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전 오늘이었다.
취업에 필요한 건강검진을 받기 위해 대학병원에 도착했다. 그 병원은 조만간 내 새로운 터전이 될 곳이었다. 차에서 내리려는데 화면에 낯선 번호가 떴다. 예약 시간이 촉박해 번호를 무시하고 대수롭지 않게 차 문을 닫았다. 조금 걸어가는데 이번엔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OO이가 죽었대! 경찰이 너한테 전화했다는데 왜 안 받았어?"
"...뭐라고? 왜?"
그날 이후 남편에게 걸려오는 갑작스러운 전화는 반갑지 않다. 남편은 퇴근길에 주로 가족들에게 전화를 걸어 어디 있는지, 저녁에 밥을 같이 먹을 수 있는지를 묻곤 했다. 그 외에는 딱히 통화할 일이 없었기에, 그 일상적인 통화 너머로 날아왔던 그 아침의 충격이 여전히 가시지 않는다.
동생이 죽었다는 소식에 당장 무얼 해야 할지 막막했다. 바로 다음 주가 첫 출근이라 건강검진을 미룰 수도 없는데, 머릿속은 하얗게 비어 내가 지금 당장 어디로 움직여야 하는지 떠오르지 않았다.
장례식장에 물어보니 지금 와도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했다. 언제 죽었는지 모른 채 발견된 거라, 우선 국과수에 부검을 의뢰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현장에 가장 먼저 도착할 수 있는 건 여동생이었다.
몇 년 만인가. 여동생에게 전화를 걸어 소식을 전하니 망설임 없이 말했다.
"내가 당장 갈게."
남동생 죽음 소식이 남편에게 가장 먼저 전달된 건, 녀석이 주민등록상 주소지를 우리 집 동거인으로 올려두었기 때문이었다. 연락 없이 지낸 지 7~8년. 어쩌다 연락이 닿으면 "주소지 좀 당장 빼 가라"며 냉랭하게 쏘아붙이던 내 목소리가 떠올랐다.
여동생은 남동생과 긴밀하게 연락하던 사이라 그런지, 내가 전한 소식에도 마치 예감이라도 한 듯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늘 그랬다.
너희 둘은 엄마 아빠가 같아서인지 서로 긴밀하게 연결돼 있었고, 나는 늘 조금 어려운 존재였다.
건강검진을 멈출 수 있는지 문의하고 현장 상황을 다시 확인했지만, 지금 당장 유족이 가서 할 수 있는 건 없다고 했다. 여동생마저 볼일이 있다면 다 보고 와도 된다고 말하는데, 그 배려 속에서 묘한 '외부인'의 소외감이 밀려왔다.
혈압이 낮을 리가 없다.
심장이 얼마나 쿵쾅거리는지.
의사에게 사정을 설명했다. 가족 부고 소식을 들었다고, 감안해서 봐달라고.
머리는 멍했고, 낯선 검진실들을 기계적으로 이동하는 내내 같은 질문만 반복했다.
'내가 지금 이걸 하는 게 맞나?'
건강검진을 마치고 차에 타서야 눈물이 났다.
두 시간 가까이 꾹꾹 버티던 온몸의 세포가 한꺼번에 열렸다.
몸속의 물들이 눈물과 땀, 콧물이 되어 쏟아졌다. 내가 나 같지 않을 정도로 울었다.
이 뒤죽박죽인 사건이 벌써 4년 전이다. 바로 오늘.
며칠 전부터 괜히 마음이 가라앉더니, 다이어리에 뜨는 동생의 이름을 보며 무덤덤할 수 없었다.
처음 2년은 그 죽음을 너무 빠르게 해소하려 애썼다.
작년에는 아무렇지 않은 듯 지내보려 했다.
올해는 뭐가 남았는지 살펴보는 마음으로 이 날을 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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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6월은 잔인한 기억이 많은 달이다. 곧 6월 25일은 나를 떠난 지 17년이 된 단비의 기일이기도 하고, 마이클 잭슨이 세상을 떠난 날이기도 하다. 뒤돌아서면 누군가의 죽음이, 이별이, 흔적이 밀려오는 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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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3학년 무렵이었던 것 같다.
내 기억 속에 우리 가족이 완전체였던 장면이 하나 있다.
할머니, 아빠, 새엄마, 두 동생. 그리고 나.
여섯 명이 둘러앉은 저녁상 위에 케이크가 놓여 있었다. 남동생 생일이었다. 한창 추울 때라 다들 두꺼운 옷을 입고 있는데, 주인공인 남동생만 아랫도리를 홀딱 드러낸 채 환하게 웃으며 손뼉을 치고 있었다.
그 장면 속의 나는 입을 삐죽 내밀고 있었다.
'나는 생일 케이크도 안 사줬으면서!'
투덜대던 내 목소리가 쟁쟁 울린다.
겨우 다섯 살도 안 된 꼬맹이에게 심술내던 그 표정이 아직도 보인다.
한편에는 사랑 많이 받아 오냐오냐 자란 나도 있었다.
한편에는 엄마 없다고 마음 다칠까 조심조심 대해주던 나도 있었다.
또 한편에는 아들이라는 이유로 새 옷과 생일상을 받는 남동생을 보며 소외감을 느끼던 나도 있었다.
나는 그 결핍 속에서 응석받이로 내 멋대로 굴던 나를 부풀려 삶의 원동력으로 삼아 살아왔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남동생을 향한 시기와 질투, 심술과 공격성도 함께 숨어 있었다.
나는 남동생의 죽음 앞에서,
내 시기와 질투가 파르르 떨며 들키지 않으려 숨어버리는 순간을 정확히 포착했다.
걱정하는 척.
위하는 척.
희생한 척.
그러면서도 떠오르는 장면들이 있었다.
남동생을 골목에 혼자 두고 온 일.
자는 모습을 보며 괜히 이불을 얼굴 끝까지 덮어버린 일.
쉰 밥인 걸 알면서 간장 비빈 밥을 먹으라고 준 일.
나는 그 기억들을 부정할 수 없었다.
어쩌면 검은 머리 짐승은 거두는 게 아니라는 말처럼, 진짜 검은 머리 짐승의 탈을 쓰고 있었던 건 내가 아니었을까. 그래서 더 따뜻한 척, 보살피는 척, 공감하는 척 살아온 건 아닐까.
누군가를 잃으면 더 잘해주지 못한 것을 후회하고 죄바카라감을 느끼는 게 정상이라고 한다.
하지만 나는 기억한다.
일부러 못되게 굴었다. 욕심부렸다. 곤경에 처하게 만들었다. 외롭고 비참하게 만들었다.
일부러...
그렇게라도 해야 직성이 풀렸던 나를 아직 완전히 버리지 못했다.
그 아이가 여전히 마음 한구석에 남아 나를 노려보고 있어서, 나는 가끔 내 자신이 무서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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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전 세상의 끈을 놓아버린 남동생의 명복을 빈다.
그리고 그에게 끊임없이 못되게 굴며 사랑을 갈구했던, 내 안의 가엽고 어린 소녀의 안녕도 함께 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