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정성을 맛보라는 부탁
여자는 동네 사람들에게 음식을 만들어 나누는 것을 좋아했다.
명절이면 반찬을 더 만들었고,
새로 이사 온 집에는 작은 병에 담은 장아찌를 건넸다.
그에게 요리는 누군가를 생각하는 방식이었다.
어느 봄, 친구에게서 유기농 자몽을 한 상자 받았다.
여자는 설탕을 적게 넣어 건강한 잼을 만들기로 했다.
몸에 좋은 음식일수록 단맛을 줄여야 한다고 믿었다.
큰 냄비에서 자몽 껍질과 과육을 졸였다.
색은 예뻤다.
주방에는 쌉싸름한 향이 가득했다.
병 열 개를 소독해 잼을 나누어 담았다.
다 만들어진 후에 남편이 식빵에 발라 한입 먹었다.
씹는 속도가 느려졌다.
“어때?”
“좀 써.”
“자몽이 원래 그렇지.”
남편은 물을 마셨다.
여자는 빵을 한 조각 더 잘라 주었다.
남편은 괜찮다고 했다.
다음 날 여자는 잼을 이웃 세 집에 나눠주었다.
받는 사람들은 고맙다고 했다.
그러나 어느 집도 맛있었다는 말을 하지는 않았다.
며칠 후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이웃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잼을 원래 그렇게 쌉싸름하게 만드세요?”
여자는 웃었다.
“요즘 다들 너무 달게 먹어서 그래요. 적응하면 좋아요.”
집으로 돌아온 그는 남편에게 말했다.
“사람들이 단맛에 길들었나 봐.”
남편은 신문을 접었다.
“그럴 수도 있지. 그런데 그 잼은 좀 쓰긴 했어.”
“내가 얼마나 오래 끓였는데.”
그 말을 해 놓고 여자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남편은 더 설명하지 않았다.
여자가 쏟은 시간이 잼의 맛과 다른 문제라는 것을 두 사람 모두 알고 있었다.
그날 밤 여자는 잼병 하나를 열었다.
티스푼 끝으로 조금 떠먹었다.
씁쓸한 맛이 혀 뒤쪽에 오래 남았다.
물을 마셨다.
그리고 조금 더 먹어 보았다.
이번에도 같았다.
이상하게 화가 났다.
자몽을 다듬느라 손톱 끝이 아팠고,
잼 끓는 냄비를 지키느라
저녁 약속을 미뤘던 일이 떠올랐다.
이렇게 애쓴 것이 쓸모없는 일이었다고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우리는 정성을 기울인 일이라면
좋은 결과가 따라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이 그것을 좋아하지 않을 때에는
결과보다 마음을 평가받는 기분이 든다.
그래서 맛이 쓰다는 말에
사랑이 부족하다는 뜻을 덧씌운다.
그 말이 닿는 자리는 잼이 아니라 자기 마음이다.
그러나 정성을 존중하는 일과
결과를 좋다고 말하는 일은 다르다.
다음 주말, 여자는 작은 병 하나만 남기고 잼을 정리했다.
레시피를 찾아보니
자몽 껍질의 흰 부분을 충분히 제거하고
물에 데치는 과정이 있었다.
자신이 다른 과일의 잼 조립법에
익숙한 나머지 건너뛴 단계였다.
남편이 부엌에 들어왔다.
“뭐 해?”
“다시 만들어 보려고. 이번에는 작은 냄비로.”
“도와줄까?”
여자는 자몽 하나를 건넸다.
“흰 부분 좀 떼 줘.”
둘은 나란히 서서 껍질을 손질했다.
새로운 자몽 잼은 아직 맛을 알 수 없었다.
여자는 끓는 동안 숟가락으로
조금 떠서 접시에 식혀 두었다.
오늘의 우리에게
남을 위해 애쓴 시간은 존중받아야 한다.
그렇다고 애쓴 결과가 언제나 칭찬받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