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다마나(Vardhamana) ch.1
오랜만에 만난 구르만씨는 K가 알던 사람이 아니었다. 기존에 알던 양상이 아니었고, 태도가 아니었다.
토요일 오전, 호기롭게 집을 나선 K는 결국 집 근처 공원으로 향한다. 주중 바쁜 업무로 못다 본 신문을 보며 그늘가에 앉아 있는데 저 멀리 벤치 앞이 웅성인다. 이상하게 신경이 쓰여 곁눈으로 건너보니, 모자를 눌러쓴 청년이 사람들 앞에서 말을 하고 있다. 내용은 잘 안들리지만 온갖 유머를 동원하는지 대소 실소 조소 폭소 가소로 소란스럽다. 하나둘 모여든 사람들이 시선을 사로 잡힌채 한동안의 소동을 일으킨다. 얼마간 시간이 흘렀는지 그 소요도 잠잠해지고 신문과 신문 너머의 불특정 경계로 K의 시야가 초점을 찾아 헤매는 나른한 주말 오전의 공원이다.
"인생을 바꿔보시겠습니까"
돌발적인 고성에 얼떨떨하게 흐려지던 시야를 다잡고 신문을 내려보니
<K씨?!> 커다랗게 적힌 A4 용지를 들고 K의 맞은편에 앉아서 누군가 웃으면서 쳐다본다.
"구르만씨?"
아까 그 청년이다.
K와 구르만씨의 이야기는 1년전 싱가포르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금은 아시아 게임시장을 선도하고 있는 한국 바르다컴퍼니에서 개발된 AR 증강현실게임 <바르다마나>는 1년전만 해도 국내에서 10위권 정도의 접속자를 지닌 게임이었다.
아시아 진출을 위해 업데이트를 한창 준비하던 K는, 새롭게 오픈한 싱가포르에 공간 매핑 업데이트를 위해 찾게 된다.
구르만씨는 그 때 인연이 되어 함께 싱가포르 출장을 갔던 사람 중 한 명이었다. 매니아들에겐 나름 경쟁이 치열한 게임이었기에 회사차원에서 3차의 면접 끝에 당시 업데이트에 합류하게 된 유명한 얼리어답터였다.
얼리어답터들은 이미 국내의 컨텐츠들은 모두 넘어섰기에 새로운 업데이트를 고대하고 있었다. 경험치를 쌓고 새로운 anchor를 먼저 선점하고 싶어 경쟁이 치열했고 함께 참여한 사람들은 말그대로 헤비유저들이었다.
게임을 하는데에는 휴대폰과 기본적인 AR기기만 있으면 되지만 사람의 바이탈을 체크하는 여러 고가 아이템들이 있을 수록 레벨업이 빠르고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스킬들이 열리도록 되어 있었다.
일상생활을 할때도 게임에 접속해두면 성장이 빠르기 때문에 상시접속할 수 있는 안경, 각종 바이탈체크가 가능한 시계, 숨겨진 anchor를 시시때로 찾아주는 단추카메라 등등 많은 아이템 및 연동가능한 기기 생태계가 있었고 발빠르게 관련 사업에 뛰어든 패션 브랜드들의 매출이 누적적으로 가시화되는 가운데 회사들의 주가 역시 꿈틀꿈틀 오르고 있었다. 당시에 신체에 삽입하는 제품들도 개발 단계로 나오는 중이었고, 헤비유저였던 구르만씨는 유기물 디스플레이를 손목 피부에 가볍게 삽입하는 형태의 기기도 활용중이어서 지역 신문 기사에 나오기도 했던 사람이었다.
구르만씨는 시중에서 구입할 수 있는 각종 ar기기 및 바이탈센서, 아직 발매전인 신체 삽입 센서에 제작자들에게 새로운 아이디어를 줄 수 있는 연동가능한 각종 기기까지 모든 것을 가지고 참여했었다. 구르만씨 같은 헤비유저이자 매니아들은 단순히 유희가 아니라 다소 광신도적인 집착을 가지기도 했다. 그들에게 있어 개척도가 0인 싱가포르 클로즈 베타 서비스 이전의 업데이트 참여는 인생의 목표라도 되는 듯 더욱 집념과 광기를 머금은 매니악한 이벤트였다.
K가 구르만씨를 더욱 기억하는건 유기물 디스플레이를 손목에 장착하는 시술을 같은 자리에서 받았다는 것 이외에도 성씨가 같았기 때문이다. 흔하지 않은 성씨인 구씨와 K는 구르만이라는 캐릭터명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서로가 같은 성씨란 것을 알게 되었다.
기대와는 달리 일정은 다소 따분했다. 초기 게임회사 답게 자본이 항상 부족했다. 그래서 싱가포르 관광청의 초청 및 후원이 필요했고 여기에 게임 요소를 더한 천편일률적인 일정이었다. 그럼에도 각종 관광지들을 돌면서 렙업을 하는 구르만씨는 광적이었다. 유저가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 그의 손목에도 심어둔 shadow tracker를 보면 그가 거의 며칠째 잠을 자지않고 몰두해 있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그를 서서히 추격하는 이스터에그. 말그대로 증강현실상에는 사용자가 눈치채지 못하게 반타블랙의 작은 점으로 따라다니는 그 그림자에 정량화된 데이터만이 그의 정성적인 활동량을 짐작케했다.
마지막 코스는 가든스 바이 더 베이. 싱가포르의 대표적인 관광명소이자, 내부적으로는 새롭게 시험운영중인 바르다컴퍼니의 싱가포르 데이터센터가 있는 곳이라, 그 곳은 얼리어답터들을 위한 이벤트 장소로 아주 적격인 곳이었다. 불꽃쇼를 보던 도중 시각적 어지럼증을 일으키고 실제로 유저들이 신체적 어지럼증을 느끼며 싱가포르 ch.1을 마무리하는 업데이트이다. 역시나 몰두하고 있던 K를 비롯한 회사 직원들(이쯤이면 짐작하셨겠지만 이번 업데이트에 참여한 회사의 직원들 역시 헤비유저들이다. 직원들은 시각적 어지럼증을 유발하는 업데이트에 대해 알고 있었음에도 그 신체적 변화는 개인의 의지로 극복하기엔 어려운 종류의 것이었다.)은 불꽃쇼의 피날레가 오기 30초전 시야가 아득해는 것을 느끼며 업데이트가 상당히 잘 진행되었다는 사실에 들뜨기 시작했다. 신체적 변화로 인해 잠시 휘청하며 몸을 가누기 힘든 상황이 오고 불꽃쇼의 피날레와 함께 이벤트 완료창이 AR로 뜨는 과정이 차근차근 진행중이었다.
돌발상황. AR기기와 함께 몰입중이던 K의 시야는 예상대로 지극한 어두움이 감싸였다.
그런데 이벤트 일정상 다시 밝아져야 하는 상황에 이어폰 상의 기계적 파열음과 함께 시야를 그득히 어둠이 감싼다. 반타블랙. 빛의 부재.
그리고는 갑작스레 화면 가운데 붉은색 error 메세지가 떴다.
회사에서 error 메세지에 사용하는 체리 레드와 다소 색감이 다른,
투박한 폰트의 루비 레드의 error 메세지.
반사적으로 AR 기기를 벗은 K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실제로 가든스 바이 더 베이 전체에 갑작스런 정전 사고가 일어났고 사람들이 술렁이고 있었다.
그 순간, K는 우측 시야를 스치는 찰나의 어둠에 고개를 돌렸는데 구르만씨와 눈이 마주쳤다. 어두운 그림자가 구르만씨의 입부터 감싸고 있었고 그의 주변을 반타블랙의 Voxel 형태의 구조체로 순식간에 채우고 말았다. 그리고 마지막엔 구르만씨의 손목에 있던 유기물 디스플레이에 루비 레드의 작은 점이 잔상으로 남은채 그 자리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1초도 안되는 사이에 정전 사고가 해결되어 사위의 거대한 구조체가 부분부분 깜박였고, 불이 들어왔다.
무언가 잘못 본 것일까. 자신이 목격한걸 맨 눈으로 확인하고자 K는 재차 AR기기를 벗으려고 얼굴에 손을 뻗었지만 AR기기는 이미 처음 error 메세지와 함께 반사적으로 벗은 상태였다.
K가 안경을 비롯한 AR기기를 손에 든 채 지극한 현기증에 시달리는 사이, 사람들은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쇼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싱가포르 출장 일정에서 구르만씨는 사라졌다. 당시엔 구르만씨가 성인이었다는 점, 일정자체는 개인 자율이었기에 구르만씨가 편도표만 구매한채 참여했다는 점, 그 이외에 실종신고나 특정 사건이 싱가포르 당국 경찰에 신고되지 않았다는 것들을 내부적으로 참작하여, "다른 개인 일정에 참여하기 위해 일부 참가자들이 업데이트 이벤트 후 이탈했다" 는 K의 보고서로 마무리 되었다.
그렇게 사라졌던, 구르만씨가 오늘 한국 서울의 작은 공원에서 다시 K의 인생에 등장한 것이다.
K의 당혹스러움은 아랑곳하지 않은채 웃으며 구르만은 재차 말한다.
"인생을 바꿔보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