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비마중
하현국
비가 내린다.
여름비 치고는 시원하게 내린다.
밤부터 비가 내렸나 보다 신작로가 흥건했다.
산중턱 갱 입구에서 메아리가 울려 퍼지듯
라디오 소리가 들려온다
사고 없이 무사함을 알리는 반가운 소리다.
샥샥
엄마가 부엌에서 골뱅이를 씻는가 보다
간밤에 주운 골뱅이 씻는 소리가 경쾌하다
엄마는 오늘 골뱅국을 끓일 모양이다.
가은 사람들은 여름 내내 골뱅이를 줍는다.
용추계곡에서 양산천과 농암 쪽에서
흐르는 영강이 Y자로 만나 가은은 물고기와
골뱅이가 천지다.
광산촌 부녀자들은 남편을 을방 보내고 퇴근해서 집에 올 때까지 양산천에서 골뱅이를 줍는다.
물안경을 쓰고 수달처럼 물 위를 웅크리면서 이동하며 연신 허리를 굽혔다 폈다 한다.
밤에는 플래시나 *간드레를 비춘다. 그러면 골뱅이들이
돌 밑에서 설설 기어 나온다.
사택 앞에 도탄교 밑에는 을이나 병방 때는 냇가는
작업을 마치고 뭍으로 올라오는 해녀들의 행렬처럼
장관이다.
우리 4형제는 둘러앉아 삶은 골뱅이를
삔침으로 까야했다. 어른 밥그릇으로 한 공기가 할당량이다.
엄마는 우리가 까 놓은 골뱅이를 밀가루에 묻혀 계란물을 입힌다. 그리고는 시래기 토란 손에 잡히는 나물을 넣고
된장과 고추장을 풀어 한 솥 끓여 내신다.
여름 별미가 탄생한다.
우리는 여름 내내 골뱅이국으로 여름을 난다.
오늘도 부엌에서 골뱅이국 냄새가 난다.
며칠 전에 잡아서 까놓은 골뱅일 것이다.
빗줄기가 굵어지는지 양철 지붕이 시끄러워진다
부엌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둘째야,
어차피 대답하지 않아도 방문을 벌컥 열 것이고
양손에 우산을 들고 계실 것이다.
또 내가 가는 거야?
지난번에도 갔었잖아.
퉁퉁 불은 목소리로 말해 본다.
그럼 너 말고 누가 가?
형은 중3이고
동생은 아직 국민학생이잖아
작년까지 국민학생이었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을 것을 알기에
입을 닫았다.
잔말 말고 우산 갖다 드려
아이 씨 오늘 일요일인데
졸리단 말이야
나는 억지로 하품을 했다.
형은 공부해야 되잖아
고등학교는 가야지
그리고 동생들은 아직 국민학생이거든
집에서 은성광업소 갱입구까지는 1km 정도 되었다.
걸어서 20분 정도다. 신작로가 끝나면 광업소다
갱 입구까지는 질퍽한 흙길이었다.
쌀 배급소가 있고 3층짜리 광업소 건물을 지나면
갱으로 들어가는 시멘트 길이다.
갱으로 들어가는 기찻길 같은 선로를 따라 걸어간다
대한석탄공사 마크가 새겨진 아버지 장화가 커서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그래도 시커먼 석탄물이
발에 안 들어오는 것이 낫다.
우산을 든 엄마들과 아이들이 줄지어 걸어가고 있었다.
아이 씨,
오늘 일요일인데 똘이장군 만화영화도 못 보고
왜 나만 가는 거야,
생각할수록 짜증이 났다
출근 시간이 아니라 그런지 아줌마들과 여자아이들이
제법 보였다. 출근하다가 여자를 보면 재수가 없다면서 집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출근 시간에 여자들은
바깥출입을 하지 않는 광산촌의 풍습이다.
흰색 바탕에 까만 은성 갱이라는 글자가 눈에 들어온다.
비에 젖은 글자에서 검은 물이 떨어져
하얀 물빛에 까만 글자가 섞이지 않고 선명하게 보였다
그 밑에는 근면 자조 협동의 글자가 대문 위에 아치로 걸려 있다.
이제 곧 광부들이 소나기처럼 쏟아져 나올 것이다.
까만 옷 노란 모자 그리고 석탄으로 위장한 얼굴
가족들은 기가 막히게 아버지를 알아보고는 우산을 건넨다. 하얀 치아에 미소가 담긴다.
아버지들은 도시락 가방을 건네주고는 목욕탕으로
향했다. 살아 나왔다는 안도감이 등뒤로 번져 나온다.
아버지는 거의 맨 뒤에 나오신다. 막장에서 사끼야마로
작업하는 채탄광부라 굴 막장에서 나오신다.
아버지가 아저씨들 틈에서 하얀 이를 보이면서 나오셨다.
아부지 우산요
나는 무뚝뚝한 말투
아버지는 무표정, 무언이었다.
아버지는 도시락 가방을 던지듯 주고는
우산을 받고서 목욕탕으로 총총히 가버리셨다.
수고하셨어요. 그 한마디를 못했고
수고했어. 그 한마디를 못 들었다.
아버지랑 대화를 한 기억은 없다.
그것은 다른 형제들도 그랬을 것이다.
유일하게 아버지와 독대했던 비마중 시간
형, 동생도 한 번쯤은 같은 추억이 있을 것이다.
십 초도 안되었던 그 시간이 또렷하게 새겨져 있다.
아침에 광업소에서 틀어주는 라디오가 나와야
안도했던 광산촌 사람들.
엄마들은 밤새도록 석탄을 캔 남편을 위해 아침을 준비하고 자식들에게 우산을 들려보네 비마중을 하셨다.
그것이 엄마의 사랑의 표현이었을 것이다.
은성갱 앞에 섰다.
석탄차가 다니는 은성교에 철길은 없다.
은성광업소 사무실도 없다. 쌀배급소도 없다.
비가 오는데 비마중을 하는 아이들은 없다.
광부도 없다.
석탄도 없다.
수몰된 광산촌에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산은 그대로이고 나무와 풀이 촘촘하게 자라고 있다.
석탄박물관이 배처럼 둥둥 떠다닌다. 배를 타듯 입장료를 내야 들어갈 수 있다. 마네킹은 움직이지만 살아있는 것은 아니고 반복되는 녹음소리에는 음성은 없었다.
석탄 박물관 밑에는 갱이 거미줄처럼 쳐져 있는 것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비가 오지 않지만 우산을 들고 비마중을 선다
아버지가 나오시면 꼭 큰 소리로 말하고 싶다
아버지 수고하셨습니다.
아버지 감사합니다.
아버지 사랑합니다.
라고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