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개의 점

갈매기도 우는구나

by하현국

네 개의 점

갈매기도 우는구나 2


              하현국


네 개의 점이 한 도시에 사각형을 이루고 산다.


첫째와 둘째는 동구에, 셋째와 넷째는 수성구 시지에 산다. 지도에 점을 찍고 이어 보면 얼추 직사각형이 된다. 네 개의 점은 수시로 모였다. 네 개의 점은 아버지를 닮아 주당들이었다.


아버지처럼 술은 마시지 않으리라.

아마 아버지의 술주정을 보면서 자란 사형제는 맹세를 했을 것이다. 그러나 물보다 진한 게 피라고 사형제 중 누구도 그 맹세를 지키지 못했다. 오히려 아버지보다 더 마신다. 특히 막내는 술이 없을 때까지 마시는 대단한 주당이다.

주당들이라 4형제는 자주 모였다. 주위에서는 우애 좋은 형제라고 부러워했다.


그런데 오늘은 왜 모이지?


아무리 생각해도 모일 건더기가 없었다. 조카 중 유일하게 운전이 가능한 아들을 데리고 약속 장소로 갔다.


금요일 저녁 수성구 시지는 화려했다.

고작 강 하나 건너왔는데 반야월과는 분위기부터 차원이 달랐다.

아파트 불빛 가로등 불빛이 욱수천변 물 위로 쏟아져 별처럼 반짝였다.

셋째 단골집인 욱수천변에 유일한 가게 주차장에

차들이 가득 찼다. 가게 안으로 들어서니 사람들로 가득 찼다. 우리가 늘 앉던 자리로 들어가니 벌써 고기가 석쇠

위에 올려져 있었다. 제수씨들도 왔다.


벌써 와 있었네. 제수씨들도 오셨네

늘 앉던 자리에 앉았다.


“빨랑빨랑 오지. 조카님도 오셨네.”


셋째가 늘 앉던 자리로 돌아가고 내가 자리에 앉으면서 완전체가 되었다.


“내가 늦은 거야?”


시계를 보니 저녁 7시 정각이었다.


“정각에 왔구먼.”


“5분 일찍 와서 불을 지펴야지. 정각에 오면 늦은 거야.”


넷째가 고기를 고기를 뒤집으면 말했다.


치르르


고기가 석쇠 위에 바짝 눕기 시작했다.


“그런데 오늘은 왜 모인 거야? 뭔 일 있어?”


“그냥 보고 싶어서. 술도 한잔하고 싶어서.”


형이 술잔을 높이 들었다.

잔을 부딪히고 아무 말 없이 들이켰다.


“잘들 넘어가네. 아버지 피를 이어받아서 그런가.”


셋째가 다시 잔을 들었다.


“안주 좀 드셔가며 잡솨요.”


제수씨가 한마디 거들었다.


“하 씨 집안 따라가려니 딥니다.”


막내 제수씨도 엄살을 부렸다.


“제수씨들도 한술 하시잖아요.”


나는 빈 잔에 술을 채워주고 다시 잔을 들었다.


“위하여!”


형이 술잔을 놓고는 형 옆자리에서 까만 봉지 네 개를 들고 와서는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자, 한 앞에 하나씩 가져가.”


“뭔데?”


“땡감이다. 지난 주말에 촌에 갔다 왔다. 올해는 작년만큼 안 돼서 양이 적다. 그래도 놔두면 홍시 될 테니 무라.”


“혼자서 촌에 갔다 왔어?”


고기 담당 넷째가 석쇠를 뒤적이며 물었다.


“그럼. 혼자 가는 게 편해.”


형은 이번에는 건배도 하지 않고 소주잔을 들이켰다.

까만 봉지 안에 감이 들어 있었다.


고향집 마당에는 감나무가 있다.

광업소가 폐광되고 부모님은 사택에서 노을이 뻗치던 북쪽 함박골 마을로 이사를 가셨다. 평생 처음 자기 집을 장만한 엄마는 눈물을 흘렸다. 아버지도 흐뭇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산 밑 붉은 벽돌집이었다.

마당에는 감나무 세 그루가 있었고 솥단지를 걸 수 있는 아궁이도 있었다. 엄마는 그 아궁이에서 두부도 만들고 묵도 쑬 수 있다며 좋아하셨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지 십여 년이 지났지만 우리는 그 집을 팔지 않았다. 부모님 산소가 고향 어귀 섶밭재에 있기도 했지만 형은 늘 말했다.


“집이 있어야 촌에 자주 가지.”


우리 형제들도 말없이 동의했다.


그날도 술자리가 끝난 뒤 나란히 욱수천 징검다리를 건넜다. 달빛은 한기를 머금고 반짝거렸다. 술기운 때문인지 욱수천 밤 도랑이 조금 추웠다.


겨울이 금방이라도 문을 박차고 들어올 것 같았다.


아파트 사이 좁은 길을 따라 십여 분을 걸었다. 하얀 간판이 보였다.


늘 2차로 가는 골목식당이었다.


다행히 원탁이 비어 있었다. 우리가 빙 둘러앉자 여주인이 버선발로 뛰어나오듯 반갑게 맞았다.


“오랜만에 오셨어요.”


“지난주에 넷째랑 왔었는데.”


“사형제가 다 같이 오는 게 오랜만이잖아요. 석 달 되었나?”


여주인이 손가락을 접어가며 세는 시늉을 했다.


안주는 주문하지 않아도 알아서 나왔다.


“어떻게 형제들이 그렇게 우애가 깊어요? 난 남동생 하나 있는데 안 만난 지 십 년도 넘었어요.”


막내 제수씨가 웃었다.


“술도 하나같이 잘 먹어요. 처음 봤어요. 소주 한 박스 먹는 것 보고 기절하는 줄 알았다니까요.”


엄지손가락까지 추켜올렸다.


술이 돌면서 밤도 취해갔다.


처음부터 끝까지 잔은 건배잔이었다. 위할 것도 없이 그냥 짠, 하고 부딪혔다.


그때 바깥에서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황소처럼 일만 하셔도

살림살이 마냥 그 자리

우리 엄마 고생시키는

아버지 원망했어요……


막내가 따라 불렀다.


“그러고 보니 우리 중에는 술주정하는 사람은 없네.”


“그건 아버지를 안 닮았네.”


“생각나? 아버지 술 드시고 들어오시면 우리 무릎 꿇려놓고 했던 얘기 또 하고 또 했잖아.”


“돈도 막 주고.”


“엄마한테 다 뺏겼지만.”


웃음이 터졌다.


그러다 누군가 말했다.


“갈매기가 몇 마리나 울어야 주무셨을까?”


웃음이 멈췄다.

아버지의 18번이었다.

술만 취하면 부르시던 노래.


갈매기도 우는구나

눈물의 연평도


노래를 부르다가 뜬금없이 우리에게 물었다.


“내가 못해 준 것 있으면 말해. 말하라고.”


그리고는 다시


갈매기도 우는구나

눈물의 연평도.


엄마가 시끄럽다며 아버지 입을 손으로 막아도 기어코 끝까지 부르셨다.


“한 사십 마리는 울었을 거야.”


누군가 말했다.

아무도 웃지 않았다.

코끝이 칼날에 베인 듯 서늘해졌다.

아버지가 보고 싶었다.

어머니가 보고 싶었다.

탁자 한쪽에는 형이 고향집에서 따온 감 봉지 네 개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부모님은 없는데

해마다 감은 열린다.

도시의 밤은 깊어갔다.

그러나 아무리 깊어도

우리 어린 시절 광산촌의 밤만큼 깊지는 않았다.


밤 11시

병방 출근을 위해 작업모를 눌러쓰고 집을 나서던 아버지.

아버지 앞에 놓인 신작로는 갱만큼 어두웠다.

그리고 그 길 끝에는 밤보다 더 깊은 갱도가 있었다.


네 개의 점은 그 깊은 밤에서 나와 한 도시에서 서로를 바라보며 살고 있다. 아버지가 지독한 어둠 속에서 더듬거렸던 삶을 살지 않겠다고 환한 도시로 왔다.


이제는 수몰된 것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진 광산촌 사택

네 개의 점들은 잊지 못해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취해서 노래를 부른다.


갈매기도 우는구나

눈물의 연평도

이전 01화갈매기도 우는구나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