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은 툴툴, 옥수수는 쑥쑥

어쩌다, 텃밭 11

by혜솔

우리 아기 불고 노는 하모니카는

옥수수알 가지고서 만들었어요.

옥수수알 길게 두 줄 남겨가지고

우리 아기 하모니카 불고 있어요.

도레미파 솔라시도 소리가 안 나

도미솔도 도솔미도 말로 하지요.

동요<옥수수 하모니카>


아마 초등학교 때 불렀던 노래였을 것이다. 몇 개 남은 옥수수를 따는데 오래전 노래가 저절로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가사도 정확하지 않고 제목도 기억나지 않았지만, 옥수수 알갱이를 하모니카처럼 훑어 먹던 어린 날의 장면만은 선명했다.

내 노래를 듣던 로리가 신기하다는 듯 웃었다. 옥수수에서 정말 하모니카 소리가 나오는지 궁금한 얼굴이었다.

그렇게 첫 번째 옥수수 수확을 마쳤다. 많이 딴 것은 아니지만 가족끼리 먹고 조금 나누어 줄 만큼은 되었다. 옥수수를 삶아서 한 알씩 떼어먹으며, 내가 심은 것이 누군가의 한 번의 간식이 된다는 사실이 새삼 기특했다.

수확을 끝내고 밭 한쪽을 보니 새로 심은 옥수수가 또 자라고 있었다. 그 모습 또한 신기했다. 나는 그동안 작물이란 한 번 심어 수확하면 그것으로 끝인 줄 알았다. 그런데 유튜브로 텃밭 농사를 배우다 보니, 수확한 뒤 다시 심어도 자랄 시간이 충분한 작물들이 제법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 번의 끝이 또 다른 시작이 될 수 있다는 것. 텃밭에서는 그 평범한 사실을 눈으로 확인하게 된다.

하지만 수확을 끝낸 옥수수밭의 모습은 그리 낭만적이지 않았다. 옥수수가 달려 있던 자리를 그대로 둔 줄기에는 시커먼 곰팡이가 피었고, 빈 가지 사이에는 거미줄이 진을 치고 있었다. 거친 가시풀과 덩굴은 옥수숫대를 붙잡고 자라 지나갈 때마다 팔과 다리를 긁었다.

어차피 뽑아내야 할 것들이었다. 그러나 내 힘으로 옥수숫대를 뿌리째 뽑기는 어려웠다. 결국 정원용 가위로 밑동을 하나씩 잘라냈다.

새로 자라는 옥수수 아래에 버터헤드를 심고, 풀을 뽑거나 벤것은 그 아래 깔아주었다.

푹푹 찌는 더위 속에서 옥수수 줄기를 자르고 나니, 잘라낸 가지를 따로 모아두는 곳까지 옮기는 일이 남았다. 아들이 평소보다 일찍 퇴근해서 함께 와 다행이었다. 나는 운이 좋았고 아들은 운이 나빴다고 해야 할까. 집에 들어오자마자 나한테 덜미를 잡히고 말았으니...


아들은 잘라낸 옥수숫대를 한 아름 안고 걸어가다가 말했다.

“이제 텃밭 같은 거 하지 말아요. 너무 힘들지 않아?”

그 말에 나는 금세 시무룩해졌다.

“얘네들 뾰족뾰족 올라오는 거 보면 살맛 나는데? 로리도 좋아하잖아.”

그만두겠다는 말은 끝내하지 않는 나를 보고 아들은 짜증 섞인 목소리를 냈다.

“벌레가 막 물어요. 아, 따가워 죽겠네!”

그러면서도 손은 쉬지 않았다. 쑥쑥 자란 풀을 맨손으로 붙잡아 뽑고, 잘라낸 옥수수 줄기를 모아 날랐다. 말로는 다시는 하지 말라고 하면서도 할 일은 다 해주는 것을 보면, 내년에도 나는 아들에게 또 잔소리를 들으며 텃밭을 가꾸고 있을 것 같다.


텃밭이란 그런 곳이다. 아무리 작고 보잘것없는 땅이라 해도 수많은 생명이 모여든다.

씨앗에서 싹이 트고 초록잎이 올라오는 것도 생명이고, 그 잎을 먹고살겠다고 달라붙는 벌레도 생명이다. 진딧물이 내놓는 단물을 얻기 위해 진딧물을 돌보는 개미가 있고, 그 진딧물을 잡아먹는 무당벌레가 있다. 꽃이 피면 벌과 나비가 찾아와 열매를 맺게 한다.

내 눈에는 채소를 괴롭히는 벌레처럼 보이지만, 그들 역시 자기 자리에서 먹고살기 위해 분주하다. 그 모든 것이 어우러져야 텃밭이 되고, 꽃밭이 되고, 하나의 작은 순환이 만들어진다.

그래도 채소에 달라붙은 달팽이는 반갑게 맞이하기 어렵다. 잎채소를 야금야금 갉아먹기 때문이다. 밭에서 발견한 달팽이를 잡아 조금 떨어진 풀밭에 내려놓으며 나는 단단히 엄포를 놓았다.

“우리 밭에는 다시 안 오는 게 좋을 거야.”

달팽이가 내 말을 알아들었을 리 없지만, 채소 주인으로서 할 말은 해야 했다.


폭염 때문에 한동안 텃밭에 자주 나오지 못했다. 옥수수 빈 줄기를 정리하고 무성한 풀을 조금 베었을 뿐인데도 온몸이 땀에 젖었다. 오늘 텃밭에서 건진 것은 별로 없었다. 아들에게 잔소리만 실컷 듣고 돌아온 셈이다. 또 한동안은 못 나갈 수도 있다. 비라도 내렸으면 좋으련만...


그래도 여름이 지나면 김장무와 배추를 심어야 한다.

그때가 되면 아들은 또 얼마나 툴툴거릴까. 작년에는 제법 재미있게 했으니, 올해도 막상 밭에 나오면 말없이 흙을 고르고 모종을 심어줄지 모른다.

나는 벌써부터 비어 있는 밭에 무와 배추가 푸르게 자라는 모습을 떠올린다.

힘들다면서도 또 심고, 그만하라면서도 다시 돕는 사람들.

어쩌면 우리 가족도 텃밭의 작은 생태계 속에서 저마다의 방식으로 함께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목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