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1년

그리고…

by김광희

2025년 7월 25일(금)

홀수년이라 올해 건강검진 대상자다. 미루고 미루다 2년 전 검진했던 병원을 예약했다. 초봄에 역류성 식도염으로 고생했던지라. 이번엔 제대로 검사를 해보지 싶었다. 오후부터 내일 할 '대장 내시경'을 위해 마시고 화장실 가고 또 가고…. 시간이 갈수록 다리가 후들거렸다. 화장실 문턱이 낮아 천만다행이다. 혹시 문턱에 걸려 넘어져서 앞니라도 왕창 날린다면. 볼 것 없는 이 얼굴에 어쩔 뻔. 후유. 낮은 문턱아 고맙다.


2025년 7월 26일(토)

아침 8시 25분 '복부초음파' 중 선생님이 '혹시 살이 빠지거나 혈뇨, 옆구리 통증은?' 2년 전 처음 했을 때 담낭에 물혹이 있다 했는데. 가족력까지 묻길래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누워서 고개를 흔든 탓인지 목이 뻐근했다. 목뒤를 주무르며 내시경실로 가는데 가슴속이 싸늘했다. 수면 내시경 후 깨어나 내과 진료실로 갔다. 초음파 사진을 컴퓨터 화면으로 보여주며 '담낭은 더 지켜보고 신장에 종양이 보이는'게 문제라길래 월요일 날 신장 CT를 예약했다. 아! 기분 묘하네. 마음이 편치 않다. 퇴직하고 이제 3년인데. 이제 놀만해졌는데. 내일 점심 먹기로 한 동생에게는 말해야겠지. 아니, 하지 말까. 혹시 초음파가 실수했을~~^^


2025년 7월 28일(월)

신장종양을 확인하기 위해서 태어나 처음으로 CT를 찍었다. 수술용 18G 정맥주사 바늘을 3번 만에 삽입했다. 영상의학과에서 CT 촬영에 대한 주의 사항을 듣고 검사를 위한 조영제 삽입을 했다. '아! 내 상태가 좀 심각하구나.'라는 마음이 3일 만에 뜨겁게 가슴을 치고 올라왔다. 촬영이 끝났다. 어제저녁부터 굶었는데, 배도 고프지 않았다. 내가 동굴 속에 있는 것처럼 의사 선생님 말씀이 울렸다. 세상에 오른쪽 신장 중앙에 덩어리가 떡하니 자리를 잡다니. 눈앞이 부해졌지만, 병원에서 챙겨준 3차 병원 진료에 필요한 서류를 받았다. 전화로 결과를 묻는 동생에게 말하려다 그대로 주저앉았다. 토요일 이후 꽉 쥐고 있던 정신이 풀려버렸다. 이젠 보호자인 딸에게 빨리 알리라는데. 나는 아직은 아이들 짐이 되고 싶지 않다 했다. 울음을 참는 나에게 동생은 '언니 곁에 우리도 있어. 괜히 혼자 소설 쓰지 말고 일단 집으로 가.' 어떻게 운전을 했는지 지금도 덜덜거린다. 민서에게 최대한 담백하게 CT 결과와 3차 병원 진료에 대해 말했다. 칠흑 같은 어둠이 잠깐 머물더니 민서는 최대한 낮은음으로 내게 오겠단다. 조금 있으면 도착할 거다. 또 귓속이 윙윙거린다. 숨죽이고 있던 이명이 칼춤을 추나 보다. 이럴 땐 조용히 있어도 되겠구먼! 나한테 왜 이러는 거야! 왜! 무슨 원수진 일이 있다고!


2025년 7월 31일(목)

출근을 위해 아침 일찍 마산으로 출발하는 사위 뒤를 따라 나와 아파트 둘레길로 갔다. 며칠 전 월요일 내 전화를 받고 집으로 온 후부터 나와 제대로 눈을 맞추지 못하는 사위와 딸. 둘은 퉁퉁 부은 눈을 숨기며 '신장종양' 공부만 하고 있다. 서로 바라보는 순간 분수처럼 눈물이 솟아오를 것 같아 나도 둘을 피했다.

어제 서울 A 병원에서 수술 날짜를 잡고 왔다. 담당 교수님이 수술을 위한 준비는 유산소운동이라 길래 아침부터 나갔다. 이파리들이 유난히 선명하게 푸르기만 한 둘레길. 푸른 하늘과 어울리는 구름. 이렇게 나도 평범하게 흘러가고 싶었을 뿐인데. 무슨 이런 일이! 이왕 이렇게 된 거 그냥 해보지. 뭐. 아니! 왜! 내가! 돌멩이라도 차면서 소리 지르고 싶은데. 그 흔한 것도 안 보인다. 이런 젠장!!!


난 괴로움과 갈등을 하소연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별 도움도 되지 않을 것 같고…. 무언가 희망이 되고 보기 좋은 것들을 잘 추스르고 모양을 내서 사람들에게 보이고 싶고, 메말라 가는 사람들에게 또 다른 행복의 모습, 기쁜 삶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장차현실 『엄마, 외로운 거 그만하고 밥 먹자』 중에서


작년 7월 건강검진으로 발견한 신장암. 그때 썼던 일기를 끄집어냈다. 그날 마음이 떠올랐다. 곳곳에 숨겨놓은 눈물이 강한 태풍을 만나 내 세상만 정전이 된 시간이었다. 그 시간을 보내고 다시 일기를 펴다니. 뭉클한 덩어리가 올라왔다. 처음 갔던 서울 A 병원 말고 딸이 이끄는 데로 7군데 병원을 거쳐 인천 C 병원에서 수술한 게 벌써 1년이라니. 복부에 남은 흉터는 아직도 선명한데. 무심하고 부드럽게 흘러나오는 피아노곡처럼 나에게 시간도 그렇게 흘러갔다. '멍'한 나를 끌어안고 박자에 맞춰 건반을 두드려준 딸 부부와 가족, 친구들이 곁에 있어 가능했으리라. 그래서 사람은 서로의 울타리는 지키면서 누구 하고라도 함께 지지고 볶아야 하나보다. 그 따스함이 사람을 숨 쉬게 하니깐.


작년 일기를 읽고 나니 정기검진을 앞두고 두근대던 마음이 조금 가라앉았다. 드문드문 내린 비가 더운 공기를 쓸고 간 곳에 잽싸게 자리한 쓰름매미는 가을을 노래하기 시작했다. 이제 뜨거웠던 시간이 조금씩 떠나고 있다. 그 속에 안절부절 한 내 마음도 묶어 보내야겠다. 단단한 노끈을 찾으려 내 몸속 세포들을 하나둘 깨우며 바카라장에 일기를 다시 넣었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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