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한 놀이

로보캅

by마이즈

우리 시절의 로보캅은 단단함의 상징이었다. 터미네이터 같은 인간형 메카닉도 있었지만 온몸에 철갑을 두른 로보캅이 더욱 강해 보였고, 로봇 다운 어색한 움직임도 어쩐지 단단한 느낌을 주는 듯했다. 친구들과 종종 로보캅 놀이를 하기도 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참 기묘한 놀이였다. 로보캅이 되면 아픔을 견뎌야 하는 규칙이 있었고, 걸을 때마다 ‘로보-캅-로보-캅’ 하는 소리를 내야 했다. 결국 로보캅 역할을 하는 사람은 얻어맞으면서 뛰지도 못하고 철컹철컹 걸어가서 상대를 터치하는 놀이였는데, 왜 이런 놀이를 했는지 참 어린아이들은 알다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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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은 내가 가위 바위 보에서 이기게 되어 로보캅 역할을 하기로 했다. 그때 친구 중 하나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띠면서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BB탄 총! 야, 설마 그걸 나한테 쏘려고? 원래 로보캅은 총알을 버티면서 오는 거잖아. 어쩐지 맞는 말인 것 같아서 인정해 버렸다. 그리고 그날 나는 ‘로보-카아아아압-로보오오-카아아압-하는 이상한 비명을 지르며 총을 쏘는 친구들을 향해 척척 걸어갔다. 집에 와서 옷을 벗어보니 BB탄에 맞은 곳이 빨갛게 부어 있었다. 진짜 로보캅은 아프지도 않은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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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또 다른 이상한 놀이를 했는데, 상대에게 침을 뱉는 것이었다. 그냥 침 뱉기는 싸우는 것 밖에 안되니까 규칙을 정했다. 영화 제목을 말하면서 뱉는 것이다. 한 단어는 하루에 한 번만 쓸 수 있었다. 누군가가 사용한 제목을 다시 사용하면 모두에게 침 뱉기를 당하는 굴욕을 느껴야 했다. 고작 침 뱉는 게 뭐라고 우리는 좋은 제목을 연구했다. 잘 뱉기 위해서는 마지막 제목이 ‘ㅜ’ 또는 ‘ㅠ’ 발음이어야 했다. 내가 찾아낸 필살기는 용쟁호투와 대부였다. 친구에게 다가가서 ‘용쟁호-[투!]’ 하면서 침을 뱉었고, 다시 ‘대-[푸!]’ 하면서 침을 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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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 공격을 받은 친구는 도끼눈을 하고 나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영화 제목을 크게 외쳤다. ‘대-[푸!]-[튜!!!]’ 2 연타 공격을 받은 것이다. 그로기에 빠진 나에게 다른 친구가 달려들었다. 그리고 엄청난 필살기를 썼다. ‘[퍁!]-[투!]-[다!]-[퓨!]-[챠!]-[투!]’ 세상에 6 연타 공격이라니. 하지만 백 투 더 퓨쳐 2를 이길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집에 가서 궁리를 하던 중, 문득 로보캅이 떠올랐다. 로보캅 2가 나온다면 엄청난 필살기가 될 텐데. 가래침 공격이잖아! 어린 시절의 우리는 그리도 지저 분 했다. 다행히 그때는 아직 로보캅 2가 나오기 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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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두 가지 놀이는 어쩐지 로보캅과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다. 어린 나이에 영화를 볼 때는 헬멧을 벗은 로보캅의 모습이 그렇게 흉할 수가 없었다. 제발 헬멧을 쓰고 로봇 같은 모습을 유지해주었으면 했다. 그런데, 왜 헬멧을 써도 입은 내놓고 있는 걸까? 어쩌면 침을 뱉기 위해서일까? 로보 카아악 투! 같은 필살기를 쓰기 위해서 말이야. 이런 생각의 흐름으로 로보캅은 나에게 멋짐과 추함이 공존하는 묘한 캐릭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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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락실에서 로보캅 게임을 발견하고 플레이하는 내내 적의 총알을 몸으로 받아내면서도 머리만큼은 총알이 맞지 않기를 바랐다. 머리에 피격당하는 것을 피하려고 무리하다가 여러 번 죽기까지 했다. 게임에서 헬멧에 벗겨질지 아닐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로보캅의 싫은 모습이 보일까 봐 걱정했던 것 같다. 나에게는 언제까지나 멋진 히어로이기를 바랐던 걸까? 내가 조작하는 게임에서까지 말이다. 물론 어른이 된 지금은 헬멧을 쓴 로보캅과 헬멧 안에 있는 알렉스 머피의 차이점에 더 집중한다. 아이들은 참 순수한 만큼 유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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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즈의 30가지 메모리 -1988

로보캅. AC. 데이터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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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한 영화 IP를 게임화 한 작품으로 묵직한 런 앤 건 게임입니다. 워낙 인기 있는 IP였기 때문에 이후 당시 존재하던 거의 모든 기종으로 이식되기도 했지요. BGM도 영화의 것을 어레인지 해서 사용했는데, 저는 거꾸로 어레인지 된 BGM만 기억나네요. 가까운 적에게는 주먹으로, 멀리 있는 적에게는 총을 쏘는 방식이며 원작의 스토리와 대사를 그대로 사용한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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