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이 깨어났다

HA...

by석은별

오늘 왜 이렇게까지 화가 났는지 가만히 내면을 들여다보았다.

처음에는 제주도에 간 남매에게 연락이 닿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아이들이 어떤 일정으로 움직이는지 잘 알기에, 바쁜 현장에서 연락이 안 되는 것 자체는 전혀 문제 될 게 없었다. 오히려 밥은 제때 먹고 다니는지, 더위에 탈수가 오지는 않을지, 떠나기 전에도 잠을 못 잤는데 마흔여덟 시간을 깨어 밤샘 촬영을 버텨낼 수 있을지 걱정만 가득했을 뿐이다.


찬찬히 마음을 파고들어 가 보니, 화가 난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이번 제주도 일정이 나와 남편의 가슴 깊은 곳에 갇혀 있던 '기다림에 지친 아이'를 동시에 불러냈기 때문이었다.

나와 남편이 서로에게 끌려 부부가 된 데에는 하나의 결정적인 공통점이 있다.


우리는 둘 다, 기다림을 견뎌낸 아이들이었다.


가출한 엄마를 기다리던 남편의 내면아이.

친엄마와 마음껏 연락하지 못해 늘 서운함을 삼켜야 했던 나의 내면아이.

우리는 기다리는 일에 지나치게 익숙한 아이들이었다.

소중하지 않은 타인을 기다리는 일은 얼마든지 잘 견뎠다.

하지만 소중한 존재가 되고 난 뒤에는 달랐다.

아주 짧은 기다림조차 불안과 두려움에 불을 붙이는 잔혹한 공포가 되었다.

.

.

.

이번 제주도 촬영은 딸이 연출을 맡은 작품이었다.

필요한 비용도, 용돈도 아낌없이 보탰다.

아니, 딸은 당당하게 필요한 것을 요구했고 우리는 기꺼이 그것을 후원했다는 표현이 더 맞겠다.

촬영 일정이 빡빡하다는 건 잘 알고 있었다.

길게 통화할 생각도 없었다. 그저 살아있다는 안부 한마디면 충분했다.


그런데 셋째 날, 일행들과 해산한 뒤 비행기 탑승까지 열 시간이 넘게 남아있었음에도 두 아이 모두에게서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남편도 나도 단체 대화방에 안부를 물었다.

둘 다 메시지를 읽었다.

하지만 답은 없었다.

마치 깊고 어두운 동굴 안에서 남편이 한 번 외치고, 내가 한 번 외친 뒤,

차가운 메아리만 돌아오는 기분이었다.

숫자 '1'은 사라졌지만, 그곳엔 이모지 하나조차 남지 않았다.

‘우리가 모르는 일정이 또 생겼겠지.’

어떻게든 이해해 보려 애썼다.


맛있는 걸 사 먹으라고 보낸 돈, 커피를 사달라기에 바로 주문해 준 쿠폰.

휴대폰에는 카드 사용 알림만 덩그러니 찍힐 뿐, 아이들은 끝내 아무 말이 없었다.

그 순간 마음이 뒤집혀 버렸다.


억울했다. 그동안 기꺼이 쏟아부었던 후원과 호의가 순식간에 아깝게 느껴졌다.

존중받지 못하는 기분. 호의를 당연한 권리처럼 여기는 모습에 괘씸함이 밀려왔다.

고작 10초였다.

"잘 먹었어요."

"지금 이동 중이에요."

그 10초짜리 짧은 응답 하나만 있었어도 아무렇지 않았을 일이다.


하루 종일 손에서 휴대폰을 놓지 않으면서 부모의 연락은 외면하고, 메시지는 읽고도 씹어버리는 모습.

아이들은 그 10초를 아끼려다 부모와 자식 사이에 커다란 적신호를 켜버린 것이다.

부모의 이해는 당연하게 바라면서, 자신들이 부모를 어떻게 기다리게 만드는지는 전혀 돌아보지 않는 태도.

겨우 두 번 전화했을 뿐인데, 마치 병적으로 수십 통씩 부재중 전화를 남기는 극성 부모 취급을 받는 것 같아 불쾌함이 치밀었다.

이십 년 넘게 키운 대가가 겨우 이것인가.

.

.

.

열흘 후에 딸은 호주로 떠난다.

1년 동안 얼굴조차 보지 못한다.

그 긴 시간을 또 이런 식의 차가운 기다림으로 버텨야 한다고 생각하니, 차라리 지금 마음을 완전히 접어버리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심지어 아이들에게 똑같이 보복하고 싶다는 서슬 퍼런 마음까지 올라왔다.


그 순간 깨달았다.

이것은 아이들 때문이 아니었다.

어린 시절, 그리움과 기다림에 지쳐 비명을 지르던 내가, 다시는 그 지독한 시간을 겪고 싶지 않아 발버둥 치는 것이었다.

깊은 잠에 들어있던 괴물이 깨어난 것이었다.

그 괴물은 나를 향해 비웃음을 날렸다.


“꼴 좋다. 그렇게 잘난 척, 우아한 척하더니. 결국 네 자식한테 똑같이 당하는구나.”


그래. 어쩌겠는가.

평생 내 등 뒤에 짊어지고 살아가야 할 나의 괴물인 것을.


하지만 다행인 점이 하나 있다.

이 괴물은 오직 나만이 다시 재울 수 있다는 사실이다.

남편 안에서 깨어난 괴물 역시, 오직 남편만이 달랠 수 있다는 것.

이번에는 아이들이 그 괴물의 자물쇠를 건드렸을 뿐이다.

그러나 괴물을 달래고 재우는 일까지 아이들의 몫일 수는 없다.

그건 온전히 우리 자신의 몫이다.




기다림이 익숙했을 뿐, 단 한 번도 즐겁지 않았던 한 아이가 있었다.

엄마가 전화하겠다고 약속한 시간이 되면, 아이는 집으로 달려가 전화벨이 울리기만을 기다렸다.

한 시간이 지나도 연락은 오지 않았다.

참다못해 먼저 전화를 걸면 돌아오는 건 늘 같은 대답이었다.

"지금 손님이 많아서. 조금 있다가 다시 걸게."

그래도 기다릴 수 있었다.

어쨌든 엄마는 내가 건 전화를 받아주었고, 적어도 이유를 설명해 주었으니까.


그러던 어느 날, 한 남자를 만났다.

통화하기로 한 시간에 내가 조금 늦게 전화를 걸었더니, 그 남자는 다짜고짜 화를 냈다.

약속을 안 지킨다, 거짓말쟁이다, 원망을 쏟아냈다.

나는 조용히 말했다.

“기다렸을 텐데 미안해요.”

“………”

잠시 정적이 흐른 뒤, 그 남자가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차라리 나보고 전화하라고 했으면 덜 기다렸죠. 저는 기다리는 게 정말 끔찍하게 싫어요."

그 말에 눈물이 쏟아졌다.

그 남자가, 지금 내 곁에 있는 남편이다.


남편은 어린 시절, 아버지의 폭력 속에서 어머니가 집을 떠나던 순간을 똑똑히 기억한다.

외갓집에 다녀오는 줄 알고 어린 손으로 어머니의 가방을 버스정류장까지 들어다 주었다.

며칠 뒤 할머니가 홀로 짐을 들고 돌아오는 모습을 보고서야, 엄마가 영영 돌아오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그럼에도 남편은 기다렸다.

혹시라도 자신이 보고 싶어 돌아올까 봐, 어린 동생이 걱정되어 올까 봐.

며칠이 몇 달이 되고, 몇 년이 되도록.

기다림은 삶이 되었지만, 끝내 그 속의 두려움은 사라지지 않았다.




기질도, 성격도 무엇 하나 맞지 않는 우리였다.

그런 우리가 평생을 함께 살아온 이유는, 서로가 서로를 절대로 버리지 않을 것이라는 단 하나의 믿음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이번 제주도 일정은 딸을 통해 우리 두 사람의 괴물을 동시에 깨워놓았다.

딸이 우리의 이 비참한 사정을 이해할 필요는 없다.

이 괴물은 온전히 내 것이고, 남편의 것이기 때문이다.

잠시 막막할 뿐이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이 괴물을 가장 잘 다룰 수 있는 사람 역시 우리 자신이라는 것을.

남편의 괴물은 물을 잔뜩 머금은 스펀지처럼 무겁고 질척거린다.

나의 괴물은 눈빛과 말로 무기를 던지며 불을 뿜는다.

나는 실컷 퍼부어 내고 나서야 겨우 가라앉을 것이고,

남편은 한없이 가라앉은 뒤에야 천천히 떠오를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또 서로를 끌어안고 살아갈 것이다.

월, 수, 금 연재
이전 09화넌 나에게 무얼 원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