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일을 빨리 끝내주는 시대에도 우리는 왜 여전히 8시간을 앉아 있어야 할까
퇴근 버튼을 누르는 순간 우리는 이상한 거래를 끝낸다.
오늘 회사에 넘긴 것은 보고서 세 장도, 회의 다섯 번도 아니다.
다시는 돌려받을 수 없는 하루의 몇 시간이다.
그래서 월급명세서를 보고 있으면 이상한 질문이 생긴다.
우리는 회사에 능력을 파는 것일까.
시간을 파는 것일까.
산업슬롯에서는 답이 비교적 간단했다. 공장에서 사람이 기계 옆에 얼마나 오래 서 있었는지는 생산량과 어느 정도 연결됐다. 출근 종이 울리고, 점심시간이 정해지고, 퇴근 시간이 기록됐다.
시계는 시간을 알려주는 물건인 동시에 노동을 재는 기계가 됐다. 문제는 우리가 공장을 떠난 뒤에도 공장의 시간표는 사무실에 남았다는 것이다.
엑셀을 두 시간 켜놓았다고 더 좋은 분석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회의실에 오래 앉아 있다고 더 좋은 결정이 나오는 것도 아니다. 아직도 오전 9시에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과 오후 6시까지 모니터를 바라보는 사람에게 ‘성실하다’는 점수를 준다.
한국은 이 모순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OECD 집계 기준으로 2025년 한국의 연평균 노동시간은 1,833시간이었다. OECD 평균 1,736시간보다 97시간 길다. 2010년 2,163시간에 비하면 크게 줄었지만, 여전히 회원국 가운데 장시간 노동 국가에 속한다.
더 재미있는 숫자가 있다.
Gallup이 2026년 발표한 조사에서 한국 직원 가운데 자신의 일에 적극적으로 몰입하고 있다고 평가된 비율은 13%였다. 동아시아 평균 18%, 세계 평균 20%보다 낮다.
오래 일한다고 마음까지 오래 회사에 머무는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AI가 등장했다.
우리의 오래된 노동계약을 상당히 곤란하게 만든다.
NBER 연구에서 생성형 AI를 사용한 고객지원 직원 5,179명을 분석했더니 시간당 생산성이 평균 14% 증가했다. 특히 경험이 적은 직원에게 효과가 컸다.
자, 여기서 아주 불편한 질문이 하나 생긴다. 예전에는 여덟 시간이 필요했던 일을 AI 덕분에 여섯 시간 만에 끝냈다면, 남은 두 시간은 누구의 것일까.
회사의 대답은 간단하다.
“그럼 다른 일을 더 하면 되죠.”
나는 AI 시대 노동의 가장 중요한 문제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기술은 끊임없이 인간의 시간을 절약해왔다. 세탁기는 빨래 시간을 줄였고, 컴퓨터는 계산 시간을 줄였으며, 인터넷은 정보를 찾는 시간을 줄였다.
회사 안에서는 이상하게도 절약된 시간이 사라지지 않는다. 업무로 변한다. AI가 여덟 시간짜리 일을 여섯 시간으로 줄이면 우리는 두 시간 일찍 집에 가지 않는다. 업무 두 개를 더 받는다.
생산성의 배당금이 직원에게 시간으로 지급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주4일제 실험이 흥미롭다.
2025년 Nature Human Behaviour에 발표된 연구는 미국·영국·캐나다 등 6개국 141개 조직, 2,896명을 분석했다. 임금을 줄이지 않고 노동시간을 단축했더니 번아웃이 감소하고 직무 만족도와 정신·신체 건강이 좋아졌다.
중요한건 금요일을 쉬었다는 사실이 아니다.
기업들은 먼저 회의를 줄이고, 협업 방식을 바꾸고, 불필요한 업무를 제거했다.
시간을 줄였더니 일이 망가진 것이 아니라, 시간을 줄이기 위해 일하는 방식을 고쳤다.
ILO 역시 장시간 노동이 반드시 높은 생산성을 의미하지 않으며, 짧은 노동시간과 유연한 근무 설계가 생산성과 일·삶의 균형 모두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회사와 개인의 계약을 조금 다르게 정의하고 싶다.
회사가 사야 하는 것은 인간의 삶 자체가 아니다.
일정 시간 동안 제공되는 판단력, 기술, 집중력, 바카라임이다.
직원 역시 단순히 여덟 시간을 견디는 사람이 아니라 결과를 만들어내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렇다면 일을 빨리 잘 끝낸 사람에게 돌아가야 할 것은 무엇일까.
새로운 일이 아니라 시간이어야 한다.
좋은 회사는 직원의 시간을 많이 차지하는 회사가 아니다.
같은 성과를 더 적은 시간에 만들 수 있도록 시스템을 고치고, 그렇게 아낀 시간을 다시 사람에게 돌려줄 줄 아는 회사다.
회사를 평가할 때 나는 다른 질문을 던지고 싶다.
“이 회사에서는 일을 잘할수록 내 시간이 늘어나는가, 줄어드는가.”
일을 잘했더니 일이 계속 늘어난다면 사람은 효율적으로 일하는 법을 숨기기 시작한다.
빨리 끝내도 퇴근할 수 없다면 천천히 하는 것이 합리적이 된다.
그러면 회사는 성실한 사람을 만들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사실은 시간을 낭비하는 법을 학습시키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돈은 다시 벌 수 있다.
경력도 다시 쌓을 수 있다.
하지만 오늘 오후 네 시는 평생 한 번뿐이다.
우리는 회사에 시간을 파는 것이 아니다.
적어도, 그래서는 안 된다.
자료와 출처
OECD·연합뉴스: 2025년 한국 연평균 노동시간 1,833시간, OECD 평균 1,736시간.
Gallup State of the Global Workplace 2026: 한국 직원 몰입도 13%, 세계 평균 20%.
Brynjolfsson·Li·Raymond, NBER 「Generative AI at Work」: 생성형 AI 도입 후 고객지원 직원의 시간당 생산성 평균 14% 증가.
Nature Human Behaviour(2025): 6개국 141개 조직의 주4일제·노동시간 단축 실험에서 번아웃과 건강·직무 만족 개선.
ILO 「Working Time and Work-Life Balance Around the World」: 장시간 노동과 생산성, 노동시간 자율성 및 일·삶 균형 분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