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지만 가고 있어

나의 소소한 채식

2026.09.25 주방 싱크대에서 만난 달팽이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지금까지 많이 애썼어.


꼭 잘하고 있어야만 괜찮은 사람이 되는 건 아니야.


오늘 아무것도 못 했어도 괜찮아.

마음이 흔들려도 괜찮고, 다른 사람보다 늦는 것 같아도 괜찮아.


당장 결과가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네가 쌓아온 시간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지금의 노력이 의미 없어지는 것도 아니야.


때로는 앞으로 나아가는 것보다

잠깐 멈춰서 숨을 고르는 게 더 필요한 날도 있어.


그리고 이것만은 기억했으면 좋겠어.


너의 시작은 아직 끝나지 않았어.

지금 잘 안 풀리는 시기가 네 인생 전체를 결정하진 않아.


조금 늦어도 돼.

잠깐 쉬어도 돼.

다시 시작해도 돼.


오늘의 너는

무언가를 결과로 증명해내야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냥 잘 버텨낸 것만으로도 충분한 사람이야.


그러니까 오늘만큼은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해줘.


"괜찮아. 아직 가는 중이야. 나는 생각보다 오래, 잘 버텨왔어."


"조금 쉬었다가 다시 하면 돼."





9월 25일 주방 싱크대에서 달퐁이를 처음 만났다.


눈을 뻐끔뻐끔 내밀고 살아 있다고 외치는 모습을 외면할 수 없어서 설거지통 옆에서 바로 건져내 창가의 바질 화분으로 옮겨 주었다.


우리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명주달팽이, 아직 어린 개체.

연약하고 작은 아기 달팽이.


그 아이가 나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주었다.


느리지만 괜찮다고, 천천히 나아가면 된다고.

실패가 아니라 조금 쉬고 있을 뿐이라고.



창가는 햇빛때문에 달팽이가 뜨거울 수 있어 해롭다는 말에 바질 화분 옆에 있는 커다란 몬스테라 화분으로 다시 옮겨줬다.


자기 몸집만한 작은 바질 잎을 떼주었더니 이불처럼 꼭 감싸고 자는 모습이 정말 아가같았다.


반려달팽이가 귀여워서 이름을 져주었다.


'달퐁이'


축축한 것을 좋아해 아침마다 화분에 듬뿍 물을 뿌려주는데 그때마다 흙을 비집고 나와서 샤워를 한다. 눈을 다시 꿈뻑꿈뻑 내밀고 소낙비처럼 물을 한껏 맞는 모습에 내 마음도 시원해진다.


가끔씩 조용히 전해지는 위로의 말이 귀할 때가 있다.


손톰만치 작은 달팽이가 나에게 큰 위로가 됐다.



https://fishingproductfr.com/@deuny/1133

https://fishingproductfr.com/@deuny/1062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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