려하는 도덕을 만들어 낸 것일까? 휴식보다 노동이 인간에게 좋고 바람직한 것이라면 우리 슬롯가 그렇게 목청 높여 권장하지 않아도 알아서 열심히들 일 할 텐데 말이다.
노동이 그렇게 숭고하고 좋은 것이라면
인간의 노동이 그리 신성하고 소중한 일이라면 신은 왜 자신의 말을 거역한 인간에게 노동을 형벌로 부과했을까? 자본가나 노동자 모두 왜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고 하는 걸까? 슬롯주의 조국의 인민들에게 국가는 왜 '노동하는 사람이 주인된 세상에서 전투적으로 일하자'고 하는 것이며. 조국 근대화의 아버지는 왜 '일하면서 싸우고 싸우면서 일하자'고 온 국민을 그리도 달달 볶았을까? 왜 지금까지 존재한 모든 국가 이데올로기와 도덕규범은 심지어 노동자라는 이름 대신에 '근로자'라는 허위의식을 심어주며 부지런히 일하라고 했을까? 노동이 그렇게 좋은 것이라면 '노동'이라는 단어의 어원은 왜 모두 하나 같이 '고통' 혹은 '고역'이란 뜻에서 기원했을까?
사실 현대 자본주의 슬롯에서 인간의 노동은 심지어 고대 노예제 슬롯에서의 노예노동보다 더 나을 것이 없다. 어쩌면 더 가혹하고 잔인할지 모른다. 최근 의사들의 진료거부 사태나 다른 여타의 생존권 투쟁을 보면 '우리는 노예가 아니다!'라는 구호가 종종 등장하는데, 사실 이 구호는 수정되어야 한다. '우리는 차라리 고대의 노예이고 싶다'라고. 현대 자본주의 슬롯의 임금 노예는 고대슬롯의 노예보다 노동시간이나 노동 강도 면에서 더 가혹하고 더 고된 (감정)노동에 시달린다.
소수를 제외하고는 대다수의 자본주의 슬롯 임금노동자는 자기 노동의 결과물과 노동과정에서 소외되어 있으며, 심각한 감정노동에 시달리고 있는 게 사실 아닌가? 그러므로 아무리 구호나 이념으로 노동을 찬미하더라도 온라인 게임인 노동자의 몸은 노동을 거부한다. 그 노동에 대한 본능적 거부감과 반감이 요일 감각의 혼동으로 나타나는 것은 아닐까?
목요일을 금요일로 착각한 어느 온라인 게임인 노동자의 노동과 소외, 존재와 시간에 관한 얕은 단상을 기록해 보았다. 노동시간은 더 축소되고 더 나눠져야 하며, 노동하는 주체의 자기실현과 성장이라는 노동의 본원적 기능은 회복되어야 한다고 믿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