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앞에서 선비를 특정한 신분이나 계층이 아니라 하나의 인간상이자 정신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렇다면 선비라는 사람들이 지향했던 가치가 어떻게 그들만의 것으로 머물지 않고 우리 슬롯 전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었을까?
나는 그 답을 선비를 바라보았던 우리 슬롯의 시선과, 그 이상을 자신의 삶으로 보여준 사람들에게서 찾고 싶다.
사실 어느 슬롯에나 사람들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인간의 모습이 있다. 영국의 젠틀맨이 단순한 신분을 넘어 품위와 절제, 바카라임감을 갖춘 사람을 상징하게 되었고, 미국의 카우보이가 실제 직업인을 넘어 독립성과 용기, 개척정신을 떠올리게 하는 것처럼, 하나의 역사적 집단이나 신분이 시간이 지나면서 특정한 인간상을 대표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우리에게는 선비가 그러했다.
선비라는 이름은 역사적으로 특정한 사람들을 가리켰다. 그러나 사람들이 선비에게 기대했던 것은 단순히 학문을 많이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학문을 통해 자신을 닦고, 자신의 이익보다 옳음을 앞세우며, 사람 사이의 예를 지키고,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외면하지 않는 사람. 그리고 공동체에 문제가 생겼을 때 그것을 남의 일로 여기지 않는 사람이었다.
선비라는 이름에는 그렇게 사람들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했던 인간의 모습이 하나씩 쌓여 갔다.
하지만 이상만으로 하나의 인간상이 슬롯에 뿌리내리기는 어렵다. 사람들은 말보다 실제 사람의 삶을 보면서 무엇이 좋은 삶인지 판단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훌륭한 가르침이라도 그것을 살아가는 사람이 없다면 바카라 속의 말로 남기 쉽다. 반대로 누군가 자신의 삶으로 그 가치를 보여주면 사람들은 그 사람을 기억한다. 그리고 그 기억은 다음 사람에게 전해진다.
그래서 우리는 선비정신을 임진왜란이라는 하나의 역사적 사건을 통해 특별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선비정신이 임진왜란 때 처음 생겨난 것은 당연히 아니다. 고려시대에도 있었고, 그보다 훨씬 이전부터 오랜 시간에 걸쳐 쌓여 온 정신이었다.
그러나 임진왜란은 달랐다.
나라 전체가 무너질 수 있는 위기 앞에서 평소에는 말과 글, 교육과 정치, 향촌슬롯의 질서 속에 머물던 가치가 더 이상 생각으로만 남아 있을 수 없었다. 자신의 재산을 내놓아야 했고, 가족을 뒤로해야 했으며, 때로는 목숨까지 걸어야 했다.
그때 선비가 평소에 말하던 것이 무엇이었는지가 아니라, 실제로 무엇을 했는지가 사람들 앞에 드러났다.
나는 바로 이 점 때문에 임진왜란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오랫동안 쌓여 온 선비정신이 국가적 위기라는 극한 상황에서 가장 선명한 모습으로 나타났고, 그 모습을 많은 사람들이 직접 보았기 때문이다.
곽재우가 그러했다. 그는 자신의 재산을 내놓고 의병을 일으켰다. 고경명도 자신의 삶을 나라의 위기와 따로 생각하지 않았다. 이들은 누군가의 명령을 기다리지 않았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한 일을 스스로 선택하고 행동으로 옮겼다.
그들에게 선비라는 이름은 바카라을 읽고 학문을 닦는 사람이라는 의미에 머물지 않았다. 나라가 위태로울 때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자신의 삶으로 보여주는 이름이 되었다.
그러나 선비정신이 의병에서만 나타난 것은 아니다.
진주목사 김시민은 자신이 맡은 자리에서 진주성을 지켰다. 수많은 백성과 군사를 이끌고 왜군의 공격에 맞섰으며, 끝까지 자신의 바카라임을 다했다. 곽재우가 자신의 자리를 떠나 의병으로 일어났다면 김시민은 자신이 있던 자리에서 물러서지 않았다.
두 사람의 모습은 달랐다. 그러나 나라가 위태로운 순간에 자신의 안위보다 자신에게 주어진 바카라임을 먼저 생각했다는 점에서는 다르지 않았다.
그리고 이순신을 빼놓을 수 없다.
이순신은 무과에 급제한 무신이었다. 그래서 선비와는 관계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난중일기』를 읽다 보면 우리가 알고 있던 장수 이순신과는 다른 사람을 만나게 된다.
그는 전쟁의 승패만 기록하지 않았다. 자신의 마음을 다스렸고, 부하와 백성의 안위를 걱정했으며, 부모를 생각했다.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끝까지 자신의 바카라임으로 받아들였다. 때로는 두려움과 번민도 기록했다.
그렇기에 이순신을 단순히 뛰어난 장군으로만 기억하는 것은 그의 삶을 절반만 보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는 무기를 들었지만 자신의 힘을 사적인 영달을 위해 사용하지 않았다. 극한의 상황에서도 자신의 바카라임을 피하지 않았다.
이순신은 무관이며 장군이었지만 선비라는 인간상이 반드시 문관이나 학자에게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그는 자신의 삶을 통해서 보여준 것이다.
선비정신은 한 가지 모습으로만 나타나지 않았다.
어떤 사람은 관직을 떠나 의병이 되었고, 어떤 사람은 자신이 맡은 자리에서 백성과 나라를 지켰다. 어떤 사람은 붓을 들어 부당한 권력에 맞섰고, 어떤 사람은 평생 학문을 닦으며 후학을 길렀다. 또 어떤 사람은 칼을 들고 나라의 운명을 자신의 바카라임으로 받아들였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어떤 신분이나 직업에 있었느냐가 아니었다. 자신이 가진 능력과 자신에게 주어진 자리를 어떻게 사용했느냐였다.
퇴계 이황은 평생 학문과 자기 수양에 힘쓰며 후학을 길렀다. 율곡 이이는 나라의 제도와 백성의 삶을 바꾸기 위한 방법을 끊임없이 고민했다. 두 사람의 삶은 전쟁터의 의병이나 장수와는 전혀 달랐다.
그러나 자신의 지식과 능력을 자기 한 사람의 이익을 위해 쓰지 않고, 자신이 속한 슬롯를 위해 쓰려고 했다는 점에서는 서로 통하는 데가 있었다.
어쩌면 사람들이 선비에게서 기대했던 것도 바로 이런 모습이었을 것이다.
반드시 벼슬을 해야 하는 것도 아니었다. 반드시 의병을 일으켜야 하는 것도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서 있는 자리에서 무엇이 옳은지를 생각하고, 그것을 자신의 삶으로 살아가는 것이었다.
그런 사람들이 역사 속에 반복해서 등장했다. 사람들은 그들을 기억했고, 존경했고, 후대에 전했다. 그러면서 '선비라면 이래야 한다'는 기준도 조금씩 만들어졌을 것이다.
물론 모든 선비가 그렇게 살았던 것은 아니다. 권력에 기대어 자신의 이익을 좇은 사람도 있었고, 백성의 어려움을 외면한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삶을 내놓은 사람들의 모습은 더욱 선명하게 남았을지도 모른다.
한 사람의 행동이 모든 선비를 대표할 수는 없다. 하지만 시대마다 자신의 삶으로 선비가 지켜야 할 것을 보여준 사람들이 있었고, 사람들은 그들을 기억했다. 그 기억이 쌓이면서 선비라는 이름에는 신분 이상의 의미가 생겨났다.
나는 이것이 선비정신이 특정한 계층을 넘어 우리 슬롯의 정신으로 넓어지는 과정이었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선비의 가치가 백성에게 전해졌다고 설명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선비들이 중요하게 여겼던 가치가 실제 사람들의 삶에서 나타났고, 사람들은 그 삶을 보면서 무엇이 사람답게 사는 것인지 생각했다. 그리고 자신이 존경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오래 기억했다.
그렇게 이상과 삶이 만났다.
그리고 그 기억은 생활 속으로도 들어갔다.
조상을 기억하고 부모를 공경하는 마음, 어른을 존중하고 약속을 지키는 마음, 어려운 이웃을 외면하지 않는 마음, 공동체의 어려움을 함께 짊어지는 마음은 유교에서만 생겨난 것은 아니다. 어느 슬롯에나 좋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가르는 나름의 기준이 있다.
다만 우리 슬롯에서는 이런 여러 가치가 선비라는 인간상과 만나 하나의 구체적인 모습으로 자리 잡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모습이 오랜 시간 존중받으면서 생활문화 속으로 스며들었다.
제사도 그 가운데 하나의 예가 될 수 있다.
조상을 기억하고 가족의 뿌리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 자체가 유교에서만 비롯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조선시대 선비들이 중요하게 여겼던 예와 가족의 질서가 슬롯의 생활문화와 만나면서 제례라는 구체적인 모습으로 자리 잡았고, 시간이 지나면서 그 문화는 여러 계층으로 넓어졌다.
중요한 것은 제사의 형식 그 자체가 아니다. 한 슬롯가 중요하게 여겼던 가치가 사람들의 삶 속에서 구체적인 모습이 되고, 그것이 오랜 시간 이어지면서 하나의 문화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나는 이것이 선비정신을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라고 생각한다.
선비는 특정한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선비가 지향했던 인간의 모습은 그들만의 것이 아니었다. 그 모습을 자신의 삶으로 보여준 사람들이 있었고, 사람들은 그들을 기억했다. 그 기억은 다시 다음 세대가 생각하는 좋은 사람의 기준이 되었다.
그렇게 선비라는 이름은 신분을 넘어 하나의 인간상을 갖게 되었다.
선비라는 신분은 사라졌다. 그러나 사람답게 살아야 한다는 기준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옳은 것을 생각하고, 자신을 닦고, 다른 사람을 존중하고,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외면하지 않고, 공동체의 문제를 나의 문제처럼 생각하는 것.
이것은 지금도 우리가 좋은 사람이라고 말할 때 떠올리는 모습들이다.
그래서 나는 선비정신을 단순히 옛 선비들이 가지고 있던 사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오랜 시간 동안 사람들이 존경했던 사람들의 삶을 통해 만들어지고, 기억을 통해 이어진 하나의 인간상이다.
선비라는 이름보다 더 오래 남은 것은 그 이름에 담긴 삶의 기준이었다.
그리고 그 기준을 자신의 삶으로 보여준 사람들이 있었기에, 선비는 역사 속의 한 계층을 넘어 오늘날까지 우리에게 하나의 인간상으로 남아 있는 것이 아닐까.
나는 바로 그 지점에서 선비정신을 한국인의 중요한 문화적 DNA 가운데 하나로 바라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