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선거 날이다.
전날 알람을 끄고 잠들었건만, 아침부터 남편이 부스럭거리며 나를 깨운다.
"오늘은 일 없어?"
"응."
짧게 뱉고 다시 잠 청하려는데, 귓가에 또 남편 목소리가 파고든다.
"우리 투표 어디서 하지?"
"지하 도서관..."
"우리 아파트에 도서관이 있던가?"
"..."
"투표 언제 할 거야?"
잠이 덜 깬 상태에서 대답하기가 상당히 귀찮아 이불을 뒤집어썼다. 그러자 남편이 덮은 이불을 굳이 들추며 계속 채근한다.
"이럴 줄 알았으면 사전투표할걸... 은별아, 언제 갈 거냐고?"
짜증이 머리끝까지 뻗쳐 눈을 번쩍 떴다.
"알아서 간다고 알아서!!! 내가 오늘 늦잠 좀 잘 거라 했지? 일부러 그래? 대체 왜!"
"아, 알았다. 미안 미안. 더 자."
"안 그래도 잠 때문에 스트레스받아 죽겠구만은..."
투덜거리며 돌아눕는데, 남편이 등 뒤로 툭 한마디를 던졌다.
"내가 살아서 마지막 투표가 될지도 모르니까..."
순간 퓨즈가 끊겼다.
"진짜 가지가지 한다! 차라리 같이 가자고 하던가! 할. 말. 못. 할. 말. 구분이 안 돼?"
쉰 중반인 남편을 향해 고함을 고래고래 질러대던 그 아침의 풍경은 며칠이 지난 지금도 징글징글하게 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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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죽음에 익숙한 사람이 아니다.
할머니가 갑자기 심장마비로 떠났고, 아빠는 교통사고로, 엄마는 오랜 병상에서 세상을 떠났다.
매번 남겨졌다.
남겨진다는 건 버려지는 것과 구분이 안 됐다.
그 감각이 세포 하나하나에 새겨져 있다.
고모는 그들의 죽음을 다 합쳐놓은 것 같은 사람이었다.
내 나이 스물한 살에 고모는 뇌출혈로 쓰러졌다. 오른쪽 반신 불구가 되어 이후 25년 동안 요양병원과 집을 오갔다. 그 긴 세월 동안 내가 지독하게 들었던 건 고모의 죽음 타령이었다.
3개월 안에 같은 병원 사람들이 죽더라, 6개월 만에 죽더라 손가락을 꼽다가, 10년을 넘기던 해에는
"살 만큼 살았다"고 했고,
20년이 되던 날엔 "내가 무슨 죄를 지어 아직도 이 몸뚱이로 사냐"며 술취해 악을 썼다.
주변 사람들도 함께 죽자는 몸부림 같았다.
아이 둘을 낳고서도 밤낮없이 요양병원과 집으로 불려 다녔다. 일 하다가도 자다가도 핏기 없는 얼굴로 뛰쳐나가야 했다. 어두운 밤거리에서 운전대를 붙잡고, 차라리 내가 먼저 죽어야 이 징글징글한 현실이 끝나는 걸까 울부짖던 날들이 수천수만 번이었다.
어느 날 나는 평생 그렇게 악을 써본 적이 없을 정도로 절규했다.
"그 죽는다는 말, 죽을 것 같다는 말, 제발 좀 그만해! 나도 좀 살자고! 일하다가도 자다가도 뛰어온 게 한두 번이냐고! 마시지 말라는 술 마시고 휠체어 들이받으면서 죽겠다고 그러는데, 내가 어디까지 불쌍해 해야 돼? 제발 좀!"
이 인연을 차라리 살아서 끝내자고 선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고모의 사망 소식이 들려왔다.
요양병원에서 고모의 마지막 모습을 보면서 나는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지독하게도 지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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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남편이 고모의 바통을 이어받았다.
"나 이러다 자다가 못 일어나는 거 아니야?", "갑자기 과로사로 쓰러지는 거 아니야?"
정작 병원 검사는 하나도 받지 않으면서.
참았던 본심이 결국 터져 나왔다.
"넌 정말 내가 뭘 제일 두려워하는지 귀신같이 아는 인간이야. 안 그래도 남겨진다는 게 얼마나 비참한지 내 세포 하나하나가 다 기억하고 있는데, 멀쩡하게 살아 있으면서 당장 죽을 사람처럼 나를 또 괴롭히냐?"
화를 내는데 눈물이 났다. 그 눈물은...공포에 떨던 여러 나들의 흔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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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나는 무서운 것이다.
이러다 정말 어느 날 갑자기 남편이 사라질까 봐.
남편이 사라지고 난 후 덩그러니 남겨져 처참하게 무너질 내가 무서운 것이다.
화가 난 게 아니었다.
공포였다.
고요한 줄 알았던 내 밑바닥의 똥물을, 너는 또 이렇게 휘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