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비어 있는 봉투

— 잘못 산 것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사람

by이슬이글

남자는 주말마다 작은 텃밭을 돌봤다.
토마토와 상추를 심었고,
해마다 씨앗 봉투에 파종 날짜를 적었다.

봄이면 창가에서 모종을 길러 텃밭에 옮겨 심었다.

아내는 창가에 놓인 모종을 보며 올해는 상추를 조금만 심자고 했다.


어느 날 남자는 인터넷에서 희귀한 토마토 씨앗을 발견했다.
사진에는 손바닥만 한 검붉은 토마토가 달려 있었다.
판매자는 일반 품종보다 관리가 까다롭지만
맛이 특별하다고 설명했다.
남자는 값이 비싸다는 점에 오히려 믿음이 갔다.


"이번에는 진짜 좋은 걸 심어보려고."
아내가 가격을 보고 물었다.
"씨앗이 이렇게 비싸요?"
"품종이 다르니까."

그는 씨앗의 절반을 모종 화분 열두 개에 나눠 심어 창가에 늘어놓았다.

싹이 자라면 텃밭의 가장 볕 좋은 자리에 옮겨 심을 생각이었다.
햇빛이 드는 시간에 맞춰 화분 자리를 옮겼고,
흙이 마르지 않게 물을 주었다.


열흘이 지나도 싹은 나오지 않았다.
"온도가 조금 낮은가 봐."
그는 온열 매트를 샀다.


이십 일이 지나자 아내가 옆 화분의 상추 싹을 가리켰다.
"이것만 안 나오네요."
"원래 느린 품종이야."
아내는 더 묻지 않았다.

대신 화분에 창가를 내준 빨래 건조대를
매일 거실 한가운데에 펼쳤다.


남자는 새 흙을 주문했고,
남겨 둔 씨앗을 다시 심었다.
이번에도 싹은 나지 않았다.
텃밭의 토마토 자리는 비어 있는 채로 봄이 지나갔다.


어느 저녁 텃밭 동호회 회원이 놀러 왔다.
회원은 봉투를 살펴보더니 판매처를 물었다.
비슷한 사진을 쓰는 사이트에서
발아하지 않는 씨앗을 팔았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고 했다.


"판매자한테 문의해 봤어요?"
"내가 재배를 잘못했겠지."
"그래도 환불 기간이 남았을 텐데요."
남자는 웃으며 봉투를 서랍에 넣었다.


그날 밤 그는 구매 후기를 찾아보았다.
발아하지 않았다는 후기가 여럿 있었다.
손가락은 신고하기 버튼 위에 멈췄다.
그러나 그는 버튼을 누르지 않았다.


다음 주에 아내가 물었다.
"이제 화분 치워도 돼요? 햇빛 드는 데 빨래 좀 널게요."
남자는 화분을 바라보았다.
말라붙은 흙 표면에 금이 가 있었다.

자신이 열심히 돌보았다는 것을 증명할 만한 것은 그 화분들뿐이었다.

"조금만 더 둬."
아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빨래 건조대를 다시 거실 한가운데에 펼쳤다.


사람은 잘못된 선택 앞에서
사실을 몰라서 머무는 것만은 아니다.
이미 알면서도 오래 머물 때가 있다.
선택의 결과를 버리면
선택했던 자기 자신까지 버리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버리지 못한 선택은 자리를 차지한다.
창가의 화분처럼,
남의 동선을 바꿔 놓으면서도 자신은 조용히 놓여 있다.


비가 오던 토요일,
남자는 빈 화분을 베란다로 옮겼다.
흙을 털어내고 온열 매트의 전선을 감아 정리했다.

그런 다음 서랍에서 씨앗 봉투를 꺼내 판매자에게 문의 글을 남겼다.
답변이 올지는 알 수 없었다.


아내는 그가 빈 창가를 닦는 모습을 보았다.
"다 치운 거예요?"
"응. 텃밭 토마토 자리에는 상추나 더 심자."


그는 봉투를 버리지 않고 구매 내역과 함께 보관했다.
다음에는 사진보다 발아율과 판매 기록부터 살펴볼 생각이었다.


오늘의 우리에게

결과를 붙들고 있는 일은 지난 선택을 고쳐주지 않는다.
잘못을 인정하는 순간 비로소 다른 것을 심을 자리가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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