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아이, 우리 반 아이

나는 엄마일까, 교사일까?

by나오

다사다난했던 2026년 상반기가 지났다.


남아 있던 육아휴직 반년을 탈탈 털어 쓰고, 2학기 개학일에 맞춰 복직했다.


우리 집 아이는 우여곡절 끝에 초등학교 1학년 생활에 적응을 마쳤고, 나 역시 생각보다 빠르게 새 학교에 익숙해졌다.


십여 년 만에 중학교 1학년 담임을 맡았다. 중간에 복직한 탓에 아이들 입장에서는 갑자기 담임 선생님이 바뀌어 낯설었을 텐데, 반갑게 맞아 주어 정말 고마웠다. 나 역시 기를 쓰고 하루 만에 학급 아이들의 얼굴과 이름을 익혔다.


최고의 장학은
바로 아이들 이름을 외우는 거야!



교직 생활을 처음 시작할 때,

선배 교사였던 이모가 딱 한 마디를 건넸다. 학생들의 이름을 불러 주라는 것.


초임 시절에는, 아니 십 년 전만 해도 수업에 들어가는 학급 학생들의 이름을 전부 외웠다. 보통 열 개에서 열두 개 학급을 맡았으니, 어림잡아도 300여 명이었다.


하지만 아이를 낳으면서 (우스갯소리로) 뇌도 같이 낳아 버린 건지, 이름을 외우는 속도도 더뎌졌다. 코로나 시절에는 마스크를 쓴 얼굴들이 비슷비슷해 보여 이름마저 헷갈리기 시작했다. 요즘은 개인정보 문제로 학생들의 사진을 함부로 찍어 얼굴을 익히기도 어려우니, 여러모로 이름 외우기가 쉽지 않다.


학기 초에는 수업만으로도 정신이 없었지만, 학급 아이들과 개별 상담도 시작했다. 2주 동안 빠르게 상담을 진행하며 기초 조사서를 살펴보고 아이들을 알아 갔다.


학급 아이들을 마주치는 횟수가 늘고 학기가 중반에 접어들자, 학기 초의 긴장감도 조금씩 풀렸다. 그러자 슬슬 몇몇 남학생의 장난기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00야,
복도에서 뛰지 말라고 이야기했잖아,
엄마가~~


아뿔싸.


우리 반 장난꾸러기 남자애한테 잔소리를 하다가 그만 ‘선생님이~’라고 해야 할 걸 ‘엄마가~’라고 해 버렸다. 체구가 작아 항상 어깨에 손을 얹고 잔소리를 하곤 했는데, 까불이 우리 집 아이와 성격이며 하는 짓(?)도 비슷해서인지 평소 우리 애에게 하던 말버릇이 그대로 튀어나온 것이다.


내 말을 듣더니 장난꾸러기 남학생의 입꼬리가 쓰윽 올라간다. 옆에 있던 애들도 키득키득 웃는다.나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자연스레 말을 이어 갔다.


또 한 번은 그 친구가 복도에서 목발을 짚고 다니길래, 어디 다친 줄 알고 화들짝 놀라 달려간 적이 있다. 알고 보니 옆 반 친구의 목발을 남자애들 몇몇이 돌려 가며 쓰고 있었다. 정작 다리를 깁스한 옆 반 친구는 목발도 없이 한 발로 콩콩거리며 걸었다.


두 달 전, 나도 발을 심하게 접질려 반깁스를 하고 목발을 짚고 다녔었다. 그때 우리 애가 나 몰래 내 깁스를 차고 목발을 짚은 채 절뚝거리며 걸었던 장면이 겹쳐졌다.


엄마네 학교에 너랑 똑같은 형아들이 있어. 오늘 이러이러한 일이 있었거든. 그런데 장난치는 게 정말 너랑 너무 똑같아!


집에 돌아와 아이에게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해 주니, 아이가 귀를 쫑긋 세우며 더 이야기해 달라고 채근했다. 형아들의 장난 에피소드를 매일 들려 달라고 난리다.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하루하루 심심할 날이 없다. 어디서든 쉴 틈 없이 일하고 아이들을 챙기느라 정신이 없다가도, 시트콤 같은 장면을 마주하면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진다.


매일매일 다른 모습을 보여 주는 남의 집 아이, 또 우리 집 아이 때문에 힘들기도 하지만 그만큼 즐겁기도 하다. 물론 때때로 골머리를 앓을 때도 있다. 학교에서는 선생님으로서 아이들의 장난을 단속하고, 집에서는 엄마로서 똑같은 장난을 치는 아이를 혼내야 하니 말이다.


그런데 가끔은 그 두 아이가 한 아이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교실에서 만난 학생의 행동에서 우리 애의 모습을 발견하고, 집에서 우리 애를 바라보다가 문득 교실의 어떤 학생을 떠올린다. 남의 집 아이를 이해하는 마음과 우리 집 아이를 이해하는 마음이 조금씩 겹쳐진다.


엄마가 되고 나서야 알게 된 것들이 있다. 아이들이 왜 그렇게 장난을 치는지, 칭찬 한마디에 왜 그렇게 좋아하는지, 혼이 나면서도 왜 좀처럼 웃음을 참지 못하는지. 물론 엄마가 되기 전에도 아이들을 가르쳤지만, 내 아이를 키우면서 비로소 새롭게 보이는 것들이 있다.


나는 엄마일까, 교사일까?


학교에서는 선생님이고 집에서는 엄마지만, 어쩌면 두 역할은 생각보다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지도 모르겠다. 우리 집 아이를 키우며 우리 반 아이들을 이해하고, 우리 반 아이들을 가르치며 우리 집 아이를 다시 바라본다.


오늘도 나는 남의 집 아이와 우리 집 아이를 오가며, 아이들을 조금씩 더 이해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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