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재미없는 일은 사람을 게으르게 보이게 만든다

byDataSopher
사람이 일을 미루기 시작했을 때, 우리는 너무 빨리 그 사람의 성격을 의심한다.


월요일 오후 2시.


보고서 하나를 부탁했는데 좀처럼 올라오지 않는다.

메신저 답장은 늦다. 회의에서는 말이 없다. 시키지 않은 일은 하지 않는다.


상사는 결론을 내린다.

“요즘 애들은 절박함이 없어.”


그런데 퇴근한 그 사람이 밤새 좋아하는 게임의 공략법을 연구하고, 주말에는 러닝 기록을 1초 줄이려고 새벽부터 뛰고, 관심 있는 분야의 유튜브를 세 시간씩 찾아본다면 이야기가 이상해진다.


게으른 사람에게 어떻게 이런 부지런함이 남아 있을까.


어쩌면 사람의 에너지가 사라진 것이 아니다. 회사가 에너지를 끌어낼 이유를 주지 못한 것인지 모른다.




게으름처럼 보이는 것의 정체


2024년 Journal of Applied Psychology에 발표된 흥미로운 연구가 있다.


연구진은 온라인 게임에서 느끼는 지루함이 그 순간만 불쾌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후 업무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지루함을 참고 억지로 일을 계속한 사람들은 이후에도 딴생각이 늘고 생산성이 떨어졌다.


더 흥미로운 것은 그다음이다.


이어지는 일이 자신에게 의미 있다고 느껴지면 그 부정적 효과가 상당 부분 끊겼다.


그러니까 문제는 단순하지 않다.


사람이 일을 하기 싫어해서 집중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지만, 집중할 이유가 없는 일을 오래 시켰기 때문에 집중할 능력이 무너지는 경우도 있다.


우리는 두 현상을 너무 쉽게 같은 단어로 부른다.

게으름.




회사는 행동을 보고 성격을 판정한다


온라인 게임에서 평가는 관찰 가능한 행동으로 이루어진다.


답장이 빠른가.

보고서를 빨리 내는가.

회의에서 적극적인가.

추가 업무를 자청하는가.


하지만 행동의 속도만 보고 사람의 태도를 추론하면 중요한 변수가 사라진다.


그 일이 그 사람에게 어떤 일인가.

목적을 모르는 보고서.

아무도 읽지 않는 회의자료.

지난달 파일의 숫자만 바꾸는 업무.

결론이 이미 결정돼 있는데 형식적으로 진행하는 데이터 분석.


이런 일을 반복시킨 뒤 직원에게 주인의식을 요구하는 것은 이상한 주문이다.


주인이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데 어떻게 주인처럼 행동하라는 것일까.


자기결정성이론(Self-Determination Theory)은 인간의 동기가 자율성, 유능감, 관계성 같은 심리적 욕구와 깊이 연결된다고 설명해왔다. 단순한 보상과 통제만으로 사람의 지속적인 동기를 설명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온라인 게임에서 유난히 좋아하지 않는 말이 있다.

“원래 적극적인 사람이 아니야.”

정말 그럴까.


아니면 적극적으로 행동해도 달라지는 것이 없다는 사실을 오래 학습한 것은 아닐까.




숫자는 이미 이상한 신호를 보내고 있다


Gallup이 발표한 State of the Global Workplace 2026에 따르면 2025년 전 세계 직원 가운데 업무에 몰입한 사람은 20%에 불과했다.


더 흥미로운 데이터는 ‘목적’이다.


Gallup 조사에서 자신의 일에 강한 목적의식을 가진 미국 직원 가운데 업무 몰입자는 50%였지만, 목적의식이 낮은 직원에서는 9%에 그쳤다. 곧 목적의식이 몰입을 5배 이상 ‘인과적으로 증가시킨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둘 사이의 간극은 회사가 무시하기 어려울 만큼 크다.


한국이라고 이 질문에서 자유롭지도 않다. Gallup의 2024년 국가별 자료를 인용한 국내 보도에서는 한국 온라인 게임인의 업무 몰입 비율이 13.8%로 나타났다.


거대한 비몰입을 개인들의 의지 부족으로 설명해왔다. 그런데 수많은 사람이 동시에 의욕을 잃었다면 다른 질문도 해봐야 한다.


사람에게 문제가 있는 것인가, 사람이 들어간 시스템에 문제가 있는 것인가.




그렇다고 모든 재미없는 일을 없앨 수는 없다


여기서 한 가지 오해는 피해야 한다.

일은 놀이공원이 아니다.


세금계산서도 처리해야 하고, 오류도 검수해야 하며, 누군가는 반복적인 데이터를 정리해야 한다. 좋아하는 일에도 지루한 과정은 반드시 있다.


그러므로 “재미없으니 하지 않겠습니다”는 직업윤리가 될 수 없다.

하지만 그 반대도 위험하다.


돈을 받았으니 아무 의미 없는 일도 무조건 열정적으로 하라는 요구 역시 좋은 경영은 아니다. 좋은 조직은 모든 일을 재미있게 만드는 곳이 아니다.


왜 이 일을 하는지 설명하고, 불필요한 일을 제거하고, 사람이 방법을 바꿀 여지를 주고, 자신의 일이 어떤 결과를 만들었는지 볼 수 있게 하는 곳에 가깝다.


Gallup 역시 직원 몰입의 주요 요소로 목적, 성장 기회, 강점을 활용할 수 있는 환경 등을 지속적으로 강조한다.




나는 앞으로 AI 시대의 회사에서 이 문제가 더 중요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AI가 반복적인 문서 작성과 데이터 정리, 검색과 요약을 빠르게 가져가기 시작하면 인간에게 남겨야 할 일은 단순히 AI가 못 하는 일이어서는 부족하다.


인간이 하고 싶어질 만한 일이어야 한다.


질문하고, 판단하고, 사람을 설득하고, 문제를 발견하고, 자신의 선택이 결과를 바꾸는 일.


어쩌면 미래의 생산성을 가르는 것은 직원에게 일을 얼마나 많이 시킬 수 있느냐가 아니라, 그 사람이 스스로 움직이고 싶어지는 환경을 얼마나 잘 설계하느냐다.


다음번 누군가가 게을러 보인다면 성격을 판단하기 전에 하나를 먼저 묻고 싶다.


“이 사람은 왜 움직이지 않는가?”


게으른 사람을 찾아내는 회사보다 사람을 게으르게 만드는 일을 찾아내는 회사가 더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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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한 자료

Belinda, Melwani & Kapadia, Breaking boredom : Interrupting the residual effect of state boredom on future productivity, Journal of Applied Psychology, 2024.

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 온라인 게임 내 동기와 Self-Determination Theory 관련 자료.

Gallup, State of the Global Workplace 2026 및 Employee Engagement 자료.



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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