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을 작품처럼 살아 있게 하는 법
1971년 8월, 뒤셀도르프 예술대학의 조소과 교수였던 요셉 보이스(Joseph Beuys)는 학교의 입학 정원 제한에 항의하며, 탈락한 지원자를 포함해 142명을 전부 자기 수업에 받아들입니다. "모든 사람이 예술가다"라는 자신의 신조를 교수직에서 실행해 버립니다. 그 결과 1년여 만에 그는 해임됐고, 2년 후인 1973년 그는 아예 자기 학교를 세웁니다. 등록금도 경쟁도 없는 '창조성과 학제 간 연구를 위한 자유국제대학(FIU: Freie Internationale Universitaet)'이죠. 보이스는 이미 1969년에 이렇게 말해 둔 터였습니다. "교사인 것이 나의 가장 위대한 예술 작품이다(To be a teacher is my greatest work of art)."
1977년 카셀 도큐멘타에서는 《자유국제대학의 100일》을 열어, 노조 활동가와 법률가, 경제학자, 정치인, 언론인들이 배우·음악가·젊은 작가 들과 나란히 말하는 공개 워크숍 열세 개를 백일 동안 돌렸습니다. 수업이, 토론이, 학교가 작품이었던 겁니다.
클레어 비숍의 『인공지옥』은 마지막 장인 9장에서는 예술가들이 교육을 작품의 형식으로 삼을 때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2000년대 들어 이런 프로젝트가 급증했는데, 비숍이 가속의 분기점으로 꼽는 사건이 2006년의 제6회 마니페스타(Manifesta)가 무산된 사건입니다.
*마니페스타는 1996년에 만들어진 유럽의 떠돌이 비엔날레라고 볼 수 있는데, 고정된 도시 없이 매회 다른 유럽 도시에서 열리는 것이 정체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중 6회 차의 개최지가 키프로스의 니코시아였는데, 이곳은 1974년 이후 그리스계 남쪽과 터키계 북쪽으로 갈라진, 유럽에 남은 마지막 분단 수도입니다.
유럽을 옮겨 다니는 비엔날레 마니페스타를 아예 미술학교로 바꿔 니코시아에서 열려던 시도가 취소되면서, 오히려 예술과 교육의 관계가 모두의 화두가 된 겁니다. 그리고 여기서 비숍은 이 장이 바카라에서 가장 쓰기 어려웠다고 고백합니다. 교육과 연구는 그의 직업이자 그가 서있는 장이기 때문이죠. 예술이 스스로를 교육이라고 주장하는 순간, 그의 머릿속에서는 두 개의 기준이 충돌합니다.
"예술은 남에게 보여지기 위해 주어지지만, 교육에는 이미지가 없다
(art is given to be seen by others, while education has no image)."
작품은 보라고 만드는 것인데, 수업에는 보여줄 장면이라는 게 따로 없다는 건데, 요셉 보이스의 백 일짜리 워크숍에서 '볼'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그래서 관객과 학생의 관점이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관객은 관람하기 위해 오지만, 학생은 배우기 위해 오잖아요.
한편 이 바카라은 계속해서 '참여예술'이 바로 그 경계를 허물어 온 역사였다고 보여주고 있습니다. 비숍은 참여를 가장 엄격한 의미까지 밀어붙이면 어디에 도착하는지 짚습니다. 모두가 만드는 사람이 되면 보는 사람은 남지 않아요. 바로 '관객 없는 예술'입니다. 근데 현실적으로 가능할까요? 관객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고 모든 사람이 이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없죠. 그렇다면 보이스의 백 일짜리 워크숍에 함께하지 못한 사람에게, 즉 2차 관객들에게는 이 예술은 무엇을 보여줄 수 있을까요?
이 긴장의 구체적인 사례가 있어요. 쿠바 작가 타니아 브루게라(Tania Bruguera)가 2002년부터 2009년까지 아바나의 자기 집에서 운영한 《아르테 데 콘둑타 Cátedra Arte de Conducta》입니다. 작품으로서 구상된 미술학교예요. 매년 학생 여덟 명과 미술사가 한 명을 뽑았는데, 미술사가는 다른 학생들처럼 작업을 하면서 동시에 그해의 기록을 계속 써야 했습니다. 학교가 안에서부터 자기 역사를 쓰게 만든 장치죠. 그런데 이 학교의 선발 제도는 이상하게 작동합니다. 브루게라의 설명입니다.
상징적 구조란 교육 프로그램에서 익숙하게 볼 수 있는 요소들을 가져오되, 그 형식에 따르지는 않는 구조다. 예를 들어 프로젝트에 참여하려면 국제 심사위원단의 심사를 거쳐 ‘최고의’ 후보로 선발되어야 한다. 하지만 워크숍이 시작되면, 선발위원회의 심사를 통과하지 못한 사람도 참여를 원한다면 누구나 들어올 수 있다.
The symbolic structure is the one where I'm reproducing the recognizable elements of an educational program, one that I install but do not respect. For example to enter the project one has to go through a selection process in front of an international jury who chooses the 'best' candidates. But once the workshops start I let in anybody who wants to attend even if they didn't make it through the selection committee.
— 타니아 브루게라, 『인공지옥』 9장에서 재인용
브루게라의 학교 수업은 초청 작가들의 일주일짜리 워크숍으로 구성되었고, 인터넷이 심하게 제한된 쿠바에 외부의 이미지와 생각을 들여오는 '수입된 전시 문화'로 이뤄졌습니다. 공공장소에서 퍼포먼스를 하다 생길 법적 문제와 언론 문제에 대해 교육하기 위해서 변호사나 기자도 초빙되어 학생들에게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이 초청 명단에는 비숍 자신이 있었습니다. 2007년 그는 아바나에서 직접 워크숍을 열었습니다. 비숍에게 스스로 참여한 프로젝트를 분석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이었을 거예요.
어찌 되었든, 이 학교 수업은 도시 전체가 교사(校舍)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워크숍이 끝나는 금요일 밤마다 브루게라의 집에서 파티가 열렸습니다. 2009년 아바나 비엔날레에서 학교는 《예외 상태 Estado de Excepción》라는 종료전으로 끝을 맺는데, 약 9일간 매일 다른 그룹전을 열고 매일 밤 철거하고 매일 아침 다시 설치하는 전시였습니다. 학교의 긴박함을 전시의 형식으로 옮긴 사례입니다.
반대편에 미국 작가 폴 찬(Paul Chan)이 있습니다. 2006년 10월, 그는 강연차 들른 뉴올리언스에서 허리케인 카트리나 1년 뒤의 풍경을 봅니다. 이 지역은 1년 전 허리케인으로 인해 도시의 가장 가난한 구역들을 수몰되었습니다. 폴 찬은 집들이 통째로 쓸려 나가고 현관 계단만 유령처럼 남은 로어 나인스 워드에 서서, 그는 기시감을 느꼈다고 회고합니다. "내가 본 모든 《고도》의 무대 같았다."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는 이 도시에 아프게 들어맞았습니다. 카트리나 이후 최대의 정치 스캔들이 정부 대응의 만성적인 지연이었으니까요. 이듬해 찬은 이 폐허에서 《고도를 기다리며》를 야외 상연합니다.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을 상연한 일이 이 프로젝트의 전부였다고 생각한다면, 정작 핵심을 놓친 셈이다. […] 다시 말해, 이 프로젝트는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지나간 지 2년 뒤 뉴올리언스에서 예술을 통해 도시의 새로운 삶의 모습을 조직해 보려는 실험이었다.
[T]o imagine that the play was the thing is to miss the thing. […] The project, in other words, was an experiment in using art to organize a new image of life in the city two years after the storm.
— 폴 찬, 『인공지옥』 9장에서 재인용
공연은 폴찬에게는 세 부분 중 하나였어요. 그는 프로젝트의 부제부터 '2막의 희비극, 3부의 프로젝트'로 지었습니다. 여덟 달에 걸친 워크숍과 강의의 레지던시, 야외 공연, 그리고 도시에 남기고 갈 재건 기금인 '섀도 펀드(shadow fund)'까지 세 부분(연극/교육/펀딩)입니다. 그런데 이 구성은 폴 찬의 선의가 아니라 주민들의 저항에서부터 시작됐습니다. 뉴올리언스 주민들은 재난 관광의 배경이 되는 데 지쳐 있었고, 예술이 아니라 구체적인 도움을 원했습니다. 이렇게 펀드까지 조성하여 진행하게 된 것 이죠
2007년 8월 도시로 이사한 폴 찬은 담당 교수가 카트리나로 목숨을 잃어 수업이 비어 있던 뉴올리언스 대학에서 현대미술사를, 자비에 대학에서 이력서와 포트폴리오 만드는 법을 무료로 가르쳤습니다. 저녁에는 지역 활동가들과 각자 음식을 가져오는 식사 자리를 만들었는데, 찬은 이 관계 맺기를 "무장해제의 정치적 작업(the political work of disarming)"이라고 불렀습니다. 공연이 끝난 뒤에는 모금한 돈을 도시 재건 단체들에 남기고 떠났습니다. 여기서 클레어 비숍은 이 모든 일에 두 겹의 동기가 있었다고 짚습니다. 주민의 필요에 응답한다는 윤리적 동기와, 자기 비전을 실현하고 지켜줄 지지 기반을 만든다는 전략적 동기입니다.
여기서 비숍은 브루게라와 찬의 차이를 짚습니다. 브루게라가 선발부터 금요일 밤 파티까지 과정 전체를 예술로 간주한다면, 찬에게 교육은 수단입니다. 도시에 스며들고 동맹을 만들어 공연이라는 비전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이고, 그래서 두 영역은 분명하게 구분됩니다. 실제로 찬의 웹사이트에는 강의계획서는 있지만 수업 사진은 없고, 공연의 공식 기록 영상도 없습니다. 해적판 비디오 하나만 남았을 뿐이죠.
그런데 여기서 비숍은 브루게라의 학교를, 제6회 마니페스타의 큐레이터였던 안톤 비도클(Anton Vidokle)이 무산된 학교 구상을 베를린과 뉴욕에서 결국 열어낸 학교들과 묶어 이렇게 씁니다.
"작가는 박식한 전문가라기보다 아마추어 애호가의 태도로 활동하고, 강의는 다른 이들에게 맡긴다. 마치 다시 학생이 되고 싶어 하는 듯하다. 다만 자신이 배울 학교를 직접 세우는 방식으로 말이다. 그렇게 작가는 학생과 교사의 자리를 겹쳐 놓는다.(It is as if the artist wants to be a student once more, but does this by setting up their own school from which to learn, combining the student/teacher position)."
이 모델의 유명한 이론적 전거가 철학자 랑시에르의 『무지한 스승』(1987)입니다. 19세기 교사 자코토는 프랑스어밖에 못했습니다. 그런데, 플라밍어(벨기에 북부 언어)를 하는 학생들을 가르쳐야 하게 됐죠. 언어가 통하지 않으니 두 언어를 나란히 실린 바카라 한 권으로 수업을 진행합니다. 여기서 랑시에르가 주목하는 건 성공담이 아니라 전제입니다. 자코토가 자기 지능과 학생들의 지능이 평등하다고 전제하고 시작했다는 사실입니다. 여기서 확인할 수 있는 건 평등은 도달할 목표가 아니라 작업의 방법이라는 겁니다.
파울루 프레이리의 『억압받는 자들의 교육학(Pedagogy of the Oppressed)』(1968), 아르헨티나 회차에서 보알이 제목을 빌려 왔던 바로 그 바카라입니다. 프레이리는 교사가 학생에게 지식을 입금하는 '주입식' 교육이 억압을 재생산한다고 비판하고, 교사를 지식의 공동 생산자로 다시 세웁니다. 다만 비숍이 눈여겨보는 건 프레이리의 단서입니다. 위계를 전부 지울 수는 없다는 것, 대화는 아무 말이나 하는 '자유 공간'이 아니라 프로그램과 내용 안에서 벌어진다는 것, 권위주의는 버리되 권위는 남는다는 것입니다. 비숍은 이것을 이 바카라 전체의 역사에 포갭니다. 참가예술의 가장 좋은 사례들도 열린 백지가 아니라, 베케트든 스피노자든 프로그램과 내용을 줬다는 겁니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교육에는 관객이 없습니다. 비숍의 표현으로 가장 효과적인 교육은 '닫힌 슬롯적 과정(a closed social process)'인 것이죠.
그 유명한 '가르침의 관계'는 가르치는 자와 배우는 자의 관계가 아니라, 배우는 자들 서로의 관계다.
…the famous "teaching relation" is not the relation of teacher to taught, but the relation of those taught to each other.
— 롤랑 바르트, 『인공지옥』 9장에서 재인용
이 '닫힌 슬롯적 과정'을 수업에 없었던 바깥의 관객, 곧 2차 관객에게 어떻게 전할까요? 학교에서는 설문지 같은 걸로 대체하면 되지만, 예술이기를 주장하는 수업은 이 과제를 피할 수 없다고 비숍은 적습니다. 그리고 성공한 사례들이 그것을 전한 방식은 결국 "시간 기반이거나 수행적인 형식(modes that are time-based or performative)"으로 비디오나 전시, 강연, 출판으로 전해졌습니다. 시간이 축적된 경험은, 받는 쪽도 시간을 투자하해야 그 경험이 옮겨지는 겁니다. 그런데 여기서 비숍은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2차 관객은 없앨 수 없을 뿐 아니라 필수적이기도 하다. 누구나 이 프로젝트들에서 무언가를 배울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두기 때문이다. 2차 관객은 개별 사례를 더 넓은 의미로 확장할 수 있게 한다. 그 결과 특수한 것과 보편적인 것 사이에, 모범적인 윤리적 몸짓을 하나의 본보기로 제시하는 모델보다 훨씬 더 많은 가능성을 낳는 관계가 만들어진다.
The secondary audience is ineliminable, but also essential, since it keeps open the possibility that everyone can learn something from these projects: it allows specific instances to become generalisable, establishing a relationship between particular and universal that is far more generative than the model of exemplary ethical gesture.
— 클레어 비숍, 『인공지옥』 9장
즉, 수업에 없었던 사람에게 닿을 때에야, 한 교실의 경험은 모두의 것이 될 수 있다는 겁니다.
9장의 제목에는 물음표가 하나 붙어 있는데, 철학자 펠릭스 가타리(Pierre-Félix Guattari)의 질문입니다. "교실을 어떻게 하나의 예술 작품처럼 살아 있게 만들 것인가(How do you bring a classroom to life as if it were a work of art?)". 비숍의 답은 이런 참여형 프로젝트는 두 개의 목적을 동시에 가져야 한다는 겁니다. 슬롯라는 그물망 속으로 들어가는 것, 그리고 동시에 가타리의 말처럼 '예술이라는 우주를 다시 경축하는 것(to celebrate, once again, the Universe of art as such)'입니다. 여기서 하나를 버리면 '에듀테인먼트'나 '교육학적 미학'이 되고 맙니다.
그리고 여기서 비숍은 가타리의 질문을 뒤집습니다. 두 목적을 무시하는 작가들에게 관객은 이렇게 묻게 되리라고요.
"작품을 어떻게 교실처럼 살아 있게 만들 것인가(how do we bring a work of art to life as though it were a classroom?)." 이는 생명을 주는 쪽이었던 예술이, 생명이 받아야 하는 쪽으로 되어버린 상황을 의미합니다. 예술로서의 긴장을 버린 교육 프로젝트는 교실보다도 덜 살아 있는 것이 되어, 오히려 교실이 작품을 살려내야 할 판이라는 겁니다.
이 질문을 들고 제 자리로 돌아옵니다. 전시를 만들면서 저는 교육 프로그램을 늘 '연계 행사'라는 이름으로 전시 뒤에 붙여 왔습니다. 그 프로그램들은 참가자에게는 말을 걸었지만, 거기 없었던 사람에게 무엇을 남겼는지는 물어본 적이 없습니다. 교실을 작품처럼 살아 있게 하라는 가타리의 질문은 기획자인 저에게는 이렇게 도착합니다. 내가 만든 교육은 전시의 부대 행사였나, 아니면 그 자체로 하나의 작품일 수 있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