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조(焦燥)의 묵시록

by슈펭 Super Peng


바람이 불어도 흔들릴 뼈가 없다
피가 도는 소리는 너무 커서 소음이 되고
생각은 손가락 끝에 닿기도 전에 부스러진다
어둠을 핥는 일은 생각보다 담담해서
방바닥의 장판 무늬를 삼백예순두 번쯤 따라 그리다 보면
내가 먼저 지워지는지, 밤이 먼저 지워지는지
그런 시시한 계산조차 무거워 내려놓는다
살아야 한다는 말들은 모두 날카로운 못이 되어
겨우 숨만 쉬는 가슴을 툭, 툭, 건드리는데
아프다는 비명 대신 마른 침만 삼킨다
햇살은 베란다 문턱에서 가차 없이 눈이 부시고
지구의 자전 속도가 나를 두고 혼자 달릴 때
나는 가장 무거운 돌이 되어
이불 밑으로, 밑으로,
끝이 없는 바닥을 향해 침전한다
누가 나를 완전히 잊어주었으면 싶다가도
지독한 허기처럼 밀려오는 이 무(無)의 감각이
차라리 영원하기를 바라는,
말라비틀어진 오후 두 시의 종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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