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하다는 약한 사람의 언어가 아니라, 엄마의 언어였다
미안하다는 말을 가장 싫어하던 내가,
어느새 세상에서 가장 먼저 고개를 숙이는 사람이 되었다.
예전의 나는 차가운 언어를 가진 사람이었다. 필요한 말만 하고, 불필요한 말은 아꼈다. 그래서인지 회사에서는 시니컬하다는 말을 종종 들었다. 남의 일에는 큰 관심이 없었고,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했다. 활발하지는 않지만 무던하고 독립적인 사람. 적어도 나는 스스로를 그렇게 생각했다.
그랬던 내가 아이를 낳고 가장 많이 하는 말이 생겼다.
"죄송합니다."
미안하다는 말을 가장 싫어했던 사람
나는 미안하다는 말을 싫어했다. 다른 이에게 아쉬운 소리 하기 싫어서 노력했고, 더 일했고, 누군가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애썼다. 사과는 하는 것도 듣는 것도 싫어했다. 회사에서 누군가 내게 "죄송합니다."라고 말하면 "괜찮아요."로 끝내지 않았다. 꼭 한마디를 덧붙였다.
"다음에는 미안할 일을 안 하면 되죠."
위로보다 당부를 먼저 건네는 사람. 조금은 뾰족한 화법을 가진 사람이 바로 나였다.
엄마가 되자 세상이 미안해졌다
갓난아이를 품에 안고 집으로 돌아온 첫날이었다. 내 생각보다 신생아는 자주 그리고 크게 울었다. 새벽마다 우는 아이를 안고 집 안을 서성이면서 혹시 아래층에서 올라오지는 않을까, 혹시 관리실로 민원이 들어오지는 않을까 마음을 졸였다. 나는 작은 선물과 함께 메모를 준비했다.
"신생아가 있어 한동안 밤에 울음소리가 날 수 있습니다. 너그럽게 양해 부탁드립니다."
문 앞에 메모를 붙이고 돌아오는데도 마음은 좀처럼 놓이지 않았다. 몇 년이 지나 아이가 자라도 달라진 것은 없었다. 오히려 더 심해졌다.
아이를 데리고 집 밖으로 나가는 순간, 나는 모든 것에 미안한 사람이 된다. 어린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눈치 레이더는 집 밖에서 쉴 새 없이 돌아간다. 아이가 카페에서 소리를 지를까 봐, 공공장소에서 누군가에게 불편을 끼칠까 봐, 위험하게 뛰지는 않을까 봐 늘 전전긍긍한다.
타인에게 손 벌리거나 미안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삶을 가장 싫어했던 나였다. 그런 내가 이제는 세상에서 가장 먼저 고개를 숙이는 사람이 되었다. 식당에서도, 엘리베이터에서도, 놀이터에서도.
"죄송합니다."
"감사합니다."
내 아이가 조금만 서툴러도, 누군가에게 아주 작은 불편이라도 끼칠 것 같으면 심장이 덜컥 내려앉아 사과가 먼저 튀어나온다.
가장 미안한 사람은 아이였고, 나였다
시간이 흐를수록 내가 가장 미안한 사람은 타인이 아니라 아이였다.
하루에도 수십 번 "안 돼."를 말하는 나.
해님도 출근하는 시간에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기는 나.
콧물감기를 달고 살고, 열이 나는 아이를 바라보는 나.
좋은 엄마가 아닌 것만 같은 죄바카라감은 생각보다 집요했다. 그리고 그 죄바카라감은 결국 나 자신에게로 향했다.
내 입에서 나간 뜨겁고 축축한 '죄송합니다'가 세상에 쌓여갈수록, 내 안의 자존감은 조금씩 닳아갔다. 당당했던 나는 온데간데없고, 늘 마음 한구석이 개운하지 않았다. 어디 탁 트인 벌판에 가서 소리라도 지르고 싶은 날이 많았다.
이게 말로만 듣던 육아 스트레스일까. 아니면 내가 나답지 못하게 살고 있어서 마음의 회로가 과부하를 일으키는 걸까. 나라는 존재와 나다움을 조금씩 잃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면 목 끝까지 뜨거운 것이 차올랐다.
엄마의 언어
어느 날 친정엄마의 생신을 맞아 이모와 함께 식사를 했다. 옛이야기가 오고 가고 젊은 날의 엄마에 대한 이모의 폭로가 이어졌다.
내 기억 속 엄마는 늘 상냥하고 따뜻한 사람이었다. 비행기를 타도 기내식을 건네는 승무원에게 "아가씨는 식사했어요? 나만 계속 먹어서 미안하네."라고 말을 건네는 사람이었다. 그런 엄마를 보며 자란 나는 엄마가 원래 그런 사람인 줄 알았다. 그런데 식사 자리에서 이모가 웃으며 말했다.
"너희 엄마 원래 엄청 차갑고 말에 칼이 서 있었어.
체구 큰 사람이랑 싸워도 눈하나 깜짝을 안했어.
말 한마디 한마디 얼마나 차갑고 독한지, 싸우는 걸 한번이라도 본 사람은 언니한테 안덤볐다니까.
너희 낳고 사람이 바뀐 거야."
가만히 듣고 있던 엄마가 인자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새끼를 낳고 나니까 나보다 내 새끼가 먼저더라.
혹시라도 내 아이에게 해코지할까 봐 싸움은 피하게 되고, 양보하게 되고, 먼저 미안하다고 하게 되더라."
그 순간 무언가가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미안하다'는 엄마의 언어였구나.
약해져서가 아니었다.
기죽어서도 아니었다.
내 자존심보다 아이가 더 소중해졌기 때문이었다.
싸워서 이기는 것보다 아이를 지키는 것이 중요했고, 내가 옳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보다 아이가 안전한 것이 더 중요해졌다. 그래서 엄마들은 먼저 양보하고, 먼저 사과하고, 먼저 고개를 숙인다. 그것은 비굴함이 아니라 보호 본능이었다.
그리고 나도 그렇게 엄마가 되어가고 있었다.
나는 잠시 자리를 비운 것뿐이다
나는 안다. 나로 살아온 긴 시간과 엄마로 살아가기 시작한 시간이 서로 부딪히고 있는 것뿐이라는 걸. 이 마음속 이념 전쟁도 영원하지는 않을 것이다. '미안합니다'라는 새로운 언어와 조금씩 친해지고, 아이가 세상을 스스로 살아갈 만큼 자라면 나 역시 조금은 달라질 것이다. 언젠가는 다시 하고 싶은 말을 또박또박 하는 사람으로 돌아갈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때도 오늘의 나는 잊지 않을 것이다.
세상을 향해 가장 많이 미안하다고 말했던 시절이,
사실은 누군가를 가장 뜨겁게 사랑했던 시절이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