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DNA, 첫 번째 이름은 왜 '선비'인가

by목인 mokin

나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조선왕조실록의 독보적 가치를 알게 되면서 가슴이 벅차올랐다. 그리고 조선왕조실록이 우연이 아닌 필연이었으며 우리 민족의 정신과 지혜가 그대로 녹아있는, 그리고 누구 한 사람의 의지가 담긴 작품이 아니라 한국인의 DNA가 총 결집된 그리고 조화와 균형, 절제와 포용의 결과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조선왕조실록이 하나의 결과물이라면, 그것의 뿌리는 바로 종묘제례악이었다. 종묘제례악은 이름 그대로 예악이며, 이때 예(禮)는 질서이며, 악(樂)은 조화임을 알 수 있었다. 처음에는 이들이 서로 다른 이야기처럼 보였다. 그러나 긴 여정을 마치고 뒤돌아보니 그 모든 이야기의 중심에는 하나의 공통된 정신이 있었다.


바로 선비이다.
여기서 말하는 선비는 조선 시대의 양반 신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벼슬을 했느냐 하지 않았느냐를 말하는 것도 아니다. 권력을 가진 지배계층을 뜻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선비는 하나의 인격이며 정신이다. 학문을 정진하고 심신을 수양하고, 예(禮)로 사람을 대하며, 불의 앞에서는 침묵하지 않고, 나라가 위기에 처하면 몸을 던질 줄 아는 사람. 붓을 들 때는 진실을 기록하고, 칼을 들어야 할 때는 백성을 위해 일어서는 사람.
나는 이것이 선비라고 생각한다.

선비는 어느 날 갑자기 조선에서 등장한 존재가 아니다.
그 뿌리는 신라의 화랑에게서도 찾을 수 있다. 인격을 수양하고 공동체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며 예와 무를 함께 익혔던 화랑의 정신은 시대를 거치며 더욱 성숙해졌고, 고려를 지나 조선에 이르러 선비라는 이름으로 꽃피었다.


우리가 앞에서 살펴본 문화유산들도 모두 이 정신과 깊이 연결되어 있다.
조선왕조실록은 권력보다 진실을 우선한 선비의 기록이었다. 종묘제례악은 예와 악을 통해 사람과 공동체의 품격을 세우려 했던 선비 문화의 결정체였다.


신라의 포용과 고려의 통합 역시 힘으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사람을 품으려는 정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결국 우리가 역사 속에서 만났던 수많은 장면들은 모두 하나의 정신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선비는 학문만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백성을 사랑하는 애민의 마음을 품었고, 임금에게도 잘못이 있으면 직언했다. 억울한 백성이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공론의 길을 만들었으며, 나라가 위기에 처하면 의병이 되어 가장 먼저 일어났다. 그래서 선비정신 안에는 의(義)가 있고, 리(理)가 있으며, 예(禮)가 있고, 공동체를 위한 바카라임이 있었다. 우리가 한국인의 DNA라고 말하는 많은 요소들이 사실은 이 선비정신 안에서 서로 연결되어 있다.


물론 모든 선비가 이상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역사 속에는 권력에 기대어 백성을 외면한 양반도 있었고, 자신의 이익만 좇았던 관료도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선비정신을 실천하지 못한 사람들의 문제였다. 그리고 우리는 그들을 선비라 부르지도 않았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특정 계층이 아니라, 그들이 추구했던 가장 높은 이상이다.


그래서 나는 한국인의 DNA를 이야기하면서 첫 번째로 선비로 선택했다.
선비는 단순한 직업도, 계급도, 신분도 아니다. 수천 년 동안 우리 역사 속에서 이어져 온 정신의 이름이며, 한국인의 문화와 가치관을 하나로 묶는 가장 큰 뿌리이다.


그리고 이제부터 살펴볼 나머지 여섯 가지 DNA 역시, 모두 이 선비정신과 연결되어 있었다. 의와 리, 우리, 격쟁, 정, 한, 그리고 흥과 끼. 이들은 서로 떨어져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큰 나무에서 뻗어 나온 가지들이었다.


그 DNA 나무의 이름을 나는 선비정신이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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