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리의 장애 등록을 마친 후, 나는 토리가 받을 수 있는 지원바카라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우선 가장 먼저 ‘장애아가족 양육지원사업’이 눈에 들어왔다.
그 사업은 「장애인복지법」에 따라 장애 정도가 심한 18세 미만 아동과 생계를 같이하는 가정이 이용할 수 있었으며, 이동 및 가사 지원 등 양육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서비스였다.
지원 자격을 확인한 나는 곧바로 복지로에서 서비스 신청을 마쳤고, 결과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신청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토리가 해당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서비스는 월 160시간 이내에서 제공되며, 기준 중위소득 120% 이하 가정은 연 1,200시간 이내에서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고 안내받았다.
다행히 우리 집은 무료 지원 대상에 포함되어 있었다.
그렇게 나는 약속된 시간에 맞춰 방문할 돌봄 선생님을 기다렸다.
돌봄 선생님은 밝은 미소와 함께 문을 두드리며 나타나셨다.
선생님의 환한 미소를 마주하자, 좋은 분을 만날 수 있을지 조마조마했던 마음의 긴장이 비로소 스르르 풀려나갔다.
선생님은 조심스레 자리를 잡고 앉아 토리의 눈을 맞추며 따뜻한 인사를 건네셨다.
“안녕, 예쁜 친구야, 만나서 반가워.”
아이를 부르는 나지막한 목소리에는 다정함이 가득 담겨 있었고, 그 부드러운 목소리에 토리의 경계 어린 시선도 금세 풀리며 해맑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렇게 소중한 인연으로 이어진 돌봄 선생님은 아이의 일상에 스며들어 든든한 조력자가 되어주셨다.
아이의 재활을 홀로 감당하며 버텨온 내 삶에도, 선생님이 오시는 시간만큼은 비로소 평범한 일상이 찾아온 것이다.
덕분에 마음을 다잡을 힘을 얻었고, 홀로 있는 시간 동안은 잠시 숨을 돌리며 나를 돌보는 데 집중할 수 있었다.
그렇게 평온한 일상을 이어가던 어느 날, 토리의 재활 선생님께서는 토리를 어린이집에 보낼 의향이 있는지 조심스레 물어오셨다.
아이가 성장하면 당연히 어린이집을 보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내게 그곳은 도무지 닿을 수 없는 먼 나라 이야기 같았다.
토리는 덩치만 자랐을 뿐 여전히 신생아처럼 몸을 가누지 못했고, 다른 아이들이 활동할 때 토리만 덩그러니 누워있을 모습을 상상하니 가슴 한구석이 저려왔다.
어린이집에서도 토리를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에, 나는 그저 집에서 아이를 돌보는 길을 택하려 했다.
그러나 재활 선생님의 말씀은 달랐다. 우리 지역에 ‘장애전담어린이집’이 있는데, 그곳은 재활 치료를 병행하는 것은 물론 토리와 같은 아이들이 많아 오히려 더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는 환경이라고 조언해 주셨다.
외부의 자극이 토리의 성장에 큰 동력이 될 것이라며, 그곳에 보내는 것이 아이를 위한 최선의 결정이라고 덧붙이셨다.
나는 집에서 돌아오자마자 ‘장애전담어린이집’에 대해 알아봤다.
우리 지역의 장애전담어린이집은 발도르프 교육 철학을 바탕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아이들의 발달 과정에 맞춘 자연 친화적 활동과 예술적 경험을 토대로, 정형화된 틀을 넘어 아이의 내면적 성장을 이끄는 데 주력하는 곳이었다.
그래서 남편과 함께 그 어린이집의 입학설명회에 참석하기로 했다.
설명회 당일, 토리를 데리고 그곳에 방문하자 선생님들은 진심 어린 태도로 우리를 맞아주셨다.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다정하게 인사를 건네는 선생님들의 미소를 마주하자, 마음 한구석에 묘한 안도감이 피어올랐다.
‘아… 이분들이면 토리를 진심으로 돌 봐주실 수 있겠구나.’
그 확신을 품은 채, 우리는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설명회 자리에 앉았다. 남편과 내가 설명에 집중하는 동안, 뒤편에서는 선생님들이 토리를 세심히 돌봐주시고 계셨다.
토리는 선생님들이 마음에 들었는지 금세 적응해서는 까르르 웃으며 놀고 있었다.
그 천진난만한 웃음소리가 들려올 때마다, 나는 설명을 듣다가도 뒤를 돌아보며 한 번씩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토리가 입학할 장애전담 어린이집은 언어, 작업, 인지, 물리치료 선생님들의 세심한 케어는 물론, 영어와 요가 같은 특별활동과 다양한 분기별 행사가 준비되어 있다고 했다.
‘거북이 마라톤’과 ‘힐링 팜’, 여름 캠프와 축제 등 아이와 부모가 함께 어우러져 행복한 기억을 쌓아갈 프로그램들이 눈길을 끌었다.
이런 다채로운 프로그램들을 보며, 나는 토리가 이곳에서 얼마나 더 밝고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을지 기대가 되었다.
몸을 가누지 못한다고 방치하는 것이 아니라, 선생님들이 아이를 안아주거나 일으켜 세워 다양한 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세심하게 이끌어준다는 점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나와 남편은 마침내 확신을 가지고 토리를 이곳에 보내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과거의 나를 다시금 떠올렸다.
분명 나는 어떤 모진 바람에도 토리의 세계를 지켜낼 견고한 울타리가 되겠노라 마음먹었었다.
비록 미약한 목소리일지라도 끊임없이 내어, 세상을 짓누르는 편견의 모서리들을 조금씩 깎아내며 나아가겠노라 다짐했었다.
그럼에도 아이의 느린 속도에 겁을 먹고 세상과 아이 사이에 벽을 세우려 했던 내 행동이, 아이를 위한 ‘울타리’가 아니라 ‘창살’은 아니었을지 뼈아픈 반성이 밀려왔다.
이제 우리는 토리의 새로운 출발을 준비하며, 아이가 더 넓은 세상으로 마음껏 비상할 수 있도록 길을 터주는 따스한 바람이 되기로 마음먹었다.
2026년 2월, 세상이라는 넓은 하늘을 향해 날아오를 나비 토리의 찬란한 시작을 위하여.