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내려놓기로 했다
아이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대면 상담을 했으면 좋겠다는 연락을 받았다.
무언가 쿵 하고 마음에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웬만하면 교사가 먼저 대면 상담을 요청하는 일은 드물다. 그것도 전화가 아니라 직접 보자는 건 분명 가벼운 이야기는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전 다른 친구를 놀려 주의를 받은 일이 있었는데, 그것 때문인지 다른 이유가 있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주말 내내 마음을 졸였고, 상담 직전까지도 긴장을 놓을 수 없었다.
혹시 ADHD 검사를 받아보라고 하시면 어떻게 하지?
학기 초 상담 때만 해도 선생님께서는 아이가 똘똘하지만 성격이 급한 편이라 조금 차분한 태도를 기르면 좋겠다고 하셨다. 혹시 수업을 방해하진 않는지 조심스럽게 여쭤봤지만, 수업 참여도 좋고 그런 문제는 없다고 하셨다. 그래서 더 교우관계 때문인가 싶었다.
교실 문을 열 때까지도 심장이 계속 요동쳤다.
그런데 선생님께서는 예상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꺼내셨다.
아이에 대해
조금 내려놓으시면 좋을 것 같아요.
나는 교우관계나 생활 태도 이야기가 나올 줄 알았다.
아이들이 친구를 놀린다거나 장난치는 건 아직 어리니까 그럴 수 있어요.
그것보다 더 중요한 건 엄마와 아이의 관계예요.
선생님께서는 아이가 학교에서 가끔 나에 대한 불만을 이야기한다고 하셨다.
"날씨 더운데 엄마가 긴 팔 입고 가래요!"
친구들과 모여 엄마는 자기 말을 안 들어준다며 속상해하기도 하고, 혼나는 상황에서는 둘러대며 피하려는 모습도 있었다고 했다.
아이가 감정 조절이 잘 안 될 때도 있고, 친구들에게 다가갈 때 부담스럽게 행동할 때가 있어요. 그러다 보니 아이가 그런 모습을 보일 때 훈육을 많이 했어요.
제가 너무 과했던 걸까요?
나는 그 말을 듣는데도 믿기지가 않았다. 집에서는 크게 그런 모습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이가 충동적인 면이 있는 건 맞아요. 이건 3-4학년쯤 되면 거의 좋아져요. 이 나이 또래 남자아이들이 대부분 그래요. 차분하고 얌전한 친구가 오히려 드물죠. 아이는 잘 자라고 있고, 괜찮아요.
중요한 건 아이가 엇나가지 않게 엄마와 관계를 잘 유지하는 거예요. 내려놓으셔야 돼요.
나는 아이가 학교에 잘 적응하길 바랐다. 친구들에게 피해 주지 않는 아이가 되길 바랐다. 그래서 더 훈육했다. 그런데 아이는 어느 순간부터 자신을 “나쁜 아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같은 반의 차분한 친구와 스스로를 비교하며, 자기는 그 친구처럼 좋은 아이가 될 수 없다고 했다. 나는 아니라고 아이를 안아주었지만, 그 말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혹시 아이는 훈육 속에서 스스로를 문제 있는 아이처럼 느꼈던 걸까. 잘해보려 했던 내 마음이 오히려 아이를 위축시킨 건 아닐까.
수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지금부터 하면 돼요.
아이 마음을 먼저 알아주시고,
많이 토닥여주세요.
상담을 받는 중에 나도 모르게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수첩에 우리 아이가 한 말이나 행동을 꼼꼼하게 적어두신 걸 보면서 따뜻하게 말씀해 주시는 선생님께 정말 감사했고, 병원에 가야 되는 심각한 상황이 아닌 게 다행이었고, 내 잘못이 큰 것 같아 자바카라감이 들어서 눈물이 났다.
연신 선생님께 감사 인사를 드리고 학교를 나오는데, 마음이 이상하게 후련했다.
우리 아이에게 큰 문제가 있었던 건 아니었구나. 아이가 잘못 자라고 있었던 게 아니라, 내가 너무 불안했던 거구나. 교사라는 직업 때문인지 나는 아이가 조금의 민폐도 끼치지 않길 바랐다.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아이가 되어야 한다는 마음이 너무 컸다.
그럴 수도 있지
생각해 보면 학교에서 학생들을 대할 때 가장 많이 했던 말이었다.
사춘기의 한가운데를 지나고 있는 중학생들도, 아직 전두엽이 다 자라지 않은 어린아이들도 결국은 비슷하다. 하지 말아야 하는 걸 알면서도 충동적으로 행동하고, 그러고 나서 스스로 속상해하고 자바카라한다. 더 성장하기 위해 잠시 흔들리는 시기일 뿐인데, 나는 우리 아이에게 그 시간을 허락하지 못했던 것 같다.
다른 집 아이에게는 되던 이해가 왜 우리 아이에게는 되지 않았을까. 잘 키워야 한다는 부담감이 나 자신도, 아이도 너무 힘들게 만들고 있었다.
상담 이후로는 아이 마음을 먼저 들여다보려고 노력했다. 훈육도 꼭 필요한 순간에만 하려고 했다. 그러자 아이는 어느 순간부터 “나는 나쁜 아이야”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친구들과도 훨씬 편안하게 잘 지낸다.
아이들은 정말 하루가 다르게 변한다. 그래서 아이를 대하는 방식도 계속 달라져야 한다. 하지만 한 가지 변하지 말아야 하는 건 아이를 바라보는 마음 아닐까.
너무 부족하지도, 그렇다고 과하지도 않게.
마음을 조금 내려놓고, 다른 집 아이를 바라보듯 우리 아이를 바라보는 것.
그럴 수도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