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과 눈이 마주쳤다

by석은별

어쩌면 너무나 사소한 해프닝일 수 있는데, 며칠째 쉽사리 감정을 진정시키지 못해 괴로웠다.

아침에 운전을 하는데 마치 실연당한 사람처럼 눈물이 터졌다.

퉁퉁 붓도록 우는 나 자신을 자각하면서도 멈추지 않았다.

왜 우는지, 무슨 감정인지 따져묻지 않고, 서서히 흐르기 시작한 눈물이 통곡으로 이어지는 순간까지 그대로 온몸으로 ‘체험’했다.


‘이렇게 펑펑 울었던 적이 언제였지?’

대성통곡은 분명 4년 전, 남동생의 장례식장이 마지막이었다.

비현실적인 비극 앞에서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향해 절규하듯 울었다.

그리고 내 삶을 동반하던, 못 떠난 혼들을 보내주듯 단호한 이별을 선언하자 울음이 뚝 그쳤었다. 사실 죽은 이들을 안고 살아온 것은 나 자신이었음을 그제야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그러다 아주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헤어져 집으로 돌아오는 길, 다시 눈물이 번졌다.

처음에는 그 친구를 향한 복합적인 감정 때문인 줄 알았다. 내 인생의 80퍼센트를 공유했던 친구의 변해버린 모습에 마음이 아팠다. 더 이상 그 순수했던 소녀를 볼 수 없겠다는 절망감. 어쩌다 탐욕과 분노, 어리석음으로 가득 차 버렸는지. 삶을 벼랑 끝으로 밀어 넣는 그녀를 보며 가슴이 아렸다.

친구는 자신의 고통스러운 경험을 장황하게 늘어놓으며 물었다.

“넌 힘든 일 없어? 남편이 잘해줘?”

“별일 없지. 늘 똑같아.”

“너는 잘 지내는구나...... 너도 힘들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 말과 함께 친구의 눈빛이 미묘하게 변하는 것을 보았다. 마치 사고 싶은 물건을 사지 못하고 뒤돌아 나오는 사람처럼 시무룩한 표정.

스치듯 들어온 그 표정을 괜히 깊게 읽지 않으려 애썼다.

하지만 이어진 대화에서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딸이 호주에 간다고 하자 친구가 물었다.

“우와, 어학연수 가는 거야? 이제 영어도 잘하겠네? 아, 연수 아니겠지. 워홀이지? 연수 아니지?”

“연수면 어떻고 워홀이면 어때서 그래?”

“그냥...... 난 우리 애들하고 바닥을 치느라 힘든데......”

순간 말을 삼키는 친구를 보며, 나 역시 더 이상 말을 얹지 않고 침묵을 선택했다.

내가 잘못 들은 것이길.


한참 동안 창밖의 새파란 하늘을 원망하듯 응시했다.

‘어쩌다 이렇게 된 거지? 내가 거짓말로라도 힘들다고, 마음고생이 많다고 해줬어야 했을까?’

친구는 화제를 돌려 타인의 이혼 사연을 늘어놓았다.

친구는 아무런 맞장구도 없이 창밖만 바라보는 내 귀에 대고 한참을 중얼거렸다. 그러다 내가 말했다.


“OO아. 내가 너한테 전문가가 되어줄 수는 없어. 그러니까 기분 나빠하지 말고 다시 병원에 가봐. 나아지려고 가는 게 아니라, 너 자신을 보기 위해서 가봐. 나 계속 너를 보고 있는데, 넌 도대체 지금 누구랑 같이 있는 거야?”

“……혹시 내가 너한테 잘못한 게 있어?”

“…….”

“우리 밥 먹으러 가자. 배고프다. 하늘 참 예쁘네. 밥 먹고 기분 좋게 헤어지자.”

문학을 사랑했고, 누구보다 마음이 따뜻하고 섬세했던 친구였다. 20여 년의 지독한 결혼생활이 그 아이에게도 중독의 흔적을 남긴 것일까. 내가 함께 있던 사람은 어린 시절의 친구이면서도, 전남편의 세계를 그대로 닮아버린 낯선 괴물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심장이 콕콕 찔리듯 아팠다.

함께 머무는 시간을 줄이고 나온 나 자신을 달래며 가슴을 토닥였다.


'기다려주자. 그래, 조금 더 기다려보자.‘


다음 날, 친구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은별아. 어제 너무 못난 모습을 보여줘서 미안. 내가 조금 더 단단해져 볼게. 사랑해. 내 친구.]

나는 답장을 남겼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에 네가 가장 행복해지길 바라. 계속 기도할게.]

이모티콘으로 답하는 친구에게 하나하나 하트를 눌러주었다.

꾹, 꾹, 힘을 주어 누르며 진심으로 그녀의 안온을 빌었다.

그렇게 오랜 세월 나의 동반자였던 친구의 소녀 시절과 작별했다. 친구의 변한 모습을 받아들이는 동안 나의 가치관도 흔들렸다. 어떤 상황에서도 친구의 편이 되어줄 수 있을 거라 믿었지만, 그러지 못하는 내 한계를 목격했기 때문이다. 나는 어쩌면 과거의 그 순수했던 소녀만을 억지로 붙잡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제 그 소녀를 그 시절에 고이 두기로 했다. 지금은 만날 수 없다는 현실을 받아들이면서.




친구와의 일이 채 가시기도 전에, 딸의 연락으로 시작된 사소한 서운함이 내 안에서 분노의 활화산으로 터져 나왔다.

오래 전 잠재웠다고 믿었던 괴물이 깨어난 것이다.

사실 딸에게 문제를 돌리기엔 딸은 아무런 잘못이 없다는 걸 알고 있다.

괴물은 그저 숨죽이고 있었을 뿐, 단 한 번도 잠든 적이 없었다. 끈질기게 내 삶을 감시하며 틈만 나면 튀어나와 나를 비웃으며 마법을 걸었다.

“것 봐. 네가 불행하길 바랐는데 실망하는 거잖아.”

“것 봐. 너만 닭 쫓던 개처럼 버려졌잖아.”

“것 봐. 고상한 척, 우아한 척하더니 결국 폭발하네.”

“잘 봐. 이게 바로 너의 본모습이야.”

괴물에게 사로잡혀 흑화한 내가 딸에게 쏟아내며 불태워 버린 말들.

한때 남편에게서 들었던 비난과 조롱 섞인 폭언들이 내 속에 고스란히 저장되어 있다가, 딸을 향해 그대로 붙여넣기 되고 있었다. 멈춰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입이 멈추지 않았다.




운전대를 잡고서야 나온 눈물이 통곡이 되어 저절로 멈추기까지...


폭주하는 나와, 그 앞에서 무기력하게 멍한 눈빛을 하고 있던 딸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 순간 발견했다.

저 뒤에서 비웃고 있던 그 괴물의 눈빛을.

그것은 내 친구가 나를 향해 보냈던 그 아쉬움 섞인 눈빛과 닮아있었다.

악다구니를 쓰던 내 눈빛에도, 남편이 내뱉던 저주의 말들 속에도 고스란히 복붙되어 있던 눈빛.

이번에는 그 괴물의 눈빛을 피하지 않고 똑바로 쏘아보았다.

심장이 터질 듯 두렵고, 괴물이 더 커질까 봐 공포스러웠다.


하지만 피하지 않고 한참을 쏘아보는데,

그 서늘한 눈빛 속에서 당당하게 서 있는 내 모습이 보였다.

이번에도 휘둘렸지만, 전보다 훨씬 빠르게 괴물을 포착해 낸 나.

씩씩거리며 괴물과 정면으로 맞서자, 몸에서 검은 연기가 쑤욱 빠져나가듯 나른함이 밀려왔다.

통곡도 멈췄다.


‘너... 내가 더 엉망이 되었다고 괴로워하길 바랐겠지.’

‘알고 보니 내가 전보다 훨씬 더 당당해졌다는 걸 증명해 주려고 온 거였구나.’

처음이었다.

처음으로 내 안의 괴물을 인정했다.

그 순간 괴물이 더 이상 두렵지 않았다.


눈빛을 뚫어져라 쳐다보아도 심장이 쿵쾅거리지 않았다.

오히려 멈칫한 것은 괴물 쪽이었다.

억지로 살살 달래거나 재우려 애쓰지 않아도 괴물을 제압할 수 있는 진짜 방법을 찾은 것이다.


이제 그 괴물은 내 손바닥만 한 망둥어가 되어 팔딱거릴 뿐이다.

예쁜 어항을 하나 골라 그 속에 넣어주어야겠다.

그렇게, 내 안의 괴물이 다시 잠잠해졌다.

월, 수,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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