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는 삼국을 통일하였다. 많은 사람들은 그 순간을 우리 민족이 하나가 된 시작으로 기억한다.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한다. 신라는 역사상 처음으로 고구려와 백제, 그리고 신라를 하나의 정치 질서 안으로 묶어 낸 나라였다. 그러나 경주를 떠나면서 나는 다시 생각에 잠긴다.
그때 우리는 과연 어떤 의미에서 하나였을까.
통일은 이루어졌지만 사람들의 기억은 하루아침에 하나가 되지 않는다. 백제 사람들은 백제의 문화를 기억하고 있었고, 고구려 사람들은 고구려의 전통을 잊지 않았다. 오랫동안 이어져 온 생활 방식과 문화, 그리고 지역의 정체성은 하루아침에 사라질 수 없었을 것이다.
통일신라의 250년은,
서로 다른 사람들이 처음으로 하나의 정치 질서 안에서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워 나간 시간이었다.
신라는 작은 사로국에서 출발하였다. 그러나 성장하는 과정에서 주변의 다양한 세력을 받아들이며 국가를 키워 갔다.
대표적인 사례가 가야였다.
신라는 가야를 병합했지만 가야를 역사에서 지워 버리지는 않았다. 가야의 왕족과 귀족은 신라 슬롯 안으로 편입되었고, 그 후손 가운데는 김유신과 같은 인물이 등장하여 삼국통일의 중심에 섰다.
나는 이 장면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정복한 세력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공동체 안으로 받아들이는 것.
이것이 신라가 보여 준 통합의 방식이었다.
삼국통일 이후에도 이러한 흐름은 이어졌다.
백제와 고구려의 유민들은 점차 신라 슬롯의 구성원이 되었고, 나당전쟁에서는 많은 이들이 함께 당나라에 맞서 싸웠다. 매소성과 기벌포에서 거둔 승리는 신라만의 승리가 아니라, 하나의 땅을 함께 지키려 했던 사람들이 만들어 낸 승리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통일신라의 250년은 완성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역사는 다시 움직였다.
신라는 쇠퇴하였고 후백제와 후고구려가 등장하였다. 후삼국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후삼국은 통일이 무너진 시대가 아니라, 어떤 통합이 진정한 통합인가를 다시 묻는 시대였다.
그리고 그 질문에 답한 사람이 왕건이었다.
왕건은 후고구려를 기반으로 나라를 세웠지만, 단지 고구려만의 나라를 만들려고 하지 않았다.
그는 나라의 이름을 고려라 하였다.
그 이름에는 고구려를 계승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었지만, 동시에 신라와 백제의 역사까지 함께 품으려는 더 큰 뜻도 담겨 있었다.
경순왕은 스스로 왕건에게 나라를 넘겼고, 왕건은 그를 최고의 예우로 맞이하였다. 후백제의 백성들 역시 새로운 고려의 백성이 되었다.
여기에서도 나는 신라와 같은 하나의 흐름을 본다.
상대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더 큰 공동체 안으로 받아들이는 것.
신라가 시작한 통합의 길을 고려는 더욱 넓고 깊게 이어 갔다.
고려는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스스로 고구려의 계승국임을 선언하고 평양을 서경으로 삼아 북방의 역사까지 계승하려 하였다. 거란과의 외교에서 서희는 고려가 고구려를 계승한 나라임을 당당하게 주장하였고, 고려는 동아시아 속에서 자신만의 역사적 정통성을 확립해 나갔다.
그리고 12세기, 김부식은 삼국사기를 편찬하였다.
그는 신라 사람도 아니었고, 고구려 사람도 아니었으며, 백제 사람도 아니었다.
그는 고려 사람이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고구려와 백제, 신라의 역사를 하나의 역사로 바라볼 수 있었다.
나는 이것이 고려가 남긴 가장 큰 유산이라고 생각한다.
신라는 하나의 나라를 만들었다.
고려는 그 나라를 하나의 역사로 만들었다.
이후에도 고려는 거란과의 전쟁, 대몽 항쟁, 왜구의 침입이라는 수많은 시련을 겪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러한 위기 속에서 사람들은 더욱 강하게 하나의 공동체라는 의식을 키워 갔다.
고구려 사람도,
백제 사람도,
신라 사람도 아니라,
모두가 고려 사람이 되어 갔다.
경주에서 시작한 나의 여행은 고려에서 하나의 답을 찾게 되었다.
우리는 처음부터 하나였던 민족이 아니었다.
서로 다른 뿌리를 가진 사람들이 이 땅에서 만나고,
갈등하고,
화해하며,
마침내 하나의 공동체를 만들어 왔다.
신라는 그 첫걸음을 내디뎠다.
고려는 그 공동체를 하나의 역사로 완성하였다.
그리고 그 역사는 조선으로 이어졌고, 오늘의 대한민국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래서 내가 이번 여행에서 찾은 한국인의 DNA는 혈통의 순수함이 아니었다.
서로 다른 사람을 받아들이고, 서로 다른 역사를 하나의 공동체로 만들어 가는 힘.
나는 그것이 천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이어져 온 한국인의 DNA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