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너 내 무기가 되어라

by이고은

몸에 대해 기록하기로 결심한 후, 가장 먼저 한 일은 내 몸의 상태를 객관적 데이터로 진단하는 것이었다. 키, 몸무게, 나이. 일단 이 세 가지 숫자가 말해주는 현실을 파악하기 위해 흔히 체질량지수로 불리는 BMI(Body Mass Index)를 계산해 보았다.


체중(kg)을 신장(m)의 제곱으로 나눈 이 수치는 체지방이나 근육량 등 우리 몸을 이루는 전체적인 구성 성분을 정밀하게 설명해주지 못한다는 한계가 있다. 하지만 적어도 인구통계학적 관점에서 내 건강 상태의 현주소를 가늠하게 하는 가장 직관적인 출발점이 될 수는 있다.


계산기를 두드린 후, 나는 또 한 번 얼어붙었다. 내 BMI 지수는 과체중(23 이상~25 미만)을 넘어 비만(25 이상)의 문턱에 바짝 다가서 있었다. 언제나 정상 체중이라 믿으며 체중계를 외면해 온 대가 치고는 참담했다.


처음엔 마냥 현실을 부정하고만 싶어졌다. ‘이상하다. 예전엔 이렇지 않았는데? 혹시 기준이 잘못된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면서, 기자 시절 팩트체크 습관이 발동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결국 BMI의 역사, 지난 변천사를 파고들었다.


실제로 세계보건기구(WHO)의 글로벌 비만 기준은 30 이상이다. 그러나 지난 2000년 WHO 아시아-태평양 지역사무소와 대한비만학회는 한국인의 비만 기준을 25로 낮췄다. 아시아인이 체중에 비해 체지방률이 상대적으로 높아, 낮은 수치를 보이더라도 실제 질병 위험이 높다는 이유에서였다고 한다.


그런데 최근엔 이 기준이 너무 엄격해서, 사실상 정상 범위에 있는 사람들까지 과도하게 비만으로 분류되거나 건강 위험도를 과대 평가한다는 지적도 있다. 2024년 국민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연구원은 한국인의 비만 기준을 25에서 27로 상향 조정해야 한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나는 이런저런 근거를 끌어와서 ‘어쩌면 나도 아직 정상 범주일지도 모른다’며 필사적으로 합리화의 방패를 꺼내 들었다. 하지만 이내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팩트는 변하지 않았다. 숫자를 이리저리 끼워 맞춘다고 해서 내 몸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결국 나는 꼼수를 버리고 질문의 방향을 바꿨다.

“정상 BMI로 돌아가려면 내 키 기준으로 몸무게가 몇 kg이어야 할까?”

“현재 상태에서 얼마를 감량해야 몸이 건강한 안전지대에 들어설 수 있나?”


이 질문을 AI 에이전트에게 던졌다.


사실 나는 원래 생성형 AI의 결과물을 불신하는 편이었고, 반드시 교차 검증을 엄격하게 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포털 사이트 검색을 통해 모호한 검색 결과 사이를 헤매기보다, AI에 질문을 던져 나온 1차 답변을 재검토해 활용하는 습관이 생겼다. AI가 압도적으로 잘하는 영역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건 바로 데이터를 기계적으로 분석하고, 냉정하게 계산해 내는 일이었다. 지금 나에게는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스스로를 합리화하는 것을 경계해주는 냉철한 분석관이 필요했다. 그렇기에 AI는 나에게 완벽한 무기이자 파트너가 될 자격이 충분했다.


우선 1차 목표는 명확했다. BMI 지수를 과체중 상한선인 23 아래로 떨어트리는 것이었다. 눈에 보이는 선명한 수치를 목표로 삼고, 세부 로드맵을 설계해 하나하나 실천해 가기로 했다. AI에 나의 기본 스펙과 목표 수치를 입력한 뒤, 이를 달성하기 위한 구체적 실천 전략까지 만들어 달라고 명령했다.


몇 초 만에 모니터 위에 정교하게 제시한 AI의 플랜을 확인한 나는 헛웃음을 지었다. 답은 명료했고, 지독하게 식상했다. 식단을 조절해 섭취 칼로리를 통제하고, 정해진 시간에 지속 가능한 운동을 병행할 것. 왠지 묘한 허탈감도 밀려왔다.


감정 없는 AI는 아주 냉정하게 말하고 있었다. 건강한 신체를 재구축하는 데는 편법이나 지름길이 없다는 것. 노력과 시간에 정직하게 비례하는 결과만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 그러니 부디, 현실을 직시하고 정도를 걸어가라는 것.


과연 내가 잘할 수 있을까? 찰나의 의심과 망설임이 스쳤지만, 이내 모니터를 닫았다. 그리고 그날부터 실천에 돌입하기로 했다. 그렇게 나는 인공지능이라는 무기를 손에 쥐고, 마흔의 몸을 다시 ‘리부트(Reboot)’하기 위한 출발선에 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