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속 대화법

by전영칠

'근원에 대한 묵상'시리즈는 묵상하고 살면서 문득 스치는 느낌(생각)들을 쓴 것입니다.



95. 불교가 신을 인정하지 않는 이유



불교는 자기 바카라임과 수행의 종교다.

불교가 신을 부정하는 이유는 타자로서 내게 명하는 존재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풀어서 말해보자. 불교가 기독교가 말하는 신을 인정하지 않는 이유는,


1) 모든 현상은 무수한 원인(因)과 조건(緣)이 상호작용하여 생겨나고 사라지며(연기緣起의 법칙), 스스로 존재하며 다른 모든 것을 만든 '원인 없는 제1원인(창조주)'이라는 개념은 연기 법칙과 양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2) 또한 독립적이고 불변하는 실체(자성)는 존재하지 않으며(무아無我와 무상無常), 영원불변한 절대자 역시 고정된 실체를 상정한 관념적 집착으로 보기 때문이다.


3) 그리고 고통과 행복, 구원의 주체는 신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행위(업/업보業報)와 마음이며, 절대자의 의지나 은총에 의해 운명이 결정된다는 관점은 자기 바카라임과 수행을 통한 해탈을 핵심으로 삼는 불교의 자각적 구조와 배치되기 때문이다.




96. 신을 믿는 기독교인이 신을 인정하지 않는 불교인과 대화할 수 있는 방법

- '바닷속 대화법'



기독교의 '신'이 지닌 속성(궁극적 실재, 만물의 근원, 거룩함, 지혜와 자비)에 따라 대화의 맥락을 맞출 수 있는 불교적 개념들이 있다.


형상을 초월하여 온 우주에 가득 찬 진리 그 자체이자 부처의 본체를 법신(法身)이라 한다. 초월적이면서도 내재적인 궁극적 실재를 논할 때 가장 가깝게 대응된다.


모든 존재 안에 내재된 완전하고 청정한 본성을 불성(佛性) 또는 여래장(如來藏)이라 한다. "신의 모상"이나 내재적 신성을 설명할 때 유용한 다리가 된다.


왜곡이나 분별없이 존재하는 만물의 궁극적 실재이자 참된 본질인 진여(眞如)가 있다.


그리고 우주를 관통하는 불변의 이법(理法)이자 궁극의 진리인 다르마(法)가 있다.


기독교인이 불교인과 신(神)에 대해 스스럼없이 대화하고자 한다면 신 대신 법신(法身), 불성(佛性), 진여(眞如), 다르마(法)로 대신해보자. 불교인과 고승들과도 깊이 있는 대화가 가능하다.


무수히 출렁이는 변화무쌍한 파도 같은 대화는 시끄럽기만 하지 별 의미가 없다. 바닷속 깊은 곳에서는 파도가 치지 않는다. 종교를 초월해 '바닷속 대화'를 하면 된다.

대도무문이라 했다. 들어가는 문은 달라도 경지에 다다른 대화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97. 신은 어디에 있는가?



신은 외부에 있는가?

신은 내부에 있는가?

이 두 질문은 부질없다.

신은 무소부재(無所不在)다.

신이나 근원, 진리는 교회나 법당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신은 모든 곳에 있다.

신은 내 밖에도 있고, 내 안에도 있다.

(2026.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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