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붙여주는 일
놀이터에서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바라보다가, 벌을 무서워하는 아이 친구를 보며 문득 십여 년 전 학교에서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선생님... 벌에 쏘였는데 너무 아파요.
시골 학교에 부임한 첫 해.
스물여섯이었던 나는 지금 생각하면 정말 너무 어렸다.
5월, 딱 지금 같은 계절 즈음 학교에서 체육대회가 열렸다.
요즘은 신규 교사에게 첫 해부터 담임을 맡기지 않는 학교도 많지만, 그때는 무조건 담임으로 투입되곤 했다. 그냥 부딪치며 배우는 수밖에 없었다.
전교생도 많지 않은 작은 시골 학교에서 1학년 담임을 맡고 있던 나는 매일 정신없이 하루를 보냈다. 체육대회 날도 마찬가지였다. 여러 종목에 참가하는 아이들을 챙기느라 혼이 쏙 빠져 있었다.
그런데 우리 반 여자아이가 벌에 쏘인 것이다.
괜찮은지 확인하고 보건실에 데려가려는데,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와 자기 순서를 물어보고, 경기 준비를 도와달라고 하고, 여기저기서 동시에 말을 걸어왔다. 우왕좌왕하고 있는데 나이 지긋하신 여자 부장선생님께서 다가오셨다.
내가 우선 보건실 데려갈 테니, 선생님은 아이들 경기부터 챙겨요.
얼른 상황을 마무리하고 보건실로 뛰어갔더니, 아이는 계속 울고 있었다. 벌에 쏘인 곳이 많이 아픈 모양이었다.
아이고.. 많이 아프겠다.
치료받고 있으니까 금방 괜찮아질 거야!
많이 놀랐지...
평소엔 차분하시고 철두철미하셔서 조금 차갑게 느껴질 때도 있던 부장 선생님의 모습이 너무 의외였다. 아이를 바라보는 눈빛과 목소리가 참 따뜻했다.
나는 얼른 정신 차리고 부모님께 연락을 드렸다. 아이는 계속 울고 있었고, 나는 가만히 아이 등을 토닥이며 안아주었다.
신규 교사였던 내게는 꽤 큰 사건이었다.
그 일을 겪고 난 뒤부터 아이들을 대하는 내 마음도 조금 달라졌던 것 같다. 아이가 아프면 다른 일보다 먼저 아이를 챙겨야겠다고, 마음 깊은 곳에 그런 생각이 새겨졌다.
그때의 나는 미혼이었고 아이도 없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이이를 키우기 전과 후의 나는 참 많이 다르다.
아이들을 향한 열정과 사랑, 그리고 표현
물론 아이들을 대하는 태도는 결혼 여부나 자녀 유무와는 별개의 문제일 것이다. 사람의 성향도 있고, 교사로서의 바카라임감과 직업의식도 있으니까.
하지만 적어도 내 경우에는, 아이를 낳고 키운 이후부터 아이와 부모의 마음을 이전보다 훨씬 더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된 것 같다.
예전에는 아이들을 학생으로, 보살펴줘야 할 대상으로 바라봤다면, 지금은 이해하려고 하지 않아도 마음으로 먼저 와닿는 감정들이 있다. 그리고 그 마음을 나는 오래전, 그 부장 선생님의 모습을 통해 이미 조금 배우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작은 시골 학교에서는 참 많은 일이 있었다.
남학생이 계단에서 뛰어 내려서 다리가 부러졌는데, 편부 가정의 아버님이 일 때문에 연락이 안 되어 부리나케 응급실에 데리고 가서 치료를 받게 했던 일.
우리 반 남자애가 가출을 해서 학급 친구들하고 온 동네방네 이름 부르며 찾아다니다 밤늦게 구석에 있는 아이를 발견하고 다 같이 기뻐했던 일.
병원, 경찰서, 장례식장...
근무 중에, 퇴근 후에 여러 번 들락날락했던 것 같다. 갈 일이 생기지 않는 게 가장 좋겠지만, 학교라는 곳은 생각보다 많은 삶의 순간들이 지나가는 공간이었다.
학교 생활을 하다 보면 참 여러 감정을 마주하게 된다.
특히 아프고 힘든 순간에는 말 한마디, 작은 밴드 하나가 생각보다 큰 위로가 되기도 한다.
선생님! 진짜 감사해요.
너무 감동이에요.
가끔 상처가 난 아이들이 교무실로 찾아온다. 큰 학교는 보건실이 멀기도 하고, 보건 선생님이 자리를 비우시는 경우도 있어서 학년 교무실마다 구급상자가 비치되어 있다.
나는 아이들 상처를 치료해 주는 걸 좋아한다.
그래서 잘 모르는 아이여도 상황이 괜찮으면 상처에 연고를 발라주고 밴드를 붙여준다. 가끔은 개인적으로 가지고 다니는 캐릭터 밴드를 쥐어주면서 "이건 나중에 또 붙여" 하고 건네기도 한다. 그러면 아이들은 대부분 정말 좋아한다.
중학생이면 사실 혼자서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다친 것도 서럽고 아픈데, 누군가 건네는 작은 다정함이 생각보다 오래 위로가 된다는 걸 이제는 안다. 어쩌면 나 역시 그런 방식으로 치유받고 싶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몸이든 마음이든 살아가다 보면 누구나 상처를 입는다. 다치지 않고 살아간다는 건 아마 불가능할 것이다.
그렇지만 누군가의 따뜻한 말 한마디와
작은 밴드 하나로
생각보다 금방 괜찮아질 수 있다는 것
아마 내가 아이들의 상처에 밴드를 붙여주게 되는 이유도, 오래전 그날의 마음을 아직 기억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