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산촌 이야기 수필
호박 따기
가은읍 왕능리 500번지 사택에 밤이 찾아온다.
아이들이 모두 집으로 돌아간 신작로는 산길처럼 으슥하다. 30촉짜리 가로등이 기지개를 켠다.
8시가 되면 아이들은 집으로 가고 신작로는 텅 빈다.
병방 가는 아버지들을 위한 가족들의 배려다.
춤바람 소문이 났다.
제비족한테 걸려 도망갔다는 이야기
도탄교에 택시가 줄지어 들어온다는 이야기
춤바람 나서 쫓겨난 아줌마들도 있다는 이야기
사람 사는 동네에 소문이 많은 것은 당연했다.
그러나, 이번에 떠도는 소문은 실명이 거론될 정도로
명확했다.
남편 을방을 보내고 점촌으로 달려가서는 춤을 추고
밤 11시가 되면 택시들이 아줌마들을 태우고 도탄교에 내리는 것을 본 사람이 한둘이 아니라는 이야기
광부들은 불안해했다.
목숨 바쳐 쎄가 빠지게 일을 했는데
춤바람이라니
혹시 내 마누라도 있는 걸까?
광부들은 불안했다.
갱에 들어가면 외부와의 연락이 두절된다.
갱에 들어가면 나올 때까지 집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모른다. 그래서 소문은 사실이 되어
가고 있었다.
그런데, 우리 엄마가 수상했다.
최근 들어 을방을 보내신 엄마는
저녁을 먹고 나면 우리를 작은 방에 넣어 놓고
어디론가 급히 가셨다.
어디 가냐고 물어도 알 것 없다며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가셨다.
갑방 때는 집에 계시는데 을방이나 병방 때는
어김없이 나가셨다.
엄마 어디 가시는 걸까?
알고 있는 사람 없어
바카라상에서 공부하던 형이
엎드려 있는 동생 셋에게 물어본다.
형은 친구인 남수에게 소문을 들어서
내심 불안했다.
정말 엄마가 춤바람이 난 걸까,
우리를 놔두고 도망이라도 간다는 말인가,
믿기지가 않았다.
엄마는 밤만 되면 어디를 가시는 걸까?
물어보고 싶었지만 사실일까 두려웠다.
오늘도 엄마는 설거지를 하시고는
호박 따러 가신다고 나가셨다
아버지 병방 가야 하니까 조용히 작은방에서
숙제해라 동생들 안 떠들게 하고
엄마는 신신당부를 하고는 나가셨다
안방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아버지가 주무시다가 말고 물을 찾는다.
형은 엄마 대신 물을 한 대접 갖다 드렸다.
엄마 어디 갔나?
아버지가 대접을 내려놓았다.
창균이 엄마가 불러서 나가셨어요
호박을 딴다고 하는 것 같은데요.
밤에 무슨 호박이야 이 여편네가
아버지는 잠 자기는 글렀는지
재떨이를 끌어당기고 불을 댕겼다
빨랑 엄마 찾아와
아버지가 소리를 버럭 질렀다.
형과 나는 창균이네 집에도 가고 경환이네도
가보았다. 그러나 엄마는 안 계셨다.
우리 엄마 못 보셨어요.
남수 엄마가 공동쓰레기장에 쓰레기를 버리는 것을 보고
형이 냅다 달려가서 물었다.
니 엄마 희태네 집에 계신다.
나도 거기 있다가 남수 할매 저녁 챙긴다고 먼저 나왔는데
구멍가게가 사택에 두 개 있다. 그중에 하나가 희태네 가게였다.
봐요
형이 가게문을 옆으로 열며 소리쳤다.
아줌아들의 소리가 들려왔다.
누가 왔냐? 현창이 왔구나
엄마가 놀란 표정으로 나오셨다
아부지 깨싯나?
네 엄마 불러오래요
엄마는 집으로 뛰어가셨다
어디 갔다 와여?
아버지가 대뜸 소리쳤다.
어딜 가긴 어디가여
놀다 왔지
엄마는 삐죽거리는 표정을 지으셨다.
춤바람 난기라?
요즘 소문이 무성하더구먼
춤출 돈이나 주고 말씀하시든가
엄마나 기가 찬듯한 표정을 지으신다
호박은 뭐라? 밤에 호박 딴다는 게 무슨 소리라?
동네 아줌마들이랑 십 원짜리 화투치고 왔어요
병방때 을방때 잠 안 자려고
그냥 우리끼리 호박 따기라고 해여.
아버지는 무안한 듯 그렇지만 안도하는 표정을
지으며 라면이나 끓이라고 하셨다.
엄마의 주머니 속에서 동전 소리가 났다.
봄 여름 가을 겨울에도 호박 따기는 계속되었다.
아침에 호박을 먹은 적은 없지만 엄마의 호박 따기는
일 년 내내 계속되었다.
라면 냄새에 동생들이 깼다. 한 젓가락씩 거들려고
동그랗게 모였다. 엄마는 물을 더 넣고 다락에서
라면 두 개를 꺼냈다.
사택에 불들이 켜진다. 병방을 가려는 광부들이
출근 준비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