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텃밭 10
이틀째 계속 비가 퍼부었다.
오늘은 종일 쏟아질 기세더니 잠깐 그쳤다, 다시 또 쏟아질지도 모르지만, 예보를 들여다보니 비가 잠시 쉬어가는 시간이다. 마음이 먼저 텃밭으로 달려간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몸을 일으켰다.
며칠 전 대충 풀을 정리해 놓았는데 텃밭은 또다시 밀림이 되어 있었다. 비는 정말 대단하다. 채소도 키우지만 풀은 훨씬 더 신이 난다. 며칠만 눈을 돌리면 "우리가 이 땅의 주인"이라고 말하듯 길을 점령해 버린다.
그래도 밀림 속을 헤집고 들어가니 반가운 것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가지 두 개, 오이 하나, 풋고추 한 줌. 그리고 바구니가 금세 수북해질 만큼의 깻잎과 방울토마토도 땄다.
온통 초록뿐인 속에서 보물 찾기를 하는 기분이었다. 풀은 무성해도 채소들은 제 몫을 다하며 열매를 품고 있었다.
마침 집에서 키우던 양상추와 버터헤드 모종을 가지고 왔다.
얼마 전 다시 심어 놓은 옥수수 모종이 제법 자라 있었다. 그 아래에는 버터헤드를 심고, 양상추 다섯 포기도 새로 자리를 잡아 주었다. 비가 또 시작되기 전에 얼른 흙을 덮어 주고 손으로 꼭꼭 눌러 주었다.
잠깐 그친 비가 얼마나 고마운 시간인지. 모종을 다 심고 나니 다시 고민이 생겼다.
밀림이 되어 버린 풀을 베어야 하나. 어차피 또 비가 내릴 텐데. 며칠 지나면 다시 자랄 텐데. 오늘 애써 잘라도 금세 원래대로 돌아올 것이다.
잠시 망설이다 가위를 들었다. 한 손으로 풀을 한 아름 움켜쥐고 다른 손으로 싹둑싹둑 잘라 나갔다.
길 하나가 보이고, 또 길 하나가 이어졌다. 신기하게도 길이 열리자 텃밭이 다시 내 텃밭답게 훤해졌다.
채소들에게도 숨 쉴 공간이 생기고, 나도 마음 놓고 이랑 사이를 걸을 수 있었다. 밀림 같던 속에서도 생명은 묵묵히 자기 일을 하고 있다.
방울토마토는 다시 붉게 익어가기 시작했고, 가지꽃은 보랏빛 얼굴을 하나둘 내밀었다. 꽃이 핀다는 것은 아직도 더 열리겠다는 약속이다.
가장 놀라운 것은 고추였다. 작년에는 욕심을 내서 많이 심었다가 실패를 거듭했었다. 그래서 올해는 딱 세 포기만 심었다. 그것도 옥수수 그늘 아래, 그런데 오히려 그 고추가 연하고 아삭하게 잘 자랐다.
농사는 참 알다가도 모르겠다. 많이 심는다고 잘되는 것도 아니고, 햇볕이 많다고 꼭 좋은 것도 아니다. 식물마다 자기에게 맞는 자리가 따로 있다는 것을 텃밭은 해마다 가르쳐 준다.
오늘 잘라낸 풀은 버리지 않고 새로 심은 양상추와 버터헤드 둘레에 살포시 깔아 주었다. 비가 쏟아져도 흙이 덜 튀고, 수분도 조금 더 오래 머물기를 바라면서.
계속 내리는 비가 그칠 무렵이면, 오늘 심은 작은 모종들도 제법 풍성한 잎을 펼치고 있을지 모른다.
그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텃밭을 한 번 돌아보며 인사를 했다.
"조금만 더 잘 자라고 있어. 비가 그치면 다시 올게."
오늘도 가득 찬 장바구니를 들고 흐뭇한 마음으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