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생과 소멸
나이 들수록 자신의 유한함을 느끼는 순간들이 때때로 찾아온다.
나만은 영원할 것 같던 젊음을 지나 세월의 노화를 감당해야 할때나, 이대로 10년, 20년이 지나도 별다를 것 없을 거 같다고 느낄 때.
그럴수록 어떤 지독한 결핍처럼
점점 더 의미 있는 삶을 추구하게 된다.
무의미하다 읊조릴 때의 “의미”
의미 있는 삶이란 뭘까.
10대 시절, 사춘기의 질병처럼 태어난 의미를 찾을 수가 없어서 괴로웠던 밤날도 있었다.
그때 내렸던 고민의 끝은 이러했다.
내가 태어난 의미는 역시 모르겠지만, 생물로서 태어난 “의무”는 다음 세대를 이어가는 것이겠구나. 아이를 꼭 낳아보자.
살면서 자연스럽게 찾아질 거라는 작은 기대를 걸며, 어른이 될 나에게 질문을 스리슬쩍 미뤄둔 거다.
그렇게 생물로서의 의무를 다하느라 십여 년의 세월이 속절없이 흘러 버렸다.
미뤄둔 숙제처럼 어른의 사춘기가 빛바랜 가을 풍경처럼 쓸쓸하게 찾아왔다.
이 세계의 어떤 부분이건 풍요롭게 할 수 있다면 조금은 의미 있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게 내가 요즘 다시 사람을 그리는 이유인 거 같다.
지루하게도 돌고 돌아 다시 또 인간이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