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는 오로지 일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그게 가능했던 것은 새롭게 들어간 온라인 게임에서 맘껏 일할 수 있도록 엄마가 전적으로 도와주셔서였다. 올해 초부터 공식적으로 엄마를 육아 퇴직(?) 시키고(비공식 돌봄 노동은 아직도 진행 중이시지만 ㅎㅎ) 등원을 내가 하고, 덕분에 늦은 퇴근을 하니 생활 리듬이 다 깨졌다. 작년의 과로가 건강검진 결과로 여실하게 드러나기도 해서, 이제 정말 근력운동과 전반적인 장기의 기능회복을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어디 한 곳 성한 곳이 없고 위태하다. 엄마가 도와주셨어도 작년에도 내가 챙겨야만 하는 일들이 산더미였고, 울며, 그때그때 쳐내며, 일과 가정 외의 소소한 즐거움 등은 포기하며 버텼다.
문득, 구글 캘린더를 들여다보며 우와. 정말 뭐가 많기는 하네, 싶어서. 크고 작게 빼곡한 투두 리스트가 박혀있는 달력을 보며 일기를 쓴다.
오늘 꼭 해야 하는 일은 여름이불 교체. 주말에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아이 실내화 빨기와 여름 여벌옷 챙겨서 등원가방 싸두기.
6월 달력에 내가 챙겨야 하는 일들이 빼곡하게 쓰여있다. 단지 수목소독일 앞뒤 창문닫기 꼭. 우리 집은 저층 세대라 반드시 닫기. 낮에 사람이 없어 집안 소독 못 받은 우리 집은 관리사무소에서 약 받아서 자체 소독약 뿌리기.
유치원생 케어를 위해서는 등하원 일정 챙기기(오늘은 누가 하원할지, 차편 어떻게 할지 등). 월요일 체육수업과 외부 견학이 있는 날 원복 입히기(우리 아이 혼자 사복이 아니도록), 이달엔 아이 상담도 있는 달. 아이상담신청서 작성해서 보내기. 아이와 굿네이버스 후원 그림일기 그려 보내기, 동요잔치 동요연습, 은행방문학습용 통장준비(다행히 진즉에 개설해 두었다 ㅠㅎ), 단오에 한복 입혀 보내기, 6월 생일자 선물 준비, 건강검진 예약, 유치원 본상담받기 등 등
물론 실수도 하고, 몇 가지는 늦기도 하면서 요령 있게? 해나가고 있기는 하다. 힘들고 지치는 것은 아니고, 새롭고 즐거운 추억들이 아이에게 쌓인다는 마음으로 즐겁게(?) 챙기고 있다.
이 외에 이번 주에는 보조바퀴가 달린 자전거를 가서 아이와 직접 타보고 구매하려고 계획 중이고, 그 외에 갖고 싶다는 장난감이나 작아진 옷과 양말 구매도 틈틈이 챙긴다. 여유가 있는 주말을 위한 외출계획도 짜야한다.
아직 펜 잡는 게 어색해서 선긋기, 색칠하기, 가위질 이런 것 연습도 같이 해야 하는데 ㅠ 한글도 가르쳐야 하고 말이다. 마음만 앞선다.
당연히 출근해서 일도 열심히 해야 하고, 매일의 먹이고 입히고 닦이고 놀아주기는 기본이다. 손발톱 깎기도 잊으면 안 된다.
고정 가사 일은 어떤가. 물론 신랑이 함께하기는 하지만. 집안에 떨어지는 모든 물건들. 맞다! 세탁세제와 주방세제도 사야 한다. 오늘 할 일에 추가. 청소. 빨래. 이불 털기. 재활용쓰레기와 일반쓰레기 배출. 수요일 아침 우유배달 냉장고에 잊지 않고 넣기. 식자재 떨어진 것 체크 및 장보기. 정수기 점검원과 일정 맞추기와 점검받기.
아이 미용실도 데려가야 한다. 그러다 내 흰머리커버와 커트. 신랑도 미용실 가야 할 텐데. 요새 나는 치과치료도 받고 있다. 그래서 더 정신없고.
매달 있는 가족행사와 지인들의 애경사. 엄마와 이모의 이런저런 온라인 구매요청 처리.
교회에서 맡은 일들. 순서를 맡으면 준비해야 하는 것들.
그 외에 내 개인 활동들, 친구들과의 일정. 가끔 강의와 외부 심의, 심사, 원고 그런 것들. 여름이라 패디큐어 받고 싶은데. 과연 언제 받을 수 있을까.
그래도 나는 형편이 좋다. 홀로 키우는 것도 아니고, 시시때때로 온 가족이 돕고, 다행히 이달 말부터는 육아기 단축근무도 쓸 수 있게 되었다. 대기업이나 공무원 또는 사기업이라도 사기업마다 회사 분위기가 다르고, 더욱이 100명 이하의 기관단체에서는, 제도가 있다 해도 쓸 수 없는 경우가 많다. 20명 이하면 더 말할 것도 없고. 며칠 전 한 동료와 이야기할 때, 본인 주변에서 내가 유일하게 단축근무 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나까지 너무 속상해졌다. 세상이 좋아졌다는 말, 현실은 아직 멀었다.
아주 간단하게 정부출현기관단체들의 육아기단축근로 하고 있는 직원현황만 한번 조사해 봐도 답은 금방 나올 것이다. 공무원은 아니고 민간신분의 정부출현기관단체들 말이다. 20명 미만의 조직들. 그런 배려 한번 받지 못하고 바카라임자 자리에 간 이들은 그런 혜택을 받으려는 직원들이 이기적으로 보일 것이다. 조직을 생각하지 않는 못된 것들이 되는 선택을 오롯이 개인이 짊어지며 버티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느니 차라리 경력을 중단하는 사람들이 생기는 것이고, 그렇게 사람을 잃고, 이 섹터에서의 유능한 인재들을 잃는 거다. 나 역시 법으로 보장받은 단축근로를 신청하면서도 일이 줄지 않는데 이게 과연 가능한가 고민이 되었고, 그런 질문을 받았지만, 할 수 있는 만큼 쉬지 않고 밀도 있게 하는 것, 그냥 그렇게 선택하고 실행하는 것이 나의 최선.
나에겐 선택지가 별로 없다. 이 와중에 또 소소한 행복들을 누리고 찾는 것도 내 몫이고.
홍반장처럼 고민하는 것 하나 더. 우리 동네 마을버스 간격이 너무 길어서, 마음 같아선 아파트 주민들 서명을 다 받아서 구청에 제출하고 싶은데, 할 시간이 없고. 아무튼 나의 투두 목록에 마을버스 간격 줄이기도 있다. 차를 가지고 다니지 않을 수가 없다. 20분 마을버스를 몇 번 타보았는데, 이렇게는 아이와 움직일 수 없다. 마을버스 배차를 해준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하나. 몇 명의 서명이 필요한 걸까. 그런 고민도 틈틈이 해본다.
네덜란드(?) 던가에 세워진 슈퍼우먼 동상이, 손이 여섯 개인지 하는 엄마가 아이를 데리고 온갖 돌봄 노동과 업무를 보는 모습이라는 기사와 사진을 본 기억이 난다. 슈퍼우먼으로 한동안 지내는 많은 여성들 ㅠ 다행히도 아이들은 자라니까. 또 하나 걱정인 것은 아이가 경제활동을 채 시작하기도 전에 내 경제활동시기가 끝나는 것에 대한 두려움. 요즘 같이 노산이 많은 시국에, 대바카라이 필요하지 않나 싶고. 나의 노후 같은 것들까지 걱정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해서 늘 대바카라을 세우다 발등에 떨어진 일들을 처리하고. 지쳐서 잠이 든다. 다들 나 빼고 다 걱정 없이 잘 사는 것 같아서 불안한 요즘, 그 불안도 피곤해서 놓치는 엄마들이, 지금 여기에 가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