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면장력
표면장력이란 말을 처음 들어본 것은 대학생 때였다. 당시 선배들은 꼭 술자리에서 만나면 사랑하는 만큼 술을 따르라고 했다. 그러면 실제론 그 선배를 어떻게 생각하든지 간에 술이 잔을 넘치지 않게 하면서도 가득 따라내야만 했다. 그게 당시 말하는 표면장력이었다. 사랑이 추구해야 할 임계점, 한 방울만 더하면 곧 아래로 주르르 흐를 것만 같은 그 아슬아슬함이 그 시절 추구하던 사랑의 방식이었던 셈이다.
아니, 과연 대학생 때 추구하던 사랑만 표면 장력이었을까. 나와 비슷한 무언가에게 넘치기 직전까지 마음을 쏟아붓고, 그 마음이 흐르지 않도록 안으로 힘껏 잡아당기는 마음을 지금까지도 가끔 사랑이라고 부를 때가 있다. 특히 아이들이나 가족을 대할 때 말이다.
최근에는 이런 일이 있었다. 어린이집에서 보내주신 사진을 보다 보니 아이가 친한 친구가 새 옷을 입고 서 있는 게 눈에 띄었다. 그러자 평소엔 아무 신경도 안 쓰이던 우리 아이의 옷차림이 갑자기 너무 후줄근해 보였다. 우리 부부는 평소 중고 장난감도 애용하고, 옷도 지인이 물려주시는 걸 감사하게 입곤 했다. 하지만 그날은 아니었다.
그래서 충동적으로 아이의 바지를 샀다. 그것도 좋은 브랜드의 바지로 여러 벌 샀다. 그런데 한 아이의 바지를 사니, 또 다른 아이가 마음에 걸리는 게 아닌가. 결국 나는 아이들의 옷을 사는 데 꽤 큰 지출을 하고 말았다.
문제는 그 이후였다. 아이들의 옷장이 비좁아진 것이다. 게다가 어떤 옷들은 아이의 체형과 맞지 않거나 아이가 싫어해 반품을 해야 하기도 했다. 특히 해외 브랜드의 옷은 비싸기도 하고 반품하기도 어려웠기에 아이에게 반 강제로 입히려고 시도하기도 했었는데, 그럴 때마다 아이는 더욱 완강히 거부하는 바람에 난감했다.
"이거 한번 입어봐. 정말 멋지잖아. 여기, 이런 색깔도 있고..."
"싫어! 안 입을래! (자주 즐겨 입던 바지를 가리키며) 나 이거 입을래."
"안돼, 오늘은 이거 입어. 아니면 벗고 갈 거야?"
"싫어. 오늘 이거 입을래!"
결국 찰나의 감정 때문에 나는 아이와 꽤 오래 실랑이를 벌였다. 겨우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자바카라감이 몰려왔다. 물려 입었든, 뭐든 아이들이 즐겁게 뛰어놀 수 있게 입히기로 다짐했으면서 왜 싸웠을까. 아이에게 멋지고 비싼 옷을 입히려던 마음도, 어떤 면에선 사랑이라고 포장할 수 있었겠지만, 실은 그냥 내가 마음 편하기 위해 쏟아부은 애정이었다.
게다가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내가 신경 썼던 것은 옷 자체가 아니었다. 사실 그날 아이는 그렇게 낡은 옷을 입고 있지도 않았다. 다만 우리 아이가 사진 속에서, 모두가 아는 유명 브랜드의 옷을 입은 다른 아이와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을 보자 아이 티셔츠에 난 주름이 유독 커 보였던 것 같다. 혹시 우리 아이만 부족해 보이면 어쩌나, 다른 사람 눈에는 어떻게 비칠까 하는 생각도 스쳐 지나갔다. 한마디로 누군가와 비교되는 순간 갑자기 부족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사랑한다고 생각했지만, 그 마음 한구석에는 아이를 위한 마음뿐 아니라 부모인 나 자신이 평가받고 싶지 않은 마음도 섞여 있었는지 모른다.
맹목적으로 마음을 쏟는 게 꼭 가족들에게만 한정될까. 하루는 회사 상사가 내게 뭘 부탁한 적이 있었다. 자기 업무가 조금 늦어질 것 같으니 회사에 자원봉사하러 온 분들을 5분 정도만 기다리도록 안내해 달라는 부탁이었다. 나는 붕 뜬 5분 동안 그분들이 입고 있던 조끼를 모두 걷어 일일이 옷걸이에 걸었다. 그렇게 하면 상사도 일이 좀 더 수월해지고, 자원봉사자들도 좀 더 빨리 해산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원래 부탁받은 일 이상을 해두면 안심하는 편이어서 그렇게 움직였던 것 같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먼저 움직이는 것이 성실한 거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자원봉사자들은 그 조끼를 입고 마무리 사진까지 찍어야지만 봉사활동이 전부 마무리되는 거였다. 한마디로 상사가 시키지도 않은 일을, 나 혼자 오버해서 해버린 꼴이었다. 결국 그 봉사자들은 다시 내가 하나하나 걸어낸 옷을 옷장에서 꺼내 입은 뒤 사진을 찍어야 했다. 봉사활동도 조금 늦게 마무리하게 된 것 같았다. 마음만 앞서 일방적으로 신경 쓰는 일이 결코 배려가 될 수 없음을 깨달았던 시간이다.
물론 여전히, 대부분의 일에서 마음이 흘러넘칠 정도로 쏟아붓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사랑에 관해서는 여전히 모자란 것보다 넘치는 게 낫다고 믿기 때문이다.
문제는 마음의 양이 아니라 방향이다. 아이에게 옷을 사주려 했던 것도, 봉사자들의 조끼를 정리했던 것도 결국 누군가를 위한다는 생각에서 출발했지만, 그 과정에서 정작 상대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놓쳤다. 어쨌든 나는 애정이 있는 모두에게 과하게 마음을 쏟아붓는 경향이 있으므로 이것이 진짜 누굴 위한 방향인지 자주 생각하기로 다짐해 본다.
사실은 지금도 아이들 일을 하다 보면 마음이 먼저 앞설 때가 있고, 회사에서도 부탁받지 않은 일에 괜히 손을 보탰다가 머쓱해질 때가 있다. 아마 앞으로도 비슷한 실수를 반복할 것이다. 사랑이나 애정은 원래 계산기를 두드리듯 정확한 양으로 조절되는 감정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예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이제는 넘치기 전에 한 번쯤 멈춰서 생각해보려 한다는 것이다. 이 마음이 정말 상대를 향한 것인지, 아니면 내 불안을 달래기 위한 것인지 말이다.
잔을 가득 채우는 것과 잔 밖으로 흘려보내는 것은 다르다. 사랑은 마음을 더 많이 쏟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마음이 상대에게 닿는 모양을 살피는 데 있다. 어쩌면 표면장력이란 넘치지 않을 때까지 채우는 기술이 아니라, 상대에게 필요한 만큼을 헤아리는 일에 더 가까운 것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