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뜨거운 물을 만나 다시 피어나다

유희종.「꽃차 우리는 시간」(2024 글로벌경제신문 시니어 신춘문예)

by뜰에바다

유희종 작가의 「꽃차 우리는 시간」은 꽃이 뜨거운 물속에서 다시 피어나는 과정에 삶의 회고와 인내, 치유의 상징성을 섬세하게 녹여낸다.


수필은 친구가 보내온 말린 꽃봉오리를 다관(찻잔)에 넣고 뜨거운 물을 부어 꽃차가 우러나는 시간을 정숙하게 바라보는 순간에서 시작된다. 바짝 마르고 오므라들었던 꽃봉오리가 뜨거운 물이라는 시련 속에서 천천히 잎을 펼치며 제 색과 향을 찾아가는 '꽃차'가 매개물이다.

향기로운 주검이다. 겹겹이 포개어져 있다. 지나간 계절이 물기는 쏙 빼고 납작해졌다. 납작해진 꽃잎들은 명주바람에 호로록 날려갈 듯하다. 몸피도 작아지고 무게감도 느껴지지 않는다. 멧노랑나비, 작은 주홍부전나비, 배추흰나비, 뿔나비, 오색나비의 날개 같기도 하다. 저것들도 한때 물오른 꽃봉오리였을 것이다.
그녀가 생일 선물로 꽃차를 보내왔다. 이 골짝 바람 저 골짝 맑은 물이 피워냈을 꽃을 따서 씻고 말리고 펼쳐서 덖었을 것이다. 갓난아기 주먹만 한 유리병에 산목련, 마리골드, 아까시꽃, 싸리꽃, 왕겹벚꽃이 들어있다.

작가는 차가 우러나는 짧고도 깊은 시간을 통해 지나온 삶의 우여곡절, 인내해야 했던 세월, 그 속에서 숙성된 인생의 지혜를 고요히 반추한다. 그리고 차를 마시는 행위는 단순한 음료의 섭취가 아니라, 치열했던 지난날의 상처를 보듬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삶의 성숙을 확인하는 성찰의 과정으로 승화된다.

물이 끓기를 기다리며 바짝 마른 꽃송이를 바라본다. 꽃은 유혹의 기관이라는데, 눈 쌓인 계절 피었다가 절정의 순간 통꽃으로 툭툭 떨어지는 동백꽃처럼 꽃들은 죽음을 택함으로써 새 생명을 얻는다는데…. 이제 그녀도 나도 물기는 빠지고 납작해져서 지난 계절의 마른 꽃이 되었다. 그녀와 나를 닮은 꽃송이를 투명한 티팟 안에 넣었다. 뜨거운 물이 닿자 꽃잎 한 겹 몸을 펼친다. 바람 몇 줄기, 햇볕 몇 줌 쏟아진다. 보슬비 몇 방울도 똑똑 떨어진다. 마른 몸 안에 꼭 움켜쥐고 있던 지난 시간을 펼치고 있다. 떠나보냈던 봄과 마주하고 앉는다. 온기 속에서 다시 피어나는 꽃송이들. 이미 떠나간 그 무엇들이 다시 올 수도 있겠다는 기대가 뜨거운 물속에서 녹고 있다.

수필은 차가 우러나는 정적의 시간, 찻물에 물드는 투명한 색감, 그윽하게 퍼지는 향기 등 오감을 자극하는 섬세한 묘사가 돋보인다. 문장의 호흡이 차분하고 정갈하여 읽는 이로 하여금 마치 작가와 함께 다도(茶道)의 자리에 앉아 마음을 정돈하는 듯한 평온함을 선사한다.

티팟 안에서 뜨거운 물이 노을빛으로 마리골드 꽃을 다시 피우고 있다. 연한 노란빛에서 샛노랗고 붉게 색을 더하고 있다. 그녀도 나도 마리골드 꽃차처럼 다시 필 수 있을까. 삐삐거리며 전자레인지가 보내는 신호에 모퉁이를 돌던 생각이 주춤한다. 기다렸던 시간이 달콤하게 느껴진다. 한 모금 입안에 머금으니 꽃송이가 품어 안고 있던 그녀의 봄이 혀의 미각돌기 위에서 주황빛으로 물든다.


수필 '꽃차 우리는 시간'은 자신의 삶을 고요히 되돌아보며 스스로에게 따뜻한 위로와 긍정을 건네는 명상적 수필이다. 지나온 삶의 아쉬움이나 상처를 후회하거나 원망하지 않고, 뜨거운 물을 품어 부드러워지는 꽃잎처럼 모든 지난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포용하는 성숙한 시선이 느껴진다. 나이 들어가는 삶이 비로소 깊은 향을 내는 시기임을 우아하게 보여주며, 인생의 후반전을 맞이한 모든 이들에게 은은하고 진한 여운을 남긴다.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