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들의 블랙리스트

매장을 밴(Ban)하는 라이더의 작은 권력

by플랑시


배달앱들의 조리완료 예정시간은 대부분 어느 정도의 버퍼를 갖고 있었다. 주문 시간으로부터 + 몇분으로 계산된 걸로 예상되는 예상시간은 화면에 뜨는 시간보다 조금 빨리 음식이 준비될 수 있도록 설계된 듯했다. 아마도 배차알고리즘이 훨씬 복잡해서 주문의 부하정도와 라이더의 위치정보를 담은 ETA를 고려한 최적화가 이루어져 있다고만 알고 있는데, 영업비밀이다 보니 플랫폼에서는 공식적으로 알려주진 않았다.


나는 대부분 앱에 표시된 도착예정시간보다 빨리 가게에 도착했다. 예정시간보다 조금 빨리 음식이 나와서 바로 픽업이 가능한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내가 볼 때 그건 언제까지나 평시기준이었다. 와퍼 반값 행사를 하면 버거킹이 터졌고, 월드컵 경기일엔 치킨집이 터졌다. 주방의 인력구조는 평시 기준으로 유지되니 특수상황이면 박터지는 매장에서 직원과 라이더 그리고 줄 선 손님들까지 모두가 울상이었다.




특수는 반대급부로 오는 높은 단가가 있어 라이더들에게 기회이기도 했지만 상습적으로 평시에 조리가 늦는 매장은 기피대상이 되었다. 배달 커뮤니티에는 기피업장과 배달지를 공유하는 게시판이 있어 라이더들이 실시간 조대 업장과 상습조대 업장을 공유했고, 포장불량이나 갑질매장이라고 고발하는 경우도 있었다. 물론 양쪽 말 들어봐야 하지만, 히스테릭한 사장이 하는 식당은 좌표가 찍혔다. 해당 지역 라이더 전부가 그 가게를 거부하는 강제력까진 아니더라도 라이더 다수에게 불매운동이 벌어지면 해당 매장은 배달주문건이 쌓이고 빠지지는 않는 상황을 겪을 수 있었다.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한 것처럼 봉지가 쌓이는 매장을 누군가 다녀가면서 글이나 사진을 남기기도 했다. 이 필드에서 개인이라고 볼 수 있는 가게와 집단인 라이더들 사이에선 묘한 권력관계가 형성되므로 가게들이 눈치를 보는 상황도 가능해 보였다. 아닌가, 양쪽 다 조직화되기 어려운 개인사업자 덩어리들인가. 적어도 취소 찍고 나갈 수 있는 쪽은 내쪽이었다. 특정기사는 안받아요는 어렵지만 특정가게는 안가요는 좀 더 명확했다.




배달을 시작한지 얼마 안 된 겨울날, 점심미션 한가운데에서 들어간 돈까스집이 터져있었다. 홀 주문이 꽉 찬 상태에서 밀려든 배달주문 때문일까, 주방은 노년의 여성 한 명이 담당하고 있었고, 머리를 뒤로 묶은 커다란 안경을 쓴 중년 여성이 홀서빙과 포장을 담당하고 있었다. 사장이라기보단 직원느낌이었고 손이 느렸다. 일한지 얼마 안 된 사람이 과부하가 걸린 듯 한 모습에 포스기 앞에서 저 너머를 보다가 성미가 더 고약해졌다. 몇몇 라이더가 더 들어와 서있었고, 그들이 동시에 주방을 쏘아보는 눈길을 느낀 후 두 돈가스집 직원은 더욱 굼떠졌다. 새치가 드문드문한 아무렇게나 묶은 머리칼과 헐렁한 라텍스 장갑이 어쩐지 괜히 초짜냄새가 났다. 주문지와 봉투사이에서 어리바리하게 헤매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본능적으로 그녀가 약자임을 깨닫고 더 기세등등하게 갑이 되었다.


늦었다는 티를 내며 몇 번 쓰읍거리는 소리로 쪼다가 조리완료 시간보다 몇 분이 지체되고 나온 봉지를 낚아채며 싫은 소리를 굳이 한마디 건네며 매장을 나섰다. 그후 몇건의 배달을 더 도는 동안 돈가스집 직원의 죄송하다는 말에도 답하지 않고 나온게 한구석에서 찜찜했다. 몇 주 뒤 다시 그 가게를 가게 되면서 사과까진 엄두가 나지 않았지만 인사라도 잘하고 와야겠단 생각으로 들어갔을 땐 그분은 보이지 않았다.



배달을 하다 보면 기피하는 배달지도 생겼다. 자전거를 주차하고 한참 걸어가야 하는데 미로 같은 구조라 시간과 체력소모가 큰 대형쇼핑몰 가든파이브와 화물차가 쉴 새 없이 오가서 무서운 동남권 유통단지는 경험이 쌓일수록 거절하게 됐다. 택배사와 쿠팡의 지역 물류 허브같은 이 거대한 건물은 처음엔 신기해서 구경 가듯 가봤지만 엘리베이터를 잘못 탔다가 컨베이어벨트 사이에 갇혀서 출구를 한참 못찾은 날 이후로 피하게 됐다. 어떤 주상복합 아파트에서는 보안을 사유로 들어갈 때마다 방명록을 쓰게 시켰는데 기분은 상했지만 고압적인 말투에 비해 늙고 지친듯한 경비원의 모습에 동류감을 느껴 매번 고분고분 따랐다. 라이더들이 기피한 배달지의 고객은 음식이 늦게 오는 피해를 겪지만, 배달지연을 이유로 취소하면 금전적인 피해는 가게가 볼 터였다. 자영업자 커뮤니티에서는 또다른 고충과 울분들이 실시간으로 쏟아질 거란 생각이 들어 한동안 궁금했지만, 내겐 다른 세상을 들여다볼 여유가 없었다.





올해 내 유일한 수입원인 고마운 플랫폼을 악마화할 수는 없더라도 그들이 수퍼 갑이란 사실은 명징했다. 배쿠는 식당과 라이더와 고객이 아웅다웅하는 모습을 내려다보며 다음 배차를 최적화하면 그만이었다. 주문이 안빠지면 해당건 단가에 할증을 프로토콜대로 붙이고, 그러면 또 누군가는 그걸 수락하고 달려갈 일이었다. 라이더들은 개민아 좆팡아 외치며 오늘 당장 앱 지운다고 온라인에 말하다가도 주문에 황금색 별표와 함께 추가된 몇백원이면 조용히 콜을 받았겠지. 일단 내가 눌렀어 미안. 누가 수락을 누를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니 일종의 죄수의 딜레마에 빠진 격. 애초에 정보비대칭인 판에 들어온 이상 무엇이 유리한 게임인지 알 수 없을뿐더러 라이더 개인에게 당장 필요한 패는 오늘의 일당이기 때문이었다.


배민과 쿠팡이 잘라먹은 영토에서 가게들도 벗어날 옵션이 없었다. 플랫폼이 외식업의 파이를 키운 건지 정해진 파이안에서 나눠 먹는지까지는 사후적 판단이더라도, 당장은 돈을 내고 가게를 홍보해야만 앱 상단에 노출되는 구조에서 계속 새로운 더 비싼 요금제라도 받아들여야만 했다. 전화주문을 받는다고 써둔 닭똥집 사장의 작은 화이트보드는 세 뼘만 한 크기만큼이나 무용해 보였다.



일 매출은 채웠지만 비가 오려해서 배달을 더 이어갈까 고민하던 오후, 마침 저번 그 닭똥집 가게가 근처였다. 냄새에 이끌려 들어가 순한맛 강정을 주문하고 앉아있었다. 작은걸로 주문하면 반쯤 내가 먹고 나머지는 아이 간식으로 하면 딱일 사이즈 같아 충동적인 지출을 감행했다. 사장님은 배달 주문이 없는데 헬멧 쓴 아저씨가 들어와 있으니 잠깐 놀랐다가 후다닥 주물 웍을 잡았다.


“아 그… 포장으로 할려고요. 소짜 안 맵게요.”


영업을 시작한지 얼마 안 됐는지 가게는 한가했다. 비가 살짝 뿌리는데도 기상할증도 콜도 없어 이상했는데 사장님이 말을 걸었다. 저번 똥집 한 컵은 기억나지 않았는지 알아보는 눈빛은 아니었다.


“기사님 오늘 콜좀 있어요?”
“아뇨. 비도 오는데 영 안 붙네요.”
“주말부터 배민 거리제한 걸려서 그래요. 그거 일킬로로 쫙 줄여버린다니까.”
“거리제한이요?”


사장님이 기세가 올라 분노를 담아 이런저런 말을 다닥다닥 쏟아내는데, 당이 떨어졌나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황급히 “거리제한”을 검색했다. 비가 많이 오거나 라이더가 부족하면 반경 4km였던 주문범위를 1km로 좁혀버려서, 그 밖 고객 화면엔 가게가 그냥 "준비중"으로 뜬다고 했다. 배민은 주문이 폭주해 배달 품질이 떨어지고 안전상 위해가 되는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서라 했고, 라이더들은 자신들의 몫인 거리수당을 줄이려는 속셈이라 의심했다. 어느 쪽 말이 맞는지는 알 길이 없었다.

당장 매출은 빠지더라도 손익은 나아지는 방법으로 고정비와 한계이익에 목멜 필요가 없는 플랫폼이 취할 수 있는 전략일까, 회계라고는 영어강의 수업 C+가 마지막이었는지라 배달앱의 전략은 넘겨짚을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단거리 위주로 배차되는 자전거인 내가 체감하긴 쉽지 않은 영역이지만 하나는 분명했다. 거리제한과 같은 앱 화면너머 어떤 조치들도 대자연의 섭리에 따른 비와 마찬가지로 그저 내리면 맞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