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물건에서 피어난 '오동낭구 그루터기'

박정순. 「오동낭구 그루터기」(2024 글로벌경제신문 시니어 신춘문예)

by뜰에바다

박정순 작가의 「오동낭구 그루터기」는 일상의 단면에서 시작해 서정적이고 아련한 유년의 기억, 조모(할머니)와 나눈 깊은 사랑의 서사를 감동적으로 풀어낸다.


화자가 봄날 분갈이를 마친 후 받침대로 쓸 만한 물건을 찾으러 재활용품 수거장에 갔다가, 폐기물 스티커가 붙은 옛 장롱을 발견하는 장면에서 출발한다.

꽃샘추위 핑계 대며 늦추고 미루던 분갈이를 끝낸 주말 오후. 숫자 늘어난 화분들 받침대로 쓸 만한 게 있을까 하여 재활용품 수거장엘 가보니 폐기물 스티커를 붙인 장롱이 봄볕을 맞고 있다. 어긋난 문짝의 백동 장식이 덜그럭 대고 모서리마다 긁혀서 더 초라해 보이는 퇴물, 멀쩡한 가구들도 신제품에 자리 뺏기고 마는 시대에 그동안 어디서 버티다가 밖으로 끌려 나왔을까.

수필에서 스티커가 붙은 옛 가구는 화자를 어린 시절 고향 집 마당의 '오동나무(오동낭구)'로 이끈다. 일상적인 공간(재활용 수거장)에서 발견한 버려진 장롱을 통해 과거와 현재를 자연스럽게 잇는다.

본토박이 노인네들끼리도 지리산 자락이네, 덕유산 줄기가 맞네, 각각 우긴 들 결말나지 않는 내 고향은 워낙 외진 골짜기라 마을 터도 좁았다. 사랑채에 글방을 차려놓고 훈장을 하셨다는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아예 없지만, 시골 노인네 같지 않던 할머니 모습은 잘 보관된 흑백사진처럼 생생하다.

한국의 전통적 정서에서 오동나무는 딸을 낳으면 심어 훗날 시집갈 때 가구를 만들어주던 '내일의 희망'과 '사랑'을 뜻한다. 작품 속 오동나무는 단순한 식물이 아니라 가족의 내력, 손녀를 향한 내리사랑, 그리고 삶과 죽음을 아우르는 운명적 상징으로 기능하다. 화자는 할아버지가 잣니이 시집갈 때 혼수 가구를 짜주기 위해 먼 길을 마다치 않고 구해다 심은 오동나무 밑동에 이름을 삐뚤빼뚤 새기며 자란다. 세월이 흘러 아버지는 오동나무를 베어 재목으로 갈무리해 두고, 얼마 뒤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그 오동나무로 관을 짜서 할머니를 안치해 드란다. 나무는 손녀의 혼수가 아닌, 할머니의 마지막 길을 지켜주는 숭고한 보금자리가 된다.

여남은 살 안팎의 봄날, 난 마당 가에 우뚝 선 오동나무 아래서 놀고 있었다. 어른 키와 엇비슷하던 나무는 몇 집에 올 때마다 잔소리처럼 들어야 하던 할머니의 결혼 채근이 점점 줄어든다. 베개 챙겨 눕는 날이 늘어가고, 적삼 앞섶으로 늘어진 젖 고샅도 부끄러워하지 못하실 지경이 돼버린 채, 서너 살 배기가 되고 마는 할머니. 지극정성으로도 생로병사 순리를 되돌릴 가망이 없다고 판단하신 아버지가 이웃 사람 여럿을 불러 모았다. 뿌리 둘레 한 바퀴를 돌며 막걸리를 뿌려준 뒤, 집 방향으로 넘어지지 않도록 굵은 밧줄을 나무에 묶어서 반대쪽으로 당긴다. 힘껏 버티는가 싶더니 마지못한 듯 쓰러진 생나무를 여러 토막 내어 차곡차곡 갈무리해 두었다.

화자(손녀)의 시집밑천이 될 줄 알았던 오동나무가 할머니의 마지막 관이 되는 반전은 깊은 여운을 남긴다. 나무가 자라 베어지고 관이 되어 할머니를 품는 과정은 '자연으로 돌아가는 인간의 순리'와 '가족 간의 따뜻한 애정'을 보여준다.

근동에서 가장 솜씨 좋다는 목수를 모셔 왔다. 곧은 나무에 먹줄을 놓고 톱으로 켜서 대패질해 못 하나 없이 짠 오동나무 관에 할머니를 누인다. 막내까지 성혼시켜 부모 소임 다하고서야 할머니 산소 아래에 잠드신 아버지, 몇 해 사이에 할머니와 아버지와 오동나무가 함께 자릴 비우고 나자 마치 남의 집에 잘못 들어선 것처럼 담장 안팎이 휑하였다.


수필 '오동낭구 그루터기'는 잊고 지내던 가족의 소중함과 내리사랑의 온기를 다정하게 일깨워주는 수필이다. 빠른 변화 속에서 쉽게 버려지고 잊히는 현대 슬롯에서, 나무 한 그루에 얽힌 세월과 할머니의 사랑을 담담히 되짚어보는 작가의 시선이 독자의 마음을 묵직하게 두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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