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세요 거기 누구 없나요

이제는 언제라도 말하리라.

by김광희

세상이 잠들었을 새벽 3시. 습한 기운이 외벽을 타고 들어왔다. 가끔 들리던 자동차 소리도 끊긴 시간인데 부지런도 하지. 나는 자느라 웅크렸던 팔다리를 쭉 폈다. 성능 좋은 딱풀로 붙여놓은 듯 떨어지지 않은 눈을 힘들게 떴다. 예약해 둔 시간이 끝나 멈춰버린 에어컨을 다시 켰다. 지구촌을 들썩거리는 월드컵 열기 때문인지 유난히도 더운 밤이다. 우리나라 선수들이 뛰지 않으니 식을 법도 한데. 여전히 뜨겁다. 거기에 내가 사위 자랑을 하느라 여기저기 흘린 꿀까지 보탰으니. 끈적거릴 수밖에. 이 눅눅한 더위를 어쩔.


시원한 바람을 뿌려대는 에어컨 덕분에 방안이 다시 뽀송해졌다. 구름 위에 누운 듯 기분 좋아진 나는 힘들게 떴던 눈을 다시 감았다. 내 머릿속 푸른 벌판을 거니는 양들을 감긴 눈으로 불렀다. ‘한 마리 두 마리 세 마리 …’ 눈부신 초원을 좋아하는 녀석들이라 쉽게 내 품 안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꿋꿋하게 손짓했다. ‘이천 아흔아홉 마리 이천백…’ 잡히지 않은 양을 애타게 부르고 있는데 안방 창이 서서히 붉은빛으로 바뀌었다. 광나게 환한 저 색깔이 아른아른하게 보이던 때도 있었는데 오늘은 너무 선명해 눈이 부셨다.


진즉에 침대를 포기할걸. 놓친 잠을 잡으려 뭉그적거리다 보니 아침이 코앞까지 와버렸다. 나는 밤새 잠겼던 목소리를 풀며 침대에서 내려왔다. 걸걸한 목소리가 집안을 울렸다. 내 눈을 피해 부엌 창가에서 오르락내리락 아침 운동 중이던 거미가 놀랐는지 창밖으로 뛰어내렸다.


10년 전 이곳으로 온 후 간간히 부엌 창에 줄을 치는 거미와 마주쳤다. 내가 다가서도 당황하지 않고 제 할 일만 한다며 이쪽저쪽 줄을 타고 다니는 거미가 싫지 않았다. 거미도 손을 뻗어 자신을 잡지 않은 내가 괜찮았는지 매일 짝을 바꿔가며 들락거렸다. 내 눈길이 미치지 않는 창밖 모서리에는 촘촘하게 거미줄도 쳤다. 그냥 뒀다. 그러다 어느 토요일 대청소를 한답시고 싱크대 위로 올라섰다. 27층 창으로 고개를 내밀고 거미줄을 바라봤다. 하얀 실 뭉텅이 몇 개가 매달려있는 창밖 풍경이 마치 영화에서나 볼 법한 흉가 같았다. 나는 대롱거리는 뭉텅이와 거미줄을 걷어버리려 손을 뻗었다. 그때 줄을 타고 내려오던 거미가 내 손등 위로 떨어졌다. 자신의 집, 새끼들을 보호하려는 어미 같았다. 나는 뻗던 손을 멈췄다. 나에게 어떤 해를 끼친 것도 없고 단지 보기 흉해서가 이유라니. 그동안 나와 같이 보낸 시간도 있는데. 나는 그대로 창문을 닫고 싱크대를 내려왔다.


그때의 나는 치열하게 살아내느라 돌멩이를 던져도 깊이를 가늠하기 힘든 우울에 휩싸여있었다. 아무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아 밖에선 더 큰소리로 웃고 떠들었다. 모든 힘을 쏟고 돌아온 집은 고요하고 적막했다. 마치 원시림 속 동굴에 들어온 듯 내 숨소리마저 울렸다. 그때 마주친 거미들이 내 모습 같았다. 가느다란 줄 하나에 매달려 움직이는 아니 발버둥 치는 …. 그래서 나는 그것들의 움직임을 짠하게 지켜보며 같이 사는 걸 허락했다. 다초점 안경을 쓴 내가 하얀 부엌 창틀의 까만 점들을 발견하기 전까지.


삶을 불신하기 때문에 늘 불행에 대해 예상하고 그 긴장을 잃지 않도록 거리를 유지하려고 애쓰는 것이 겉으로는 강하고 담담한 모습으로 나타날지 몰라도 실은 나의 가장 비겁한 면이다.


은희경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 중에서


나이 육십이 다가오자 노화가 서서히 내 몸에 자리를 잡았다. 노안도 따라왔다. 삐걱대는 몸을 따라 출석부에 써진 아이들 이름도 흐릿하게 보였다. 구름 꽉 낀 날씨 탓을 하며 전등을 켰는데도 잘 보이지 않았다. 그때부터였나 보다. 구석진 곳 티끌 하나도 찾아내던 ‘깔끔히’가 서서히 무뎌졌다. 미루고 미루다 근시 안경을 다초점으로 바꿨다. 세상에나!. 출석부 이름이 선명해졌다. 학생들 얼굴에서 여드름 자국도 쉽게 발견했다. 무뎌졌던 깔끔 병도 다시 고개를 쳐들었다. 가슴 밑바닥에 웅크리고 있던 우울감도 조금씩 옅어지며 사그라들었다. 그래도 힘 쏟을 곳이 필요했던 나는 수시로 걸레를 들었다. 집 안 구석구석 쓸고 닦다 보면 내 나이 숫자와 맞물릴 정도의 혈관들이 팔딱거렸다. 딱딱하게 굳은 감정들이 막았던 숨통이 터지면서 깊은 한숨이 땀으로 튀어나왔다.


다초점 안경을 쓴 후 마주한 부엌 창틀은 엉망이었다. 새까만 점들이 가로로 펼쳐져 있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꿈틀거렸다. 하얀 실 뭉텅이에서 벗어난 새끼 거미들이었다. 거미줄을 걷지 않은 손길이 그들의 안심 처가 되었나 보다. 아무리 내가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던 시간을 함께했었지만 봐주기가 힘들었다. 차라리 다초점 안경을 쓰지 말 것을. 그날 나는 과감하게 거미줄을 걷었다. 즐비하게 줄을 서 있는 새끼 거미들은 창밖으로 던졌다. 최선을 다해 살아남기를 바라면서. 그 후엔 창가에 거미가 보이면 즉시 밖으로 내쫓았다. 이 집 손맛이 변했다는 고약한 소문을 흘리라는 말도 덧붙였다.


새벽에 외벽을 타고 습기가 거미를 데리고 왔다. 줄을 치며 한바탕 놀 작정이던 녀석은 내 목소리에 놀라 달아났다. 바쁘게 사라지는 거미 뒷모습에 한동안 나와 함께 했던 거미들이 겹쳐 보였다. 내 가슴에 박혔던 수많은 가시를 뽑아주고 위로해 주던 녀석들. 그때의 나는 그놈의 자존심이 뭐라고. 사람들을 피해 거미에게 위로를 받았을까? 힘들면 힘들다고 사람들 속에서 소리라도 지를걸. 나는 부엌 창밖을 바라봤다. 고요와 적막을 견디면서 나와 함께 한 녀석들이 끈적한 습기와 함께 나타날 것만 같다. 창밖으로 매정하게 던졌던 내가 다정한 눈빛으로 기다리면 공포 영화 한 장면인데. 어떡하지.


그런데 거미 너 살아 있기는 하니? 그리고 만나면 서로 알아볼까?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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