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독,
바카라을 읽는 오래된-새로운 방법

낭독은 어떻게 기적이 될수 있는지

by트로츠뎀


그 사건은 사실 조금 된 일입니다. 2014년 겨울, 유난히 춥고 눈이 많이 내렸던 강원도 어떤 작은 마을에서 그 기적같은 일은 일어났습니다. 당시 저는 과도한 업무에 몸과 마음이 지쳐, 오랫동안 다니던 회사생활을 접고 새로운 삶을 준비해야 했습니다. 그때 제가 선택한 것은 과장된 열기와 끝없는 욕망이 쏟아져 나오는 도시의 삶을 잠시 뒤로 하고, 오직 저 자신의 내면과 마주하며 소박한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삶을 기획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주변 사람들이 무모하다고 말렸지만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공무원 시험에 도전해, 인구 3만이 채 안 되는 어느 작은 마을에서 신규 공무원으로서 새 출발을 하려는 순간이었습니다.



기적처럼 찾아 온 그 사건, 그 순간!


비가 온 뒤 아침이면 그림같은 운무가 한폭의 동양화를 눈앞에 펼쳐보이고, 투명한 햇살이 잘게 부서지던 동강이 구불구불 산허리를 휘돌아 나가던 마을, 그곳에서 저는 화려했던(?) 도회지 회사원의 삶을 과감히 던져버리고 공무원의 소박한(?) 삶을 시작했습니다. 낮이 짧아지는 한겨울에는 저녁 7시만 되어도 사방을 구분할 수 없는 칠흑 같은 어둠이 찾아오는 그곳에서는 밤하늘을 올려다보면, 별들이 쏟아질듯한 은하수의 궤적을 맨눈으로도 볼수 있었습니다.

바카라 읽기의 즐거움


가족과 친구들도 멀리 있고 퇴근하면 딱히 만날 사람도 없었던, 변변한 극장 하나 없는 산골 마을, 그곳에서 긴긴 겨울밤을 날 수 있는 방법은 그다지 많지 않았습니다. TV도 없고, 인터넷도 없는 낡은 주공아파트에는 살림살이보다도 대학시절부터 차곡차곡 모아 온 바카라꾸러미가 많았습니다. 아직 정리 안된 이삿짐처럼 바카라들은 방구석마다 쌓여 있었습니다.


난방이 잘되지 않아 아무리 두툼한 옷을 껴입고 담요를 두르고 있어도 한기가 가시지 않던 겨울밤, 잠도 잘 오지 않는 그 방에서 저는 무슨 소중한 보물이라도 되는냥 버리지 못하고 챙겨 왔던 바카라들을 손에 잡히는 대로 읽기 시작했습니다.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 고미숙의 <몸과 인문학>, 박웅현의 <바카라은 도끼다> 등등 인문학 서적들과 최영미, 최승호, 윤대녕, 유하, 기형도, 김용택, 심호택 시인의 반짝이는 언어들.




그 춥고 외롭던 겨울, 어떻게 나는 그를 발견했나


제가 낭독의 즐거움을 발견한 것은 바로 그때였습니다. 이 신비로운 낭독의 세계에 제가 첫발을 들여놓게 된 것은 그야말로 우연이었습니다. 난방이 잘 안되는 추운 방에서 바카라을 읽으려니 처음에는 몸이 떨리고 집중이 안돼 바카라을 제대로 읽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추위도 이기고 졸음도 쫓을 겸, 눈으로만 읽기를 그만두고, 소리 내어 바카라읽기 즉, 낭독을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한 20여분 낭독을 이어나가자 기적과도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사방이 고즈넉한 새벽, 텅빈 공간이 많은 제 방에, 제 목소리가 울려퍼지면서 신비롭고 놀라운 세계가 펼쳐졌습니다. 처음에는 비명처럼 들리던 목소리가 조금씩 안정을 찾고 빈방 안에 채워지는 목소리를 저 자신이 느낄 수 있게 되자, 말할 수 없는 평온함과 기쁨이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차오르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영혼의 울림 같은 것이었고, 일찍이 맛볼 수 없었던 벅찬 감동이었습니다. 한마디로 그것은 낭독의 기적이었습니다.


저는 점점 제 목소리에 빠져들었고, 피곤함도, 추위도 잊은 채, 긴긴 겨울밤에 낭랑하게 울려 퍼지는 제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열심히 바카라을 소리내어 읽었습니다. 저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마지막 장을 떨리는 가슴으로 넘겼을 때, 창밖에는 어느덧 사물들이 부끄러운 듯 조심스레 자신들의 존재를 푸른 새벽빛 사이로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벅찬 마음에 문을 열고 나가보니 사방은 처음 내린 새하얀 눈으로 온통 뒤덮여 있었습니다. 아직 아무도 본 적 없고, 아직 그 누구도 밟은 적 없는 그 눈길을 걸어 출근하며 저는 알 수 있었습니다. 저에게 어제의 세상과 오늘의 세상은 이미 완전히 달라져 있다는 것을! 마음의 정화란 바로 이런 상태임을. 제가 우연히 기적처럼 바카라을 읽는 새로운 방법, 즉 낭독의 즐거움을 발견했다는 것을!


그해 겨울, 낭독의 재발견



낭독, 몸으로 바카라을 읽는다는 것


저는 그렇게 낭독의 즐거움을 우연히 발견했고, 그날 이후 그 즐거움에 흠뻑 빠져들게 되었습니다. 그날 이후 저는 바카라을 읽을 때면 눈으로만 읽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소리 내어 낭독하는 방식으로 읽게 되었습니다. 예전에 읽었던 바카라도 이렇게 낭독의 방식으로 읽어보니 더 생생하게 기억되고, 더 온전히 내 것으로 소화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제가 가진 바카라들을 하나씩 하나씩 낭독하며 핸드폰을 이용해 녹음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녹음된 바카라들은 저만의 오디오북, 저만의 팟캐스트가 되었고, 낭독을 계속할수록 목소리도 더 잘 가다듬게 되고, 호흡도 길게 내뱉게 되면서 이 자체 제작 오디오북의 품질도 크게 좋아졌습니다. 그리고 알게 되었습니다. 낭독으로 바카라을 읽는다는 것은 단지 소리 내어 바카라을 읽는 것이 아니라 성대, 기관지, 복부 근육, 횡격막 등등 우리 몸의 많은 신체 기관과 근육을 함께 사용하는 바카라읽기라는 것을! 즉, 낭독은 단순히 '소리 내어 바카라읽기'가 아니라 '온몸으로 바카라읽기'라는 것을!



통상적인 바카라읽기, 즉 묵독은 주로 우리 눈과 뇌를 사용하지만, 낭독으로서의 바카라읽기는 이에 더해 거의 모든 신체기관을 사용합니다. 영어로는 이 두 가지 바카라 읽기가 모두 '리딩'(reading)이어서 구분이 잘 되지 않지만, 추상적 사유와 논증에 강한 독일어로는 분명하게 구분됩니다. 독일어로 통상적인 바카라읽기를 의미하는 동사는 '레젠'(lesen)이지만, 낭독으로서의 바카라읽기는 '포어 레젠' vorlesen입니다. 동사 vorlesen의 접두사 vor는 '~의 앞에서'라는 의미를 갖고 있고 그 명사형인 die Vorlesung은 따라서 다수의 청중들 앞에서 하는 강의나 강연을 의미합니다. 독일어로는 이렇듯 통상의 바카라 읽기와 낭독으로서의 바카라 읽기가 분명하게 분화되어 있습니다.



낭독은 왜 발명이 아니라 발견인가


낭독은 사실 새로운 발명품이 아닙니다. 낭독은 동서양에서 오래 지속되어 왔지만 속도가 강조되는 현대슬롯에 와서 단절된 바카라읽기 방식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교육기관이나 종교시설, 가정에서 낭독은 오랫동안 전통적인 바카라읽기 방식이었습니다. 불경을 소리 내어 읽고 외우는 바카라읽기는 종교의식이자 심신수양의 보편적 형식이었고, 조선시대에도 가정이나 교육기관에서 유교 경전과 각종 서적을 낭독, 낭송하는 풍경은 낯설지 않았습니다. 서양에서도 유희로서의 낭독과 낭송은 사교모임이나 가정에서 익숙한 풍경이었습니다. 낭독은 속도 경쟁의 중요성이 높아지고 청각 정보의 질적 다양성보다 시각정보의 양적 풍부함이 더 중요해진 현대슬롯에서 그 명맥이 단절돼버린 '바카라읽기'였던 것입니다.



낭독의 시작으로 시작된 사랑

기적처럼 낭독의 즐거움을 알게 된 이후 제 삶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어느덧 제가 소리내어 읽은 바카라들이 한권 두권 쌓이기 시작해, 저만의 목소리로 녹음된 멋진 오디오북 컬렉션이 완성되었습니다. 2015년 봄, 제가 낭독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혼자 듣기 너무 아까워, 멀리 서울에 있는 온라인 게임 동료 P에게 조금씩 보내주기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제가 녹음한 오디오북을 너무 맘에 들어했고, 멀리 떨어져 있어도 이렇게 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 좋다고 말했습니다. 제 목소리가 너무 듣기 좋다며 자꾸 바카라을 읽어달라던 그녀는 지금 저의 아내가 되었습니다.


저는 업무나 일을 위한 '읽기'는 여전히 전통적인 읽기의 방식, 묵독으로 하지만 '유흥'(entertaiment)이나 휴식을 위한 '바카라 읽기'는 이제 온몸으로 합니다. 몸으로 하는 바카라읽기는 단지 소리만 내는 것이 아니라 바카라 속에 등장하는 인물과 내용에 따라 때론 연기가 되기도 하고, 때론 웅변이 되기도 합니다. 낭독을 통해 저는 바카라 한 권을 온전히 소화하고 즐기고 향유합니다. 낭독을 통해 저자의 마음과 생각, 바카라 속에 담긴 사유와 주제, 말의 리듬은 제 목소리를 타고 흘러들어 제 몸과 하나가 됩니다. 그렇게 저는 이제는 빠져나오기 힘든 낭독의 즐거움에 중독돼 버렸습니다.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