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설거지를 하면 머리가 맑아질까

아무것도 하지 않는 휴식보다, 마음을 한곳에 모으는 시간이 필요했다

by하랑팀장

이상하게도 마음이 복잡한 날에는 설거지를 하게 된다. 설거지를 좋아해서는 아니다. 하루 종일 쌓인 그릇을 보면 처음에는 한숨부터 나온다. 그런데 물을 틀고, 고무장갑을 끼고, 접시에 묻은 양념을 닦아내다 보면 머릿속에 흩어져 있던 생각들이 조금씩 가라앉는다. 방금 전까지 마음속을 어지럽히던 회사 전화, 아이 걱정, 주말을 제대로 쓰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물소리 뒤로 한 걸음 물러난다.


휴가를 냈다고 해서 자동으로 쉬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금요일에 하루 쉬었지만 회사에서는 계속 연락이 왔고, 집에는 정수기 설치 기사가 온다고 했다. 딸의 생일 겸 파자마파티 준비도 있었다. 출근하지 않았을 뿐, 마음은 계속 대기 중이었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상태를 주의 잔여물(attention residue)이라고 한다. 몸은 집에 있지만 마음 일부는 아직 끝나지 않은 일에 붙잡혀 있는 것이다. 그래서 쉬는 날에도 쉬지 못한 느낌이 남는다.


나는 가끔 혼자 조용히 집에 있고 싶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막상 그런 시간이 생기면 기대만큼 편안하지 않을 때가 있다. 토요일 아침, 남편은 골프 여행을 가고, 아들은 토요일 오후에 교회 수련회에 갔다. 토요일 저녁 집은 조용했다. 분명 내가 바라던 시간이었다. 그런데 나는 그 시간을 잘 쓰지 못했다. 유튜브 쇼츠를 오래 보았고, 과자와 떡볶이을 먹었고, 먹고 나서는 또 후회했다. 쉬고 싶어서 본 영상이 오히려 나를 더 피곤하게 만들었다. 짧고 강한 자극은 잠깐의 즐거움은 줬지만, 깊은 회복감까지 주지는 못했다. 이것은 즉각적 보상(immediate reward)에 가까웠다. 마음이 허전할수록 손쉬운 자극을 찾고, 그 자극이 지나간 뒤에는 더 큰 공허함이 남았다.


그런데 설거지는 달랐다. 설거지는 아무 생각 없이 하는 일 같지만, 사실은 생각을 너무 멀리 가지 못하게 붙잡아주는 일이다. 손은 접시를 잡고, 눈은 얼룩을 보고, 귀는 물소리를 듣는다. 몸의 감각이 지금 이 순간으로 돌아온다. 이것은 일종의 마음챙김(mindfulness)이다. 반드시 조용한 방에 앉아 눈을 감아야만 마음챙김이 되는 것은 아니다. 반복적이고 단순한 행동 속에서도 마음은 현재로 돌아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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