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매기도 우는구나 1

아버지의 술주정

by하현국

글쓰기 - 오늘도 무사히

신작로의 가로등 불빛이 좀처럼 떠오르지 못하고 땅바닥에 안개처럼 깔려 있었다.


밤 11시가 넘었는데도 아이들 아빠는 돌아오지 않았다. 갑방을 마치고도 코빼기 하나 보이지 않았다.


‘어디서 술에 취해 자빠져 자는 것 아니야?’


김 여사는 일장갑의 뒤집힌 손가락을 펴다 말고 마룻바닥에 휙 던졌다.


아들 셋은 작은 골방에서 자고 있었다. 큰아들은 야간자율학습을 한다며 아직 학교에 있었다.


‘대학이나 가려나.’


공부에 영 취미가 없는 큰아들 때문에 속이 상했다. 우리 집안에서도 첫 대학생 하나는 나와야 하는데, 누굴 닮아 공부를 못하는지 알 수 없었다.


국민학교 때 우등상을 받았던 자신을 닮았으면 공부를 제법 해야 하지 않는가.


남편은 요즘 노조 대의원인가 뭔가를 한답시고, 일을 마치기만 하면 사람들과 술을 퍼마시고 다녔다. 아들 걱정은 순전히 김 여사의 몫이었다.


생각할수록 울화통이 치밀었다.


김 여사는 동그랗게 말린 장갑 손가락을 펴다 말고 신작로로 나갔다. 광산 야산에 쌓인 폐탄이 산의 색깔을 한밤중처럼 검게 만들어놓고 있었다.


도탄교까지 걸어가 남편을 기다렸다.


‘이렇게 늦는 걸 보니 오늘도 만취가 되어 오겠구먼. 또 자는 아들들을 깨워놓고 일장연설을 하겠지.’


남편에게 새로운 술주정이 생긴 것은 몇 달 전부터였다.


그때 큰아들이 김 여사를 향해 달려왔다.


“엄마, 아버지 아직 안 왔어요?”


큰아들은 어머니를 보자마자 걱정스럽게 물었다.


“에이 씨, 아버지 오늘도 술주정하겠네.”


“오늘은 어떻게든 내가 재울 테니까 어여 들어가 밥 무라. 밥상 차려놨다.”


큰아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김 여사는 도탄교 버드나무 옆, 냇가로 내려가는 돌계단에 앉았다.


가은으로 온 지 십 년이 되었다. 여덟 살이던 큰아들은 열여덟 살이 되었고, 둘째는 열다섯, 셋째는 열셋이었다. 넷째는 가은에 와서 낳았다.


십 년 동안 살림살이는 조금도 나아지지 않고 몸만 뚱뚱해졌다. 처녀 때는 날씬했는데 이제는 드럼통이 따로 없었다.


김 여사는 자신도 모르게 노래를 흥얼거렸다.


엄마가 섬 그늘에 굴 따러 가면

아기가 혼자 남아 집을 보다가

파도가 들려주는 자장노래에

팔 베고 스르르 잠이 듭니다


김 여사가 아는 유일한 노래였다. 어디서 배웠는지는 기억나지 않았지만 가사까지 모두 외우고 있다는 것이 스스로도 신기했다.


그때 어디선가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


도탄교 건너편에서 검은 물체들이 흔들거리며 다가오고 있었다.


“갈매기도 우는구나, 눈물의 연평도…….”


남편의 목소리가 분명했다.


김 여사는 도탄교 입구로 뛰어갔다. 남편은 두 사람의 부축을 받으며 겨우 걸어오고 있었다.


“제수씨, 나오셨습니까?”


노조위원장 김 씨였다.


“아이고, 동생이 술이 너무 취해가 역에서부터 끌고 왔습니다. 야가 술이 많이 약해졌네요. 금방 취했다 아입니까.”


가로등 불빛에 노조위원장의 대머리가 번들거렸다. 남편보다 세 살이나 많았지만 그는 멀쩡해 보였다.


“제수씨, 집까지 데려다드리겠습니다.”


김 여사는 부리나케 앞장서서 집으로 향했다.


남편은 신작로가 떠나가도록 노래를 불렀다.


“갈매기도 우는구나…….”


두 사람이 남편을 방에 눕혀놓고 돌아갔다. 김 여사는 대문을 잠근 뒤 방으로 들어갔다.


남편은 어느새 안방에 고개를 떨군 채 앉아 있었다. 잠자던 아이들도 모두 깨어나 아버지 앞에 졸졸이 앉아 있었다.


큰아들은 씩씩거리며 서서 아버지를 노려보았다. 세 아들은 졸린 눈을 비비며 간신히 앉아 있었다.


“이이, 현창 아부지. 빨리 자요.”


김 여사가 소리쳤다.


“지겨워, 지겨워!”


그러나 남편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야, 니들! 내가 못 해준 거 뭐 있어? 공부시켜주지, 밥 먹여주지. 내가 못 한 것 있으면 말해봐!”


아이들은 아무 말 없이 눈만 비볐다. 그저 아버지의 연설이 언제 끝날지만 기다리고 있었다.


“빨리 주무시소. 아들도 얼른 자야 내일 학교 가지요.”


“맞다, 학교 가야지. 내가 학교 다 보내주는데 불만 있어? 없지? 내가 못 해준 거 있어, 없어?”


남편은 갑자기 주머니를 뒤지더니 꼬깃꼬깃한 돈을 꺼내 아이들의 손에 쥐여주었다.


첫째에게는 오천 원, 둘째에게는 이천 원, 셋째에게는 천 원, 넷째에게는 오백 원을 주었다.


“맛있는 것 사 묵어라. 아버지 대단하지?”


남편은 큰 소리로 웃더니 다시 노래를 불렀다.


“갈매기도 우는구나……

눈물의 연평도…….”


그렇게 한 시간쯤 지나자 남편은 방바닥에 쓰러져 잠들었다.


사택마을도 비로소 조용해졌다.


이따금 개 짖는 소리와 어디선가 부부 싸움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누구도 시끄럽다고 항의하지 않았다.


차라리 시끄러운 편이 낫다고 김 여사는 생각했다. 사람 사는 소리마저 들리지 않으면 이곳은 정말 갱도보다 더 깊고 캄캄한 마을이 될 것 같았다.


강원도 산골짜기가 싫다는 남편이 남쪽으로 가자고 했을 때, 김 여사는 좋다고 따라나섰다.


그때는 몰랐다.


그곳이 산골보다 더 깊은 갱도 같은 광산촌일 줄은.


아이들은 이내 잠들었다.


김 여사는 찬장에서 먹다 남은 소주병을 꺼내 한 모금 마셨다. 소주는 쓰고 목구멍은 뜨거웠다.


‘이런 것을 왜 먹지?’


남편이 이해되지 않았다.


그런데 한 모금 마시고 나니 조금은 기분이 풀리는 것 같았다. 잠도 잘 올 것 같았다.


‘이러다 나도 알코올 중독 되는 것 아니야?’


피식 웃음이 나왔다.


김 여사는 소주병을 비밀창고에 숨기듯 찬장 깊숙이 넣어두고 자리에 누웠다.


그리고 소녀처럼 두 손을 모았다.


오늘도 무사히 지나가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누구에게 하는 인사인지는

김 여사도 알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