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아간 피라냐

여자 혼자 떠나는 남미 여행기

by밍이

위잉-.


손을 휘저어도 녀석은 보란 듯이 머리 위를 맴돌았다.

한국에서 보던 모기와는 덩치부터 달랐다. 아마존에 들어선 지 몇 분 만에 첫 번째 가장 중요한 목표가 생겼다.

[물리지 말 것.]


배가 처음 닿은 곳은 강가의 식당이었다.

첫 코스가 점심이라니, 탐험보다 밥이 먼저인 셈이었다.

뷔페 앞에서 한참을 서성이다 노란 멜론과 파인애플, 바나나, 단호박으로 만든 듯한 반죽, 치킨 튀김 한 조각, 그리고 정체 모를 노란 가루를 담았다.

고수를 뿌린 듯한 맛이 난 파인애플에플은 한 조각 먹고 식판에 내려두었지만, 멜론이나 치킨은 먹을 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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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을 먹고 나서는 본격적으로 탐험이 시작되었다. 식당과 이어진 나무 다리를 따라 거대 수련을 보러 갔다. 본래 코스 이름을 들었을 때는, 사람이 올라서도 될 만한 잎을 떠올렸었다. 아마존이니 기대 이상의 것들이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너무 만화적인 상상이었을까. 구석에 둥둥 떠 있는 건 거대하다고 부르기엔 애매한 크기의 수련들이었다. 수풀은 우거졌지만 생각만큼 높지 않았고, 삐걱대긴 해도 길도 반듯하게 나 있었다. 다큐멘터리에서 보던 아마존보다는 애매하게 가꾼 호수 공원에 가까웠다. 뭐, 그래도 아마존이니까.


다음은 카탈랑 수상마을로 향했다. 배를 타고 마을을 한 바퀴 돌며 설명을 들었는데, 물 위에 열네 살까지 다니는 학교가 있고 성당도, 바도 있었다. 주민들은 고기를 잡거나 투어 일을 하며 산다고 했다. 지나가며 보니 해먹에 몸을 누인 사람들이 종종 눈에 띄었다. 매일 낯선 배가 집 앞을 지나가는데 괜찮을까. 서로 익숙해진 걸까.

정작 놀란 건, 사람보다 개 때문이었다. 이곳의 수상가옥은 깊은 바닥에 기둥을 박고 서 있는 게 아니라 정말로 물 위에 떠 있었다. 배처럼 둥둥. 그런 집 마당에서 개가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비교적 부지가 넓은 집이긴 했지만, 그래도 개라니.


첫날 투어의 마지막은 네그루강과 솔리몽이스강이 만나는 곳이었다. 갈색 강과 검푸른 강이 섞이지 않은 채 흐르고 있었는데, 물 위에 누가 자를 대고 선을 그은 것 같았다.

가이드가 두 강의 온도가 다르니 손을 넣어 보라고 했다. 문제는 내 자리였다. 늦게 합류한 탓에 배 한가운데, 허리가 뽀개질 것 같은 좌석에 끼어 있었다. 양옆 사람 틈으로 어떻게 손을 뻗어야 하나 고민하던 찰나, 왼쪽 여자분과 눈이 마주쳤다. 그분은 망설임 없이 자리를 바꿔 주었다. 배가 움직여 두 물을 다 만져 볼 때까지 거기 있다가 다시 바꾸자면서. …감사합니다!

기대에 차 손을 담갔지만, 차이는 미미했다. 황토색 물이 살짝 더 시원한 정도랄까. 가이드는 더 깊은 곳에서는 확연히 다르다고 했다. 그래도 눈으로 색이 갈라지는 게 보이는 게 어딘가.


돌아오는 배에서 파도에 맞춰 머리를 흔들자, 이런 저런 생각이 들었다. 난생 처음 보는 풍경으로 둘러싸인 아마존, 베어그릴스가 경험할만한 진짜 탐험을 기대했는데 막상 만난 건 적당히 순한 아마존이었다. 픽업비를 빼고도 110달러. 본전 생각이 슬쩍 나는 건 어쩔 수 없는 걸까.




이튿날, 이번에는 종일 투어가 이루어질 예정이었다. 괜히 마나우스에 왔나. 오늘도 애매한 공원 투어 느낌이면 어쩌지. 그런 고민에 새벽 두 시에 눈이 떠졌다.

심지어 아마존 입구 부근에 배처럼 둥둥 떠 있는 베이스캠프로 이동할 때까지만 해도, 전날과 똑같은 배를 타서 씁쓸함은 극대화 되어 있었다.

‘또인가…….’

하지만 베이스캠프에서 작은 배로 갈아탈 때부터는 분위기가 뒤바꼈다. 모터가 달려 있긴 해도 나룻배에 가까웠다. 가이드는 데니스라는 스무 살 초반의 청년이었다.


확실히 이번에는 달랐다. 조금 더 깊이 들어가자 물속에 뿌리를 내린 나무들이 나타났다. 넓은 강에 하늘과 나무가 거꾸로 비쳤다. 우유니에 가 보지 않았을 때였지만, 우유니를 떠올리게 되었다. 거기도 이보다 더 선명한 거울은 아닐 것 같아서. 데니스가 앞을 가로막는 가지를 쳐 내며 숲으로 배를 밀어 넣을 때는 정말 탐험대가 된 기분이었다. 어렸을 적 ‘정글에서 살아남기’를 읽으며 꿈꿨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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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긴장으로 신났던 시간은 딱 거기까지였다.

처음엔 식물도 신기하고, 무엇을 어떤 약재로 쓰는지 듣는 것도 즐거웠다. 통나무를 밟고 진흙을 건너는 구간에서 발을 헛디뎌 신발이 사망하긴 했지만 그 정도야 예상했던 바.

그러나 한 시간이 넘어가자 모든 게 한꺼번에 밀려왔다. 새벽 두 시에 기상한 것, 몸 컨디션. 벌레를 피하겠다고 껴입은 긴팔과 긴바지(그 와중에 손가락은 기어이 물렸다). 심지어 투어사에서 나누어준 1리터짜리 물을 가방과 함께 베이스캠프에 두고 와, 갈증을 해소할 방안도 없었다.


데니스 바로 뒤에 붙어 걷던 나는 속도를 늦출 수도 없었다. 내가 밀리면 뒤에 있는 다른 사람들도 밀릴 테니까. 오르막이 시작되자 설명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대신 이런 생각을 했다. 여기서 쓰러지면 데니스가 나를 업을 수 있을까. 체구가 왜소해서 안 될 것 같은데. 그럼 뒤에 오는 어르신들이 팔을 한쪽씩 붙들고 옮겨 주려나.

그 어르신들 중 가장 말이 많은 사람은 필리핀 출신으로 미국에 사는 부부였다. 남편은 의사라고 했다. 부인은 내 이름을 끝끝내 발음하지 못했는데, 예를 들어 내 이름이 “수진’이면 ‘수지’라고 부른 것. 그래도 스윗하셔서 배가 숲을 헤칠 때 내가 사진을 찍느라 딴 데를 보고 있으면 어김없이 외치곤 했다.

"수지!"

그러면 코앞까지 다가온 나뭇가지를 겨우 피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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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을 하이킹 한 뒤, 죽을둥 살둥 겨우 배로 돌아왔다. 그렇지만 갈증은 여전히 해소할 수 없었다. 망할. 물을 베이스캠프에 두고 온 탓이었다. 그렇게 나는 지친 채로 조각배에 몸을 싣고 빨리 데니스가 베이스캠프로 배를 몰 수 있기를 기도하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이동했다. 다시 멀리서 베이스캠프가 보이자 희망이 차올랐다. 그러나 그 순간 원숭이가 나타났다.

배는 원숭이를 보러 뱃머리를 돌렸다. 야생의 원숭이……. 중요하지. 소중하지. 하지만 목이 말랐다. 무척.


베이스캠프에 닿자마자 물을 들이켰다. 얼마나 살 것 같던지. 그렇게 화장실도 갔다가 나오는데, 필리핀 아주머니가 다급하게 물었다. 소다 마실 거냐고. 내가 화장실에 다녀온 사이 데니스가 소다 마시고 싶은 사람들 인원을 조사했던 모양이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외쳤다.

"예스!"

부인은 멀리 옆 가게에 가 있던 데니스를 불러 이 아이도 소다를 마신다고 전해 주었다. 나도 덩달아 소리쳤다. 데니스, 소다 플리즈! 나중에 알고 보니 유료였지만. 10헤알쯤. 포도 맛이었으면 더 좋았겠지만 오렌지 맛도 그 순간만큼은 생명수였다.


오후에는 드디어 분홍돌고래를 만났다. 내가 아마존에서 가장 기대하던 순간. 구명조끼를 꼭 입어야 해서 마음껏 헤엄치지 못하는 게 아쉬웠다. 그래도 사육하는 돌고래가 아니라서 과연 올까 싶었는데, 먹이로 유인한 덕인지 여러 마리가 찾아오는 게 신기했다. 발밑으로 스치는 녀석을 몇 번 만져 보기도 했다. 미끈한데 물컹하지 않고 단단했다. 더 놀고 싶었지만 사람들이 하나둘 물 밖으로 나가서 나도 눈치껏 따라 나왔다. 아쉬워. 그래도 떠날 때 그곳에 있던 어린아이가 손을 흔들어 주어, 나도 힘껏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게 왠지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대망의 피라냐 잡이. 그것도 완전 날것이었다. 나무 막대에 줄을 매고 바늘을 단 낚싯대. 데니스가 생선 살을 잘라 바늘에 꽂아 주었다. 이걸로 물고기를 잡는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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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잡히기는 할까 싶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묵직한 느낌이 들었다. 입질이다. 힘껏 당겼다. 그런데 줄이 가볍게 딸려 올라왔다. 너무 가볍게…. 바늘째 끊어져 있었다.

초반부터 낚싯대를 잃은 나는 부부가 이따금 빌려주는 낚싯대로 버텼다. 미국에서 온 아주머니가 두 마리를 낚는 동안 나머지는 좀처럼 손맛을 보지 못했다. 나도 마찬가지였고. 그러다 다시, 묵직한 신호가 왔다.


이번엔 놓치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온 힘을 실어 끌어 올렸다. 배 왼쪽 물속에서 은빛이 튀어 올랐다. 녀석은 내 머리 위로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더니 배 오른쪽 강물로 첨벙 떨어졌다.

잠깐의 정적 뒤로 배가 뒤집힐 듯한 웃음이 터졌다.

"플라잉 피라냐!"

누군가 새로운 종을 발견했다고 했고, 다들 그 이름으로 한참을 불렀다. 나도 한참을 웃었다.

얼마 뒤 필리핀 아저씨가 진짜 피라냐를 한 마리 낚았다. 우리는 돌아가며 그 피라냐를 들고선 사진을 찍었다. 그렇게 내 아마존 사진첩에 남은 피라냐는 남이 잡은 녀석이다. 내가 잡은 녀석은 사진 한 장 없이, 강 건너편으로 날아가 버렸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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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플라잉 피라냐.

잘 살고 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