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A 시간에 손을 들었다
전업주부의 일은 운동에 비유하자면 '저중량 고반복 운동'이다. 회사에서처럼 가끔 고중량 운동이 주어지지는 않지만, 계속 사소하게 아이를 계속 신경 써야 하고, 크지 않은 작은 집안 일들을 하루도 빠짐없이 해야 한다. 집 정리, 빨래, 설거지, 반찬 준비 같은 것들. 집안일은 해도 티가 안나고, 안하면 바로 티가 난다는 명언이 그래서 나왔나보다.
전업주부라는 직업을 자발적으로 선택하고 첫 1년은 이러한 새로운 삶의 루틴에 맞춰야만 했다. 첫 몇 주는 참 편했다. 스스로 시간을 선택해서 지낼 수 있었고, 아무것도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자유. 그때만 해도 하나였던 아이를 어린이집에만 보내고 나면 그 이후의 시간은 내가 어떻게 시간을 조합해서 써도 아무도 신경쓰지 않아도 됐다. 청소와 반찬준비의 순서를 반대로 해도 내 마음이다. '이렇게 좋은 건가, 주부란 것은?'
그 자유가 주는 해방감은 한 달을 채우지 못했다. 내가 해야하는 일들은 작게, 작게, 계속 이어졌다. 하루만 어질러진 거실 정리를 해놓지 않으면, 내 눈을 뜨고 보고 싶지 않을 정도로 엉망인 상태가 된다. 누가 오면 말은 못하고 '아....' 이럴 것만 같은 상태.
그래서 각 잡고 냉장고 안을 다 꺼내서 오래된 반찬을 정리하고, 방 한켠에 오랫동안 쌓아뒀던 먼지쌓인 물건들을 당근하고 버리고 제자리에 놓다보면 하루가 가기도 한다. 와이프는 내가 말하지 전까지 전혀 알아채지 못한다. 슬프게도. 하나하나 "여기 치웠어." "여기봐봐. 완전 바뀌었지?" 라고 얘기하는 건 쿨하지 못하다.
아빠가 주양육자가 되는 것 또한 생각보다 가시밭길이었다. '너, 아빠가 애 보는거, 그거 맞는거야?'라고 느끼게 만드는 일들은 일상다반사다. 분명 "주양육자가 아빠입니다. 무슨 일 있으면 아빠에게로 연락해주세요."라고 몇번을 강조했지만, 어린이집에 무슨 일이 있으면 어린이집이 아닌 와이프에게 전화를 받는다. "여보, 어린이집에서 연락왔어. 애 열난대."
선생님에게 말씀드렸다. "저, 혹시 애한테 무슨 일 있으면 저한테 전화주세요." "아 맞다~ 전에도 말씀주셨었는데 까먹었네요. 죄송해요." 그러고 몇달 뒤 어린이집 상담 일정을 잡아야 한다고 연락이 왔다. 물론 이번에도 와이프를 통해 연락을 받는다. 당연히 엄마한테 연락하는 게 디폴트값인 레버를 억지로 나 하나만 반대로 돌려놓으니 생기는 에러라는 걸, 이해는 한다.
육아하다 보면 사소한 생활정보들을 물을 데도 없다. 어디 소아과가 좋은지, 학원은 어디가 괜찮은지, 아이들 시간 보내기 좋은 놀이터는 어디인지, 이런 사소한 정보들은 모두 맘카페에 있다. 맘카페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남성회원 출입금지 영역이다. 어디 전업주부 카페는 없나 찾아보지만, 쓸 데 없는 일이다.
전업주부는 내 아이만 잘 보면 되는 일이 아니었다. 집 안으로는 내 아이를 바라보고, 동시에 집안일도 하며, 밖으로는 슬롯 속에서 적절한 소통도 이루어져야 하는 일이었다. 그 모든 과정에서, 엄마들의 직업이라 당연한 것들은 아빠 주양육자에게는 모든게 새롭고, 넘어서야 하는 벽이었다. 아주 작은 것들부터, 모두 두들겨보고 건너야 하는.
거기에 전업주부로 넘어오며, 나는 돈을 쓰기만 하는 존재였다. 온라인 게임인으로 벌면서 쓰는 것과, 버는 것이 제로인 전업주부의 쓰는 것은 다른 차원의 위기감이다. 전업주부의 돌봄노동의 가치가 얼마고... 이런 건 전혀 위로가 되지 않는다. 슬롯 어디에서도 환산되지 않는 노동의 가치는 정신승리 밖에 되지 않는다.
그렇게 전업을 시작하고 하루하루 나는 줄어들었다. 나라는 인간의 무가치함에 치를 떨었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그 좋았던 동네 카페에 가는 즐거움도, 돈을 쓴다고 생각하니 그 횟수가 줄어들었다. 아는 사람도 없는 동네에서, 나는 고립된 섬이었다. 육아 우울증이었다.
그런 상태에서 아이를 잘 돌보는 건지도 알 수 없었다. 해줘야 하는 기본적인 건 잘 해주고 있었다. 하지만 그 때의 아이에게 필요한 것들을 주고 있는지, 아이가 잘 크고 있는지, 다른 아이들은 어떤지, 모든 게 뿌옇게만 보였다. 좋은 아빠가 될 수 있다고 믿었는데, 지금의 나는 어디로 걷고 있는지도 몰랐다. 육아는 엄마가 하는게 맞았던 게 아닐까.
와이프에게 매일 죽는 소리를 했다. "나, 너무 외롭고, 힘들어." 한 두번은 최선을 다해 들어주던 와이프도, 그 횟수와 빈도가 늘어나자 점점 지쳐갔다. 어느날은 내게 "여보, 나도 일하기 싫어. 내가 어떻게 해줄까?"라고 말했다. 맞는 말이다. 누가 어떻게 해줄 수 있는건 아니었지만, 그 말은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말이 아니었다.
달리기도 하고, 탁구도 해봤다. 몸을 쓰는 건 좋았지만, 내가 필요한 건 대화였다. 온전한 대화가 되는 상대와,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것들에 대해서 얘기를 나누고, 공감대를 느끼고, 그 안에서 소속감을 느끼고 싶었다. 전업육아를 하는 내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고, 나도 너와 같은 이유로 힘들다는 그 말 한마디가 듣고 싶었다.
마침 내가 살고 있는 지역에 '남성육아 지원사업' 참가인원을 모집한다는 공고가 떴다. 남성의 육아 참여 및 가족친화 문화 확산을 위해 공공에서 진행하는 사업이었다. 저 사업에 참가하면,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아빠들을 만나서 함께 고민을 나누고 위로를 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름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합격했다.
1년동안 하는 행사에 대한 개략적인 안내, 그리고 놀이 바카라자가 집으로 왔다. '아이들과 이런 놀이를 해보면서 아이와의 유대감을 쌓아보세요.' 다시 모집 공고의 사업 의도를 읽어봤다. '남성 육아 참여 및 가족 친화문화 확산'. 아, 이거는 나 같은 주양육자를 위한 프로그램이 아니었다. 이미 아이와의 유대감은 충분했다.
아이들을 어떻게 키우면 좋을지 전문강사와 함께 하는 온라인 집단상담도 참가했다. 강사님은 서두에 "아버님들, 보조양육자를 넘어서셔야 해요." 라고 상담의 서두를 열었다. 아빠들도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랑 재밌게 놀아줄지, 짧은 시간을 집중해서 놀아주는 방법을 질문하고 있었다. 조용히 줌 접속을 종료했다.
전업주부 아빠를 위한 세상은 없었다. 아빠들의 주양육자로서의 어려움을 이해해주고 손내밀어 주는 곳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유기견처럼 차들만 지나가면 나는 혹시 나를 데리고 가줄까 꼬리를 흔들어본다. 그 어디에서도 이해받지 못했다. 내가 틀렸다. 전업주부를 하겠다고 한 나의 선택은 틀린 선택이었다.
모든 게 막힌것만 같던 그 때, 그 사업에서 '좋은 아빠를 향한 한 걸음 내딛기'라는 주제의 특강이 열렸다. 강연자는 TV에서 봤던 적이 있는 유명한 박사분이셨다. '이번에도 똑같게 실망하고 올거야'라는 체념의 한 끝자락엔, 마지막 하나의 지푸라기라도 잡아보고 싶은 한 아빠가 있었다. 그래도 전문가시니까 뭐 하나라도 건져오겠지, 하는 희망으로, 강연장으로 향했다.
역시나 강연은 '보조양육자로서의 바람직한 역할'에 대한 내용이었다. '오늘도 괜히 왔네. 난 틀렸어.' 그러다가 Q&A 시간이 왔다. "박사님 시간관계상 질문은 3개만 받겠습니다." 나는 다른 사람들의 눈이 쏠리는 게 싫어서 평소에 질문을 잘 하지 못한다. 그런데, 그날은 물어보지 않으면 안될 것 같았다. 꼭 여쭤보고 싶었다. 눈을 떨구고 손을 번쩍 들고, 덜덜 떨리는 손으로 마이크를 받았다.
"박사님, 저는 보조 양육자로서의 아빠가 아닌, 전업주부로... 주양육자로 아이를 키우는 아빠입니다. 아빠가 육아를 전담하다 보니 아무래도 잘 못해주는 것 같고, 부족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아빠가 주양육자일 때는 어떤 마음을 가지고 육아를 하면 좋을까요?"
박사님은 내게 답해주셨다.
"아빠가 주부로 있다는 건 틀린게 아니라, 다른 겁니다. 특별하다고 생각해요. 다른 친구들이 엄마와 할 수 없는 것들은 질문자님의 아이들은 아빠로서 해줄 수 있고, 그것들은 다른 아이들은 받을 수 없는 겁니다. 질문자님께서 스스로 위축되지 마시고 특별한 걸 해주고 있다고 생각하세요."
정신없이 강연이 끝나자마자 차로 달려갔다. 차 안에서 서럽게 펑펑 울었다. 누군가 지나가면서 봤으면 무슨 큰 일이라도 있는 줄 알았을 거다. 나는 틀리지 않았다. 걷는 이가 없는 낯선 길에 서 있을 뿐이다. 그 박사님의 대답은, 따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