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확신형 무능력자는 왜 늘 승진하고 이직에 성공할까
청구서는 늘 늦게 오지만,
한 번도 안 찾아온 적은 없다.
어릴 적부터 나는 엄마의 뒷목을 여러 번 잡게 할 정도로 말대꾸를 잘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엄마는 내게 늘 말했다.
"물에 빠지면 요 요 주둥이만 동동 뜨겠어."
그 말을 들으며 자란 탓인지, 나는 내가 말을 꽤 잘하는 사람인 줄 알고 살았다. 하지만 회사에 들어온 뒤 생각이 바뀌었다. 세상에는 정말 정치계 입문을 권하고 싶을 정도의 달변가들이 많았다.
그들은 사람을 설득했고, 설득당하지 않았으며, 분위기를 장악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을 실제보다 훨씬 대단한 사람처럼 보이게 만드는 능력이 있었다.
나는 긴 회사 생활 동안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그들 중 유능한 사람과 사기꾼은 비슷하지만 묘하게 다른 냄새가 났다. 유능한 사람은 말한 만큼은 무조건 해냈다. 반면에 어떤 사람들은 말은 거창했지만 결과물이 늘 초라했다.
결과물을 열어보면 여기저기 동냥한 음식으로 급하게 만든 비빔밥 같았고, 업무를 맡겨보면 본인이 한 일보다 남이 한 일을 자신의 공처럼 이야기했다. 그들의 설명만 들으면 업계 최고의 전문가였으나, 결과물을 보면 공상가에 더 가까웠다.
"내가 ☆☆☆ 다닐 때는 말이야"
친구가 씩씩거리며 전화를 걸어왔다. 화제는 같은 회사에 다니는 A 씨였다. 친구의 말에 따르면 A 씨는 밥먹듯이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내가 ☆☆☆ 다닐 때는 말이야."
회의에서도, 점심시간에도, 커피를 마시면서도, 심지어 관련 없는 이야기에서도, ☆☆☆ 이야기가 빠지는 법이 없었다. 문제는 A 씨의 업무 능력이었다. 그는 자신을 회사에서 가장 바쁜 사람으로 표현했지만, 실제로는 일을 주변에 넘기는 경우가 많았다고 했다. 그리고 A 씨는 일로 쳐주지도 않는 작은 성과는 대형 프로젝트처럼 부풀렸고, 많은 실패들은 별것 아닌 일로 축소시켰다. 친구는 A 씨의 행동에 점점 이상함을 느꼈고, 결국 그의 이력을 수소문하기 시작했다.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A 씨는 ☆☆☆ 출신이 아니었다. 심지어 기업명에 ☆☆☆이 들어가지도 않은 협력업체 출신이었다. 그리고 A 씨는 스스로를 노무 전문가라고 말했지만 실제로는 인사총무팀에서 근무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더 신기한 건 그다음이었다. 거짓이 드러나도 A 씨는 당황하지 않았다.
A 씨는 새로운 설명을 만들어내고 또 다른 해명을 계속해서 내놓았다. 심지어 자신도 그 이야기를 진심으로 믿는 것처럼 보였다.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은 무슨 신종 이상 행동인지 몰라도 A 씨의 말이 허구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결국 대부분이 A 씨의 말을 믿지 않기 시작했다. 그냥 또 시작됐다고 생각할 뿐이었다. 그렇게 A는 회사 안에서 조금씩 고립되어 갔고, 모두가 A의 끝은 정해져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A는 살아남았다.
아니, 살아남은 정도가 아니라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갔다.
무능력한데 왜 사람들은 속을까
여느 날처럼 업무를 대충대충 처리하던 A 씨가 결국 회사에서 큰 사고를 쳤다. 그 사고 때문에 회사는 소송에 휘말렸고 1심에서 패소했다. 문제는 그로 인한 손실 규모가 회사의 1년 예산에 영향을 줄 정도로 큰 것이었다. A 씨의 잘못된 업무 처리와 그것을 덮기 위한 보고 누락으로 회사에는 상당한 손실이 발생했고, 그 여파는 직원들의 복지 예산 축소로 이어졌다. 이는 전 직원에게 피해를 끼치는 결과였다.
성인이라면 본인의 행동에 바카라임을 져야 한다. 업무상 과실이 있을 수는 있다. 하지만 어른이라면 고통스럽지만 그것을 끝까지 바카라임지고 마무리 지어야 한다. 하지만 A 씨의 행보는 남달랐다. 그는 수습이 아닌 도망을 선택했다. 본인이 친 사고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되는 것이 보이자 빠르게 이직 준비를 했고, 지금보다 더 대우가 좋은 공기업으로 이직이 결정되었다. 그것도 팀장 직급을 달고.
사고 수습은 남은 사람들의 몫이 됐다. 그리고 내 친구는 그중 가장 골치 아픈 소송 관련 업무를 고스란히 떠안게 되었다. 사고 친 사람은 따로 있는데 그 사람이 더 좋은 조건을 얻었다. 친구가 억울하고 분한 건 당연한 일이었다.
우리는 실력보다 확신을 믿는다
이야기를 듣던 나도 처음에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공기업 면접관들이 바보도 아닐 텐데 왜 이런 사람이 통과하는 걸까.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답은 의외로 단순했다.
사람들은 진실보다 확신에 먼저 설득된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던닝-크루거 효과(Dunning-Kruger Effect)'라고 부른다. 실력이 부족한 사람일수록 자신의 부족함을 알아차리지 못해 오히려 스스로를 높게 평가하는 현상이다. 반대로 실력이 있는 사람일수록 자신의 한계와 변수를 잘 알기에 더 신중해진다.
대부분의 면접에서 상대의 실력을 완벽히 검증할 기회를 갖기는 어렵다. 진실은 검증이 필요하지만, 확신은 첫인상만으로도 전달된다. 회사에서는 흔히 말만 잘하는 사람을 능력 있는 사람으로 착각하기 쉽다. A 씨처럼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하는 사람은 자신의 부족함을 모르기 때문에 망설임이 없다. 확신에 찬 목소리와 주저함 없는 태도는 때로 실제 실력보다 훨씬 큰 능력처럼 보인다.
반면 유능하지만 신중한 사람들은 변수를 알고 실패 가능성을 안다. 그래서 단어에 묻어나는 조심성이 자신감 없음이나 소극적인 태도로 오해받기도 한다.
"확인이 필요해 보입니다."
"가능성은 있습니다."
면접장에서 둘이 마주 앉으면 누가 더 좋은 인재로 보일까. 아이러니하게도 후자가 아니라 전자다. 사람은 무의식적으로 자신감과 능력을 동일시한다. 그래서 자기 확신형 무능력자는 생각보다 자주 승리한다. 적어도 본인의 행동에 대한 계산서가 날아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결국 결과가 모든 것을 증명한다
수화기를 넘어서 친구의 목소리는 아직도 분노가 묻어 있다. 맛있는 저녁을 먹고, 좋아하는 커피도 마시고, 평화로운 집, 무엇보다도 퇴근을 했음에도 친구는 아직도 화가 난다고 했다. 억울함과 화가 온몸을 뒤덮어 감각을 마비시켜 버린 것이다. 계속해서 자신은 남아서 사고를 수습하고 있는데, 정작 사고를 낸 사람은 더 좋은 곳으로 떠난다는 사실이 머리에 못을 박고 떠나 주질 않는다.
나는 친구의 마음이 충분히 이해된다. 안타깝게도 나는 이런 부류를 몇 번 경험했기에 그 억울함을 잘 안다. 하지만 명심하자. 그의 거짓된 성공에 배 아파하며 나의 오늘을 망치는 것만큼 손해 보는 장사는 없다. 세상이 불공평해 보이고 실력보다 확신이 이기는 것 같아 무력감이 들 때가 있다. 하지만 무능을 확신으로 포장한 자들이 얻은 승리는 '유예기간'일 뿐이다.
그들은 생각보다 오래 버티기는 하지만 영원히 버티는 경우는 한 번도 보지 못했다. 결국 언젠가는 말이 아닌 결과로 평가받는 순간이 오기 때문이다. 올라갈수록 감당해야 할 바카라임은 커지고, 말로 가릴 수 있는 영역은 줄어든다.
높이 올라갈수록 추락은 더 빠르고, 더 크게 다친다.
현실은 면접장이 아니다. 면접에서는 말이 문을 열어줄 수 있다. 하지만 회사에서 결과를 대신 만들어주지는 못한다. 성문을 여는 것은 화려한 말일지 몰라도, 그 성을 지키는 것은 결국 실력이다. 문을 열고 들어가는 데 성공했다고 해서 그 안에 계속 머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나는 친구가 A 씨가 청구서를 받고 추락할 날을 고대하며 본인의 삶을 갉아먹지 않았으면 한다. 우리는 그저 우리의 속도대로, 진짜 실력이라는 성을 계속 쌓아가면 된다. 마지막에 웃는 것은 늘 화려한 말쟁이가 아니라, 끝까지 자리를 지켜낸 진짜 실력자다.
성공하면 사업가가 된다. 실패하면 사기꾼이 된다. 그 차이를 만드는 것은 결국 말이 아니라 결과다. 그리고 결과는 언젠가 반드시 청구서를 들고 찾아온다.
언제나 그렇듯 청구서는 늘 늦게 온다. 하지만 한 번도 오지 않은 적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