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왕기
호러를 좋아하는 어린아이에게 늑대 인간은 당연한 관심의 대상이었다. 어느 날 오락실에서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했다. 뼈다귀 괴물과 도깨비에게 주먹을 날리는 전사가 보였다. 특이한 점은 하얀 구슬을 먹을 때마다 근육이 부풀어 오른다는 점이었다. 여기에서 더 부풀어 오르면 풍선처럼 펑 터지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게임을 하던 분이 최대치로 부푼 근육 상태에서 하얀 구슬을 먹었다. 하지만 예상과는 다르게 화면 전체가 불타오르며 주인공의 얼굴 정면으로 전환되었다. 곧이어 그 얼굴은 늑대로 변신했다. 늑대인간이었다! 보스도 무시무시했다. 자기 얼굴을 뜯어서 던지는 거대 괴물이라니. 뒤에서 구경하는 것만으로 나는 이 게임에 매료되었다.
그때부터 오락실에 갈 때마다 플레이했다. 우리끼리는 늑대 인간 게임이라고 불렀다. 2인 동시 플레이도 가능했기에 동생과 하는 날도 있었고 친구와 함께 진행하기도 했다. 처음에는 어려웠지만 언제나 그렇듯 날이 갈수록 게임에 익숙해졌다.
첫 번째 보스를 쓰러뜨린 날은 큰 충격을 받았다. 두 번째 스테이지에서 하얀 구슬을 먹자 늑대인간이 아닌 드래곤으로 변신을 했기 때문이다. 그때 깨달았다. 이 게임은 늑대인간만이 아니라 여러 동물로 변신하는 게임이었다. 3 스테이지에서는 곰으로, 4 스테이지에서는 호랑이로 변신했다. 호랑이 변신은 어쩐지 타이거 마스크가 떠올라서 수인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긴 했지만, 아무튼 너무나 가슴이 뛰는 변신들이었다.
마지막 스테이지까지 클리어한 날은 또 한 번 충격을 받았다. 매번 이 게임을 하면서 놀라운 것들을 발견하고 그럴 때마다 소위 뽕이 차오르는 느낌이었지만, 엔딩은 지금까지 쌓아온 모든 로망을 깨뜨리는 충격이었다. 지금까지의 모든 모험과 고난, 노력들은 연출된 장면이었다. 이 게임은 결국 영화 촬영이었다는 것이 최후의 반전이었다. 그동안 무시무시했던 보스들은 쌍둥이 배우들이었고, 잡혀 가서 고통받는 여성도 상처 하나 없이 아무렇지 않게 웃고 있었다. 나는 게임에 크게 배신당한 느낌을 받았다. 그동안의 나의 노력은 뭐였던 걸까?
그날 이후, 오락실에서 수왕기를 하는 사람들을 보면 뒤에서 안타까워했다. 소중한 100원이 잡혀간 누군가를 구하기 위해, 혹은 세계 평화를 지키기 위해 사용되어야 할 텐데. 영화 제작을 하는 데 사용돼야 하다니. 심지어 주연 배우가 돈을 내다니. 말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는 않았다. 나름 재미있게 하고 있는 게임에 초를 칠 수는 없으니까. 그렇게 수왕기의 엔딩은 꽤 긴 시간 동안 나 혼자만의 비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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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즈의 30가지 메모리 -1988
수왕기. AC. 세가.
영화보다 나은 단 한 장면의 연출. 그것을 위해 시작된 게임이라고 합니다. 변신 장면이라면 영화보다 그래픽이 더 리얼할 거라고 생각을 했고, 첫 한 달간 늑대로 변신하는 컷씬만 만들었다고 하네요. 그 장면이 채택되면서 프로젝트가 시작되었습니다. 마초 느낌이 물씬 풍기는 근육 전사들의 이야기로 잡혀간 여성을 구출한다는 뻔한 스토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스테이지마다 다른 동물로 변신한다는 점, 그리고 충격적인 엔딩으로도 유명한 작품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