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에 감아버린 눈

나도 그런 날이 있었다

by김광희

시원하고 건조한 방을 지키려 창문을 닫았다. 그래도 틈이 있는지 들어오려 발버둥 치는 달궈진 습기를 거미가 막고 있다. 창틀과 외벽 사이에 거미줄을 친 이유가 ‘당신을 위한’ 거라며 나를 바라봤다. 내가 모른 척 고개를 돌렸더니 창밖에서 나를 향해 두 다리를 흔들며 창을 두드린다. 요망한 놈. 그래도 에어컨에 덮개를 입힐 시간이 되면 너는 끝이야. 녀석 모르게 신발장에 숨겨둔 빗자루를 떠올리며 머리를 쓸어 올렸다. 나는 애교를 떠는 녀석에게 최대한 냉정하고 차가운 미소를 보냈다.


강한 햇빛에 매미가 소리치는 바깥으로 나갈 준비를 했다. 쌀쌀한 내 표정에 놀란 거미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다. 관심 없다는 표정으로 옷을 입었다. 바쁠 것 없는 퇴직자가 되면서 내 외출복이 조금씩 바뀌었다. 특히 바지 길이가 짧아졌다. 본격적으로 여름이 시작되면서 그 길이가 점점 더 짧아졌다. 60 중반을 넘어선 지금 이러면 안 되는 데 싶어 긴 바지를 입었다가 다리를 휘감는 칙칙함을 견디지 못하고 바로 갈아입었다. 거미 앞에서 지었던 표정은 창가에 남겨 두고 현관문을 열었다. 마치 초봄에서 한여름으로 순간이동한 것 같은 공기가 훅 들어왔다. 이런 날 야외 활동은 자제하라는 행정안전부 문자가 생각났다. 하지만, 나는 시원한 온라인카지노 카페로 갈 거니깐. 그리고 내 손엔 살을 태울 듯한 빛을 막아줄 암막 양산도 있고.


이혼 후 22년 동안 가장으로 버텨온 그녀가 3개월로 접어든 꿀통을 열었다. 얼마 전 사위 자랑으로 온 세상이 끈적거려 죄송했는데. 거기에 그녀까지 꿀 한 숟갈을 보탰다. 어린 시절 오일장에서 봤던 뱀을 목에 두르고 ‘애들은 가라’고 소리치던 아저씨가 생각났다. 어른들 틈에 끼여 눈만 껌벅거리던 우리들을 보내고 술술 풀었을 이야기들이 그녀 입에서 펼쳐졌다. 내게 온라인카지노를 하자더니 부아를 맛깔나게 먹여줬다. 눈길을 창밖으로 돌리는 나에게 그녀가 결정타를 날렸다. ‘새겨들어요. 아직 늦지 않았어요.’ 그래, 하나보다 둘이 나을 때도 있으니깐. 고소하고 담백한 빵을 씹고 있는데도 목구멍이 씁쓰름했다.


그녀와 헤어진 나는 물 밖으로 나온 거북이처럼 목을 위로 쑥 올렸다가 내리면서 좌우로 움직였다. 어깨까지 시원했다. 50 중반의 진한 사랑 이야기에 주눅 든 내 목이 참았던 숨을 쉬기 시작했다. 숨쉬기를 위해 목을 길게 뺀다는 거북이는 이 시원한 맛을 알까?


난 사랑을 원하지 않아. 혼란은 더 이상 원하지 않아. 이대로 직업적 커리어를 굳히면서 조금 더 버티고 싶어. 삶이 허리를 조금만 굽혀 그 오목한 자리를 내어줄 때까지 오래 바라보고 싶어. 그러면 희망 없이 황량하게, 위안 없이 묵묵하게. 그것이 아무렇지도 않은 듯 겨우 그 정도의 오목함에 기대어 제힘으로 살아갈 수 있을 거야. 조금만, 조금만 더 이 공허한 거리를 혼자 걸어가야 해….


전경린 『열정의 습관』 중에서


단감이 나오던 계절이었다. 수업을 마치고 나오는데 웬 남자가 꽃다발을 내밀었다. 그때는 외부인 출입을 철저하게 막던 시절이 아니었다. 누구 아버님이냐고 묻는 나에게 명함을 내밀었다. 공기업의 과장. 조용한 곳에서 대화를 원하는 그와 교사 휴게실로 갔다. 같은 골프클럽 회원인 중학교 선생님으로부터 내 이야기를 들었다며 물 한 잔을 마신 후 그가 말한 내용은 이랬다.


‘딸 하나를 키우고 있는데 아직 재혼 생각은 없는 것 같다. 같이 근무하면서 지켜봤는데 성실하고 아까운 사람’이라는 말에 용기를 내 찾아왔다고. 공통분모인 사별의 아픔을 부모라는 분자로 나눠보자면서 10번만 만나달라며 꽃다발을 두고 갔다. 그날 나는 남자 이야기를 듣기만 했다. 갑자기 들이닥친 남자와 꽃다발. 그리고 몇 번의 전화. 나를 소개했다는 중학교에 근무하는 선생님께 할 말이 많았지만 부끄러워 입을 열지 못했다. 나는 남자의 일방적인 약속에 끌려 퇴근 후 세 번을 만났다. 40대 초반인 내 얼굴에 살짝 붉은빛이 돌며 세상이 달라 보였다. 두려움과 설렘이 적당히 버무려진 심장이 나댔다. 하지만, 두려움에 떠는 쪽으로 더 기울어진 내 마음이 나를 붙잡았다. 생기발랄했던 꽃다발이 고개를 숙이기 시작할 때쯤 네 번째 만남은 내가 먼저 제안했다. ‘너무 무섭고 두려워서 새로운 곳으로 발걸음을 옮기지 못하겠다.’라고 말했다. 조금 더 만나보자는 남자에게 냉정한 표정으로 고개를 흔들었다. 딸이 대학생이 되면 후회할 거라는 남자와 그렇게 끝냈다.


그날 이후 딸 하나 키우는 여선생에 대한 값어치가 최고라며 서너 번 정도 남자를 소개받았다. 입은 돌도 씹어 먹을 것처럼 나불거리는데, 몸과 마음이 따라오지 않았다. 아무리 혼자보다 둘이 낫다고 주문을 외워봐도 발걸음이 앞으로 나가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남자가 아닌 딸아이 손을 잡았다. 물론 그런 나의 앞과 뒤에는 챙겨주고 살펴주는 든든한 친정식구들과 친구들, 온라인 게임동료, 지인들이 있었다. 가끔씩 나를 찾아오는 쓸쓸함은 순전히 내 몫으로 남겨졌다.


반바지 덕분에 달궈진 다리 살갗이 따가웠다. 중년의 깊은 사랑을 조용히 전해주던 그녀와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뜨거운 탓이다. 그녀의 사랑보다는 내가 지금까지 살아왔던 순간들처럼 거리가 타올랐다. 늘 웃고 있는 모습 뒤에 숨겨진 울음. 차갑고 냉정한 순간에도 따뜻함을 버리지 않던 내 시간들. 양산을 든 손등과 이마 위로 땀이 흘러내렸다. 손수건으로 땀을 닦으며 나에게 물었다. ‘너 후회하니?’ 답을 찾느라 꾸물대는 나 대신 법륜스님이 큰 목소리로 대답해 줬다. ‘후회는 자신의 선택을 받아들이지 않고 바카라임지지 않은 자세를 말하는 것.’


뜨거움에 아스팔트가 녹아내릴 것 같던 그날. 겨울옷을 벗고 봄옷을 입어도 될 정도의 적당한 온도를 유지하고 있을 집으로 돌아오던 그 시간. 내 손엔 양산과 더위에 줄줄 흐르는 땀을 닦아 줄 손수건까지 있는데 후회는 무슨! 나는 한낮 태양이 파도처럼 넘실대는 시간을 따라 집으로 왔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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