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다듬어 나가는 이들에게 건네는 위로

김경숙.「인쇄용지의 결」(2024 매일신문 신춘문예 당선작)

by뜰에바다

김경숙 작가의 「인쇄용지의 결」은 일상의 아주 흔하고 평범한 물건에서 사유를 끌어내, 삶의 성찰과 자아의 확립이라는 깊은 주제로 확장해 나간 뛰어난 수필이다.


작품은 프린터에 종이가 잘 걸리고 엉키는 이유, 즉 '인쇄용지의 얇은 결과 습기'에 대한 관찰로 시작한다. 작가는 얇고 얇아 작은 충격이나 습기에도 쉽게 굴곡이 생기고 멈춰 서는 인쇄용지의 특성을 자신의 지나온 삶과 열등감, 연약했던 자아에 비유한다.

작은 것이라도 굴곡이 생기면 오류를 일으킨다. 괜찮다 싶다가도 어딘가에 걸리면 그대로 멈춘 채 꼼짝하지 사람도 인쇄용지처럼 무언가를 받아들이는 결이 다를 수 있다. 같은 프린터 기계에 종이를 넣어도 무게마다 차이가 있는데 저마다 다른 결로 살아온 사람들은 하물며 오죽할까. 나도 얇은 용지처럼 버겁다는 느낌이 들면 곧장 굴곡이 생기는 날들이 있었다.

작가는 얇고 가벼워 프린터 센서조차 감지하지 못하는 종이는 타인의 눈치만 보느라 자아를 잃어버렸던 시절로, 습기를 먹고 흐느적거리며 엉키는 용지는 작은 미세한 상처에도 무너지고 자존감이 낮았던 시절로. 이처럼 구체적인 사물인 인쇄용지의 물리적 특성을 시각적·감각적으로 형상화하여 독자가 작가의 감정에 깊이 공감할 수 있게 만들어 준다.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무슨 생각으로 살아가는지 들여다보았으면 자라는 여러 지점을 거치며 조금씩 여물어갔을 텐데. 무대 곳곳에 다른 사람을 세워놓고 그들이 바른 립스틱이 메말라 가는지, 마스카라가 번지진 않는지, 피부톤이 붉게 달아올라 힘들어하는 것은 아닌지 조바심을 냈다. 톺아보면 수시로 엉키는 나를 어떻게 하면 좋을지 방법을 몰랐다. 남에게 맞추는 게 습관이 되어 내 안에 두고도 나를 찾지 못했다. 정작 나에게 나는 차갑기 그지없었다. 어수선하고 서툰 날이었다.

수필에서 인생의 기습적인 시련(남편의 실패)은 역설적으로 작가를 일으켜 세우는 전환점이 된다. 단순히 상처를 고백하는 데 그치지 않고, '남의 시선을 걷어내고 그 자리에 나를 앉히는 일'로 나아가는 성숙한 태도가 글에 깊은 울림을 준다.

결이 단단해진다는 것은 내가 되어가는 과정이다. 이전에 생긴 굴곡을 다듬고 문지르며 지난 시간으로 돌아가지 않는 일이다. 버겁다는 느낌이 들면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무늬 하나를 보태어 다시 그리면 되는 것이다. 저절로 굴러가는 것이 있을까. 프린터 용지함에 종이를 넣고 고르게 들어갔는지, 들러붙진 않는지 살핀다. 출구를 향해 늦은 인쇄용지 하나가 덜컹대면서도 천천히 제 길을 걸어오고 있다.


'인쇄용지의 결'은 누구나 한 번쯤 겪어보았을 '얇디얇은 자존감의 시절'을 보듬어 주는 작품이다. 과장된 감상주의에 빠지지 않고, 지나온 세월을 돌아보는 시선이 따뜻하면서도 절제되어 있어, 읽는 이로 하여금 편안한 위로를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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